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은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다.

그렇다면 나는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by 황태


갑자기 어느 순간 나를 둘러싼 모든 고민들이 아무렇지 않아 지고 행복감이 몰려왔다. 마치 잠에 취한 것처럼 꿈을 꾸듯이 몽롱하게. 오늘이 7월 3일이라서 행복하고, 평소와 같이 파일을 발송하기 위해 드래그하는 과정이 행복했고, 이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이 새롭게 느껴지면서 행복했다.


갑자기 행복이 이렇게 몰려올 수 있다는 것이 새로웠다. 나는 아직 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행복감에 젖기 무섭게 예의 없는 타 팀 직원의 전화, 어제는 맞다고 했으면서 오늘은 아니라 하는 억울한 상황 등으로 그럼 그렇지 하며 순식간에 기분이 곤두박질쳤지만 그래도 평소와는 달랐다. 내가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졌다. 나도 질리기만 했던 이런 상황 속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있었던 사람인 것이 중요했다.


인간은 그 자신이 별이고, 정직하고 온전한 인간을 빚어내는 영혼은 모든 빛, 모든 영향력, 모든 운명을 지배한다. 인간에게 벌어지는 일은 어떤 것이 되었든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의 천사, 선 혹은 악이며 곁을 조용히 걸어가는 우리의 운명적 그림자다. 랄프왈도 에머슨, <자기 신뢰> 에필로그에서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특히 고통스러운 일들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은 일어나야 할 시기에 일어났다고 생각하니 모든 것이 새롭게 다가왔다. 나의 삶이 계획된 대로 조직되고 흘러가고 있는 것이라면?




한 가지 예로 작년 이맘때쯤 우리 회사에서 처음으로 A라는 업무를 진행하게 됐다. 1,600명이 신청한 꽤나 큰 업무였고 사장님이 주목하고 계셨던 일이었기에 실수 없이 무사히 완료해야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근데 그때 마침 원래 A의 담당자가 실수가 잦아서 A라는 큰 일을 맡길 수 없었던 팀장님은 나에게 추가적으로 A라는 일을 주셨다. A업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산이 개발되지 않았던 탓에 1,600건의 업무를 수기로 확인해야 하는 등 힘겨웠지만 무사히 A를 끝냈고 이후 전산개발에도 참여했다.


그리고 그 일이 또 다음 주에 일어난다고 한다. 업무과중이 없었던 얼마 전이라면 아무런 생각 없이 A 일을 맡아서 처리하겠지만 최근에 일이 너무 힘들고 바쁜 나머지 억울해졌다. 억울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그때 A의 일을 원래 담당하다가 다른 팀으로 부서이동을 한 언니와 저녁을 먹게 되었고 언니는 팀장님께 당당하게 업무분장 수정을 요청하라고 조언했다.


마침 다음 달이면 내가 하던 모든 일을 받아서 처리하게 될 새로운 직원이 입사하게 된다. 그래서 팀장님께 새로운 직원에게 A라는 업무까지 넘기는 건 과하고 또 업무 분장상 원래 내 일이 아니니 업무를 빼달라고 말씀드렸고 팀장님께서는 알겠다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A라는 일을 해냈다는 타이틀을 얻었고 그 뒤로는 당연히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 될 뻔했지만 원래대로 다른 직원에게 넘기면서 그 일을 하지 않아도 되게 됐다. 또 아무 이유 없이 업무를 빼달라고 요청하면 나는 일 하기 싫어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만 마침 새로 입사하는 직원의 핑계를 대고 업무를 자연스럽게 뺄 수 있었다.


나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이 너무 빠르거나 너무 이르지 않게 제시간에 맞춰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이 웅장한 흐름 위에 나는 그저 물살을 타고 흘러가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괴로워할 필요가 없었다.


나에게 결국 좋은 일이 일어나든, 나쁜 일이 일어나든 어떤 일들은 무조건 일어나게 되어있다. 나에게 일어난 좋은 일이 나쁜 일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일이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모든 일들 사이에 나는 언제나 나로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일단 걱정과 근심이 의미가 없어진다. 어차피 일어날 일은 일어나게 되어 있으니까. 그저 겪어내면 된다. 우울해하거나 괴로워할 필요도 없어진다. 어쨌든 나는 살아 있지 않은가. 충분히 행복해할 수 있는 모습으로.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덤덤하게 나 스스로에게 집중하면 된다. 그저 행복해하면 된다.


다시금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해본다. 멍하니 흘러가던 의식을 꼭 붙잡고 시선이 닿는 것들을 하나하나 받아들이며 행복을 퐁퐁 샘솟아 올리고 있다. 나는 그저 즐거워하고 기뻐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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