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달리기와 아침 달리기

초연, 초월

by 황태


이번 주 내내 야근을 했다. 빠른 퇴근을 위해 가까스로 퇴근시간 안에 업무를 마치려 노력했지만 항상 퇴근시간만 되면 은행에서 돈을 잘못 보내줘서 반환해 줘야 한다던지, IT에서 전산 오류가 난다던지 등의 이유로 야근을 해야 했다. 심지어 전산오류가 났을 때는 내 잘못도 아닌데 죄송합니다는 말을 몇 번이나 한 줄 모르겠다. 대략 40통의 사죄 전화 20통의 사죄 메일 2통의 사유서를 써서 제출했다.


솔직히 너무 억울했다. 내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면 전혀 개의치 않았을 텐데. 이번 주는 고생할 운명이라고 정해지기라도 한 듯이 힘든 일들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이 또한 나의 삶의 예정된 운명이자 고난이라면 감당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렇게 보내온 고난주간의 여파로 어제는 온몸이 지쳐 노곤했다. 도통 아무것도 할 수 없겠다는 기분이었는데 이대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정말 오랜만에 저녁에 달리기를 하러 나왔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난 뒤 처음 5분 동안은 다리에 힘이 실리지 않아 그만하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잘까 하는 생각에 고민됐지만 그래도 이렇게 나온 게 어디냐며 계속 달렸다. 그러다 6분째가 되고 나서부터 온몸이 후끈하게 데워지면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지쳐있는 심신에 쌓여있던 부정적인 생각들이 뜨겁게 데워져 땀으로 융해되기 시작했다. 아니 어쩌면 승화됐을 수도 있다. 온몸에서 하얀 연기가 빠져나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으니까. 그렇게 연기가 빠져나간 자리에 시원한 감각이 자리 잡았다. 그 산뜻한 감각이 점점 온몸에 번져나가며 아무래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연 해진 것이다.


초연하다는 것은 어떤 것에 얽매이거나 좌우되지 않고 의젓하고 덤덤한 태도를 뜻한다. 나를 구속하던 부정적인 감각이 빠져나가고 나는 덤덤해졌다.


칼을 만들 때 뜨거운 쇠를 두드리고 두드리다가 차가운 물에 담가 단단하게 연단하는 과정이 떠올랐다. 뜨겁게 두들겨지고 두들겨지다가 시원한 이 밤에 담가져 흰 연기를 내뿜으면서 나는 단단해졌다. 연단된 것이다.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회사에서 제일 필요로 하는 존재는 대리 직급의 사람들이다. 당장 어떤 상황에 투입되어도 자신의 능력으로 상황을 해결해 나갈 수 있고 가장 일을 많이 하는 존재. 지금 나는 주임에서 대리로 연단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초연해지고 초연해지는 저녁 달리기였다.




오늘 아침, 그래도 매일 아침마다 달리는 루틴을 깨고 싶지 않아 조금이라도 달리려 밖으로 나왔다. 저녁은 무언가 묵직하게 내리누르는 느낌이 들었다면 아침은 나를 끊임없이 상승시켰다.


아침에 달리면서 내 몸이 계속해서 위로 올라와지고 올라와지는 것을 느낀 채 문득 눈을 감았다. 내가 무언가를 가르며 지나가는 듯한 몽롱한 감각이 느껴졌다. 물살을 가르며 헤엄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아니었다. 아! 이 감각은 날아가는 감각이었다. 가르며 날아가는 것이 아니라 갈라져 나가는 것에 하나가 되면서 날아가는 것이었다. 그것은 달리 말해 나를 감싸 안는 나무와 풀과 아침 새벽의 공기와 함께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 나는 초월한 것이다.


계속해서 눈을 감고 달리며 그 감각을 느끼고 느꼈다. 지상의 세계를 초월해 자연과 함께 나는 감각을 온몸에 새겼다. 아. 이렇게 살아야겠다. 나는 어제 초연해지던 밤을 통해 연단되었고, 오늘 초월하게 된 아침을 통해 성장했다. 나는 하나의 예리한 날붙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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