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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넘어지지 않기

완벽주의 탈피

by 황태


어제 팀장님과 회식을 하면서 딸 이야기를 들었다. 공황장애 등 다양한 아픔이 있어서 항상 본인은 아픈 사람이라는 초점을 두고 살아간다고 한다. 일반인의 기준에서 아무렇지 않은 것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인증이라는 병명이 있는데 쉽게 말하면 괴로운 일을 잊기 위해 다른 일을 하면서 서서히 망각해 가는 것이다. 전문적으로 말하면 자신이 신체와 정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느낌, 즉 외부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것과 같은 증상을 경험하는 정신 질환이다. 또 다른 내가 나의 어떤 괴로움을 잊기 위해 방어기제로써 노력하는 그러한 상황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일반인의 입장에선 이게 질환이었나 싶을 정도로 당연한 모습 중 하나인데 자신을 아프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인증은 심각한 질환이 된다. 모르는게 약이라는 표현이 떠오른다. 팀장님의 딸도 본인이 이인증이라는 것을 진단 받고선 많이 우울해했다고 한다.


자신을 아픈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일반적인 상황을 질환으로써 받아들이는 사태는 아마 완벽주의에서 기인하지 않았을까. 자신은 아프기 때문에 사소한 것도 질환이 되고 모두 고쳐서 아프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완벽주의다.


사람은 언제나 100으로 완벽할 수 없어서 98의 사람도 있고 86의 사람도 있다. 다만 14의 부족함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의 부족함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내가 100이어야만 한다는 생각은 나를 불행하게 한다.


시험에서 100점 받기는 정말 힘들지만 93점 이상 받는 것은 훨씬 쉬워진다. 나의 만족감을 93에 둔다면 더 많은 것들이 달가워질 것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아주 넘어지지만 않으면 된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그는 넘어지나 아주 엎드러지지 아니함은
여호와께서 그의 손으로 붙드심이로다.
시편 37:24


넘어지는 일이 생기더라도 '더 크게 넘어지지 않은 게 어디야.', '이만하면 됐지 뭐.' 하며 묻은 흙을 훌훌 털어내고 씩씩하게 일어나고 싶다. 내게 이인증이라고 의사가 말을 했을 때, 열심히 괴로운 순간들을 잊기 위해 노력하는 나 자신을 기특하게 여기고 싶다.


극단적인 성향을 가진 완벽주의에서 벗어나 눈높이를 낮추고 아주 넘어지지만 않아도 인생은 훨씬 가뿐해 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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