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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간직한 신선함, 다시 말해 비밀

리프레시 ep3. 정신의 홀로서기

by 황태

알베르 카뮈의 결혼 여름을 읽고 있다. 여러 번 읽을 때마다 여름이라는 제목을 왜 지었는지 궁금했었는데 그 이유를 조금 눈치챈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카뮈는 자신의 아름다운 고향에 대해 반복해서 이야기한다. 마음이 요구하는 신선함을 위해 고향으로 다시 돌아가고, 고향의 자연 속에서 분노와 어둠이 녹아내리고 솟구쳐 오르는 행복한 물결을 느낀다. 그러곤 고향인 티파사의 하늘은 한 번도 자신을 떠난 적이 없었음을 깨닫는다.


그렇기에 사람은 어떤 신선함을, 어떤 기쁨의 샘을 자신의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그것을 가지고 싸움에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카뮈에게 어떤 신선함과 어떤 기쁨의 샘은 자신의 고향인 티파사이자 그 고향의 아름다운 계절인 여름이 아니었을까. 카뮈 안에 간직한 여름은 카뮈가 절망하는 것을 막아주었고, 그 사실을 겨울 한가운데에서 깨닫게 된다.


카뮈가 간직한 신선함이 자신의 고향이자 그 고향의 여름이라면, 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나에게 울림이 오는 순간들을 글로 기록해 두는 것이 나를 지탱하게 하는 비밀이다. 울림은 나의 정신이 나의 권태로운 전신에서 빠져나가 그 황홀한 순간을 포착했을 때만이 내게 다가온다. 나의 전신은 매일 반복되는 일상에서도 새로운 여행지에서도 빠르게 익숙함에 젖고 싶어 하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나의 알과도 같은 전신을 매번 깨어 뜨리려는 정신의 홀로서기가 없다면 나는 그러한 순간을 포착할 수 없다.


정신의 홀로서기는 새로움을 기다리는 대기자의 모습이 되어서는 안 된다. 무언가 답을 얻으려는, 파헤침의 집요한 모습이 필요하다. 언제나 그 자리에 존재하는 햇살을 터지듯 번지는 시선과, 솜털과 피부의 작은 모공까지도 따듯이 덮는 온기와, 발걸음을 움직이며 인도하는 그림자와, 색감을 연하게 밝히 우는 나뭇잎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지독히 권태로울 전신이 느끼지 못할 신선함을 알아채는 나의 정신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신선함을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그 신선함은 카뮈의 겨울을 버티게 해 주었고, 나의 불행을 권태를 조바심을 근심을 도피의 욕구를 인생의 덧없는 가벼움을 버티게 해 줄 것이다.



신선함을 간직하는 것이 나의 불행을 어떻게 버티게 해 줄 것인가.


카뮈는 어느 길모퉁이에서 심장 위에 떨어졌다가 증발한 감미로운 이슬 한 방울의 신선한 맛은 남아있다고 말한다. 마음이 요구하는 것은 그 신선함이라고. 먼저 마음은 왜 신선함을 요구하는 것인가. 단순하게 생각해 보면 매일 유튜브 영상을 본다고 생각하자. 재미있는 영상이라도 찾은 날에는 누구보다 몰입하여 그 순간을 즐기지만 볼만한 영상이 없는 순간 마음은 식고 만다. 그러한 원리가 아닐까. 우리의 마음은 어쩔 수 없이 신선함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그리고 즐거운 순간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아 문득 떠오르듯이 마음에 새겨진 신선함은 사라지지 않고 저장된다.


그렇다면 간직된 신선함은 어떻게 나의 불행을 버티게 해 줄 것인가. 문득 노래의 가사가 생각난다.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먹어요.' 친구들과 만나서 하는 이야기 중 가장 즐거운 이야기가 무엇인가. 옛날 얘기다. 특히 우리가 즐거웠거나 다 같이 분노했던 깊은 공감으로 하나가 된 이야기다. 가끔씩 피식하고 웃을만한 일들이 뇌리에서 떠오르곤 한다. 이 모든 것의 공통점은 저장해 두었던 달콤하고 신선한 비밀의 그것을 필요할 때 꺼낸다는 것이다. 이러한 원리로 간직된 신선함은 나를 지탱하는 것이 아닐까.


정신의 홀로서기로 찾아낸 신선함을 간직해야한다. 나를 지탱하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려면 은총이나 자기 망각이나 고향이 있어야 한다. 어떤 날 아침결, 어느 길모퉁이에서 감미로운 이슬 한 방울이 심장 위에 떨어졌다가 증발한다. 그러나 신선한 맛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음이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그 신선 함이다. 나는 다시 떠날 필요가 있었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그러자, 평생에 오직 한두 번밖에는 찾아오지 않는 것으로 그것이 지나고 나면 남은 삶은 여한이 없는 것이라도 여겨도 좋은 경우처럼, 나는 섣달의 찬란한 햇빛 아래서, 내가 찾으러 온 그것을, 시대나 세계에 아랑곳없이 그 인적 없는 자연 속에서 나에게, 오로지 나 혼자에게만 주어진 바로 그것을 영락없이 다시 찾아내는 것이었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헤아릴 수도 없는 한순간에 아침은 고정되어 버리고 태양은 멈추어버린 것 같았다. 그 빛과 침묵 속에서 여러 해 동안의 미칠 듯한 분노와 어둠이 천천히 녹아가고 있었다. 나는 마치 오래전부터 멎어버린 심장이 가만가만 뛰기 시작하기라도 하듯이 거의 잊어버린 어떤 소리를 내 속에서 귀 기울여 듣고 있었다. (중략) 새들의 잇따른 저음, 바위 아래 바다의 가볍고 짧은 한숨, 나무들의 설렘, 원기둥들의 눈먼 노래, 압생트들이 서로 스치는 소리, 슬그머니 기어가는 도마뱀들. 나는 그것을 듣고 있었고 또한 내 속에서 솟구쳐 오르는 행복한 물결에도 귀를 기울였다. (중략) 티티새가 한 마리 짤막한 서곡처럼 노래하자 곧 온 사방에서 새들의 노랫소리가 힘과 환희와 즐거운 부조화와 무한한 황홀감과 더불어 폭발했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그러나 정의가 말라빠져가지고, 오직 씁쓸하고 메마른 살밖에 남지 않은 아름다운 오렌지색 열매로 변하는 것을 막으려면 어떤 신선함을, 어떤 기쁨의 샘을 자신의 속에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야 하며, 불의를 모면할 수 있는 빛을 가지고 싸움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을 나는 티파사에서 다시 발견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옛 아름다움을, 젊은 하늘을 다시 찾았고 우리가 광기에 사로잡혔던 최악의 세월 속에서도 그 하늘의 기억이 한 번도 내게서 떠난 적이 없었음을 마침내 깨달으면서 나의 행운을 가늠할 수가 있었다. 결국 내가 절망하는 것을 막아준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겨울의 한가운데에서 나는 마침내 내 속에 억누를 길 없는 여름이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결혼 여름,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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