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육체 속에 배어드는 듯
자연이 육체 속에 배어드는 듯
지상의 양식, 앙드레지드
봄의 부푼 땅 위로 자전거를 저어갈 때
흙 속으로 스미는 몸의 힘과
몸속으로 스미는 흙의 힘 사이에서
나는 늘 쩔쩔맸다.
페달을 돌리는 허벅지와 장딴지에
힘이 많이 들어가면
봄은 몸속 깊이 들어온 것이다.
자전거여행 2, 김훈
아침에 눈이 많이 왔다. 이른 시간이라 다른 사람들의 발길이 가 닿지 않은 갓 태어난 눈이었다. 발걸음을 뗄 때 발이 쑥 파묻히면서 양 발목과 정강이 초반부까지 눈이 스며들었다. 스며들고 빠지기를 계속해서 반복했다. 머리 위에서도 눈이 내렸다. 자연이 내 몸속에 스며드는 듯한 느낌이었다.
고개를 들어 보니 눈이 쌓인 나무들과 그 나무들로 어우러진 설경이 보였다. 얇은 나뭇가지 위로 아슬아슬하게 눈송이들이 쌓여있었다. 툭 하고 치면 떨어질 듯 불안하고 위태로워서 풍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나는 잠시 출근을 잊고 신생의 풍경을 욕심껏 홀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는 정말 운 좋은 사람이구나. 이 엄청난 자연의 풍경 속에서 출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다. 눈이 이미 다 치워져 회색빛 민낯을 드러낸 친구들의 사진을 보면서 우월감을 느꼈다.
이전에는 막연히 자연과 함께하는 삶이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자연이 내 몸속에 스며드는 듯한 감각을 느끼고 있다. 산의 정기가 호흡을 통해 내 핏줄에 흐른다던지, 찢어질 듯 금속성의 소리를 내는 겨울바람이 내 피부에 닿는다던지, 귀 속에 맺히는 자연의 어떠한 소리가 묵힌 음성들을 파내리는 등의 자연의 스며듬을 찾고 있다.
자연이 스며듬을 찾고 또 허용하는 것은 내게 여유를 갖게 한다. 바쁜 출근길 내린 눈을 바라보면서 깨달았다. 우리는 여유를 갖기 위해서 주변을 둘러싼 자연에 시선을 둘 필요가 있다. 잠시 혼자 생각을 한다거나 음악을 듣는다거나 책을 읽는 등의 어떠한 행위보다도 자연에 시선을 둘 때 그리고 자연의 스며듬을 느낄 때 우리는 온전한 여유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진정한 의미의 짧은 휴식이랄까.
자연의 스며듦을 찾는 방법은 걸어가다가 문득 하늘의 구름이 흘러가는 모양과 움직임을 쳐다보고, 밋밋한 나뭇가지들에 오돌토돌 올라온 봉우리들을 보고, 내 뺨을 문대고 달아나는 바람의 재질을 느끼는 것 등이 있다. 자연이 스며듬을 허용하면서 우리는 오염공기로 가득 찬 마음을 환기하고 순간의 여유를 가진다. 날씨가 좋은 낮에 창문을 활짝 열어 환기하는 것을 생각해 보라. 그 순간 우리에겐 편안한 여유가 다가온다. 그리고 그 여유로운 순간들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자리 잡는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색하는 사람.
그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강자.
지상의 양식, 앙드레 지드
자연의 스며듬을 허용하는 방법은 스스로를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사색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행복할 때 그리고 그에 대해 사색할 때 우리에게 스며들기 위해 준비된 자연을 마주할 수 있다. 자연의 스며듬을 허용한다면 우리에게 어느새 부여된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