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너리즘 극복
요즘 소설 속에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책 속에 눈을 들이밀면 현실과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책 밖으로 눈을 내밀면 현실이 보인다. 허구와 현실의 경계가 단 한 번의 눈짓으로 모호 해질 때쯤, 나 자신이 소설 속 주인공으로 느껴질 때쯤, 그때쯤이 되어서 나는 내가 왜 이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궁금해졌다. 왜 나는 살아있을까?
다시 소설로 눈을 돌려본다. 아니 소설을 구성하고 있는 활자들을 향해 시선을 내린다. 나는 그 활자들을 보며 소설 속 감정에 지배되어 버렸고, 활자들을 쓰면서 나의 감정이 극대화됐다. 감정의 전력질주를 마친 사람의 곤비함을 느꼈다.
활자에는 이토록 생생히 그리고 무겁게 감정들이 담겨있었다. 이 땅에 내려앉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한 채 둥둥 떠다니는 것들이 낚아 채 져 활자에 붙잡혀 있었다. 글의 목적이란 이런 것인가 생각하게 된다. 그러한 감정과 목소리를 풀어헤칠 수 있게 하는 것이 글인가. 소리 없는 외침인가.
다시 돌아와서 내가 살아가는 목적은 무엇일까. 나는 왜 태어났으며 무엇을 하기로 예비되어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을까. 고찰하고 고찰한다. 다만 한 줄기의 파편을 고찰해서는 안된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를 통과하고 있는 필연의 흐름들을 포착해야 한다.
나에게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 또는 마디 단위로 끊어진 나의 삶들은 각각의 목적성을 띄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다. 이유 없는 것이란 없다. 과거로 다시 돌아가본다. 나의 살아온 기억들을 되짚어 올라와 본다. 그리고 지금. 지금에 이르러 생각해 본다.
나는 지금 강제로 회사 의자에 띠 둘러메진 채로 묶여있다. 내 온 정신은 이곳을 거부하는 중이지만 단호한 육체의 묵살로 이 자리에 있다. 하지만 거부하지 않으려 한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삶의 흐름이라면. 필연의 고리라면. 사건의 마디라면. 다음 단계를 향한 디딤돌이라면. 나는 묵묵히 자기 부인을 실현해야 하는 것이다.
자기라는 것은 무엇인가. 자기라는 것은 너무나 현실 속의 것이라서 과거와 미래를 바라보지 못한다. 자기는 지금 이 순간 속에서 가장 자기를 위한 것을 모색한다. 자기의 뚜렷한 욕망을 스스럼없이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한 것을 부인해야 한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서는 흘러가는 운명의 제약을 부드럽게 받아들일 수 없다. 다만 부딪칠 뿐이다. 제약은 흐르는 물살처럼 나를 이끌지 못하고 거센 풍랑으로 나를 몰아세우게 된다. 그래서 나는 보다 편안히 나의 삶의 다음 마디로 건너가기 위해서 더더욱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 영혼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자기를 옷장 속에 집어넣은 채 자물쇠로 꽁꽁 봉인해야 한다.
다시 지금의 나에게 정신의 초점을 맞춰본다. 영혼의 음성과 자기의 음성이 두 갈래로 들려온다. 덤덤이 자기를 묵살해 본다. 이 고난이 나에게 더 큰 고난이 될지, 단비를 향한 디딤돌이 될지 모르지만 일단 나에겐 삶의 다음 단계라는 것이 있다.
수월한 이동을 위해서라면 나는 인내를 배워야 한다. 무작정의 인내가 아닌 수용의 인내다. 현실을 나의 현실로 수용함을 통해 담담함을 맞이해 본다.
이렇게 나의 매너리즘은 극복되려는 듯하다.
#매너리즘 #자기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