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적 폭력보다는 감정적 폭력
‘우울증 환자에게 밖에 나가라, 햇빛을 보러 몸을 일으켜라. 무엇이든 해라.라고 조언하듯 건네는 말은 다리가 없는 사람에게 두 발로 일어나 걸어보라고 말하는 것이다. 즉 폭력이다.’ - 정신병동에도 아침이 옵니다. 중
드라마를 보며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우울증이나 각종 정신 질환을 앓고 사회로 복귀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정확히 표현한 드라마가 있을까. 그 깊고 어둡기도 복잡하기도 한 생각들을 어떻게 표현할까. 그래서 극 중 주인공이 본업에 다시 복귀하는 내용의 장면을 가장 기다렸다. 주인공이 간호사로 복직한 뒤,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고 꾸준히 치료하며 삶을 살아가는데도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우울증을 앓았던 간호사가 어떻게 정신병 환자를 간호하냐며 항의하는 보호자들. 내 미래일 수도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두려워졌고 직접 겪은 상황이 아닌데도 숨이 턱 막혀오는 듯했다.
주인공의 곁에는 든든한 사람들이 많았다. 함께 어려움을 마주하며 나서서 도와주는 수 간호사 선생님, 조금이라도 부담스럽지 않은 도움이 되려 하는 동료들, 끝까지 믿고 묵묵히 곁을 지키는 가족과 친구 그리고 연인. 나에게도 드라마 속 주인공의 주변인들처럼 나를 위해 목 놓아 이해하고 용기를 가져다주는 사람이 있을까? 내가 발견하지 못한 건 아닌지 내 인간관계를 되돌아보았다. 이 글을 읽는 나의 주변인들 중 누군가는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온전하고 영원한 나의 편은 아직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이 옆에 있다면 조금은, 아니 혹은 많이 달랐을까.
마음에 닿는 위로란 무엇일까. 그저 진심으로 대상을 위로하는 것? 난 진심으로만은 위로를 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저 묵묵히 들어주고 기다려주는 것. 그게 정말 참된 인연이고 위로가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병원에서 퇴원한 것은 완치가 되어서 퇴원한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완치된 사람처럼 보이려 애쓰고 여러 개의 가면을 겹겹이 쓰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나 자신을 집어삼키는 우울이 또 나를 덮쳐왔고, 그 순간 생각했다. ’ 나는 하나도 나아진 것이 없다.‘ 비교하자면 그런 것이다. 응급실에 있던 환자를 중환자실로 옮긴 것. 극도의 위험에서만 벗어나 겨우겨우 연명하고 있는 느낌.
우울증 완치의 기준은 무엇일까? 자해를 하지 않는 것? 그럼 자해를 참는 것은?
자살 시도를 하지 않는 것? 그럼 매일 사고사를 기다리는 것은?
매일을 타들어가는 촛불처럼 위태로운 나는? 뭘까. 절대 완치는 아니다.
그리고 그게 내가 이 시리즈를 쓰기 시작한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