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그러고도 의사냐?

나의 첫 정신진료

by 해차

이번 회차는 자살사고, 자해, 우울증상에 대한 환자 입장에서의 자극적일 수 있는 상세한 감정 묘사가 담겨있습니다. 이에 거부감이 있으신 분들은 관람에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2024년 11월 말에 당시 교재하던 남자친구로부터 병원 진료 권유를 받았다. 권유를 받자마자 치밀어 오르는 역함과 울렁거림에 거부감이 몰려왔다. 하지만 지금은 다양한 병원들을 옮겨 다니고 있으니, 내가 가진 병원에 대한 트라우마를 풀어보려 한다.


사실 병원을 가려고 마음을 먹게 된 것은 꽤나 오래전이었다. 병원 이야기를 풀어보자면 안 좋은 이야기들이 많지만, 이곳은 내 마음을 풀어놓고 객관적으로 나를 바라보며 생각해 보기 위한 회복실이니 풀어보려 한다.


2018년 여름부터 시작된 강한 무기력함과 우울감을 느꼈다. 여름의 날씨 탓에 무기력해진 것이겠거니 시작한 나의 기분은 바닥으로 내던져진 상태로 가을 낙엽이 떨어지고 겨울 첫눈이 오는 날까지도 바닥에서 기어 올라오기는커녕 더 깊은 땅 속으로 곤두박질치고 있었다.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고 싶지 않고,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으며, 그저 아침이 오는 것을 증오했다. 내가 숨을 쉬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무의미하게 느껴지며 혐오스럽게 다가왔다. 그런 암흑 같은 시간 동안 팔다리는 빨간색 선들로 가득했고, 그 상처를 숨기려 애쓰고 또다시 눕고, 물을 마시고, 다시 눕고를 반복하는 세포 같은 삶을 살았다.


눈이 오는 날이었다. 암막커튼을 쳐두고 바깥은 쳐다도 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 때문인지, 아니면 자리에서 일어날 기력도 없는 망할 몸뚱이 때문인지, 창 밖을 쳐다본 적이 없었다. 문득 첫눈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용기 내어 커튼을 걷었고, 새하얀 아파트 단지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생각했다.


차들이 머물러 있다 나간 자리에는 검은 직사각형이 남는구나.

그럼 내가 머물다 간 자리에는 무슨 모양이 드리울까. 그리고 모양은 무엇에 의해 사라지고 잊힐까.


그날, 우울감에 잡아 먹힌 채로 두 번의 계절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내 팔과 허벅지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살색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빼곡하게 자리 잡은 빨간 선들, 죽을 용기도 없는 자신을 탓하고 비난하고 비웃으며 힘을 실어 그어버린 상처에 동그랗게 맺힌 검붉은 방울들. 그제야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이 뒤섞인 피와 먼지 냄새로 가득한 방을 둘러보았다. 이윽고 마주한 거울 속의 나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있었고, 바로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살아있는 시체 같은 모습이었다. 순간 생각했다.


죽고 싶지 않다. 적어도 이 모습으로는 죽고 싶지 않다.


이내 생각했고 내가 처음 손을 내민 것은 부모님이었다. 이미 살아 숨 쉬는 시체 같은 모습으로 축 쳐져 있는 소중한 딸을 걱정하는 것에 지칠 대로 지치신 분들이었다. 모두가 정신병에 대해서는 몰랐고. 그저 나는 병원에 데려가 달라고 말했다. 정신병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으신 나의 부모님은 동네 자주 가던 내과로 데려가셨고, 내가 느꼈다고 조심스레 말했던 호흡곤란, 무기력, 공포감을 의사 선생님께 대신 전해주셨다. (나는 당시 미성년자이기도 했지만 극심한 무기력으로 남들과 대화하는 것조차 꺼려했으며, 남에게는 그저 '모르겠어요'라는 말만 로봇처럼 내뱉고 있었기에 함께 진료실에 들어가셔서 설명해 주셨다.) 내 증상에 대한 이야기를 들은 의사는 살짝 웃어 보이며 우리 부모님께 말했다.


어머님 아버님 잠시 밖에서 기다려주시겠어요?


이내 답답하다는 듯 가운을 벗어 의자에 걸치고, 다리를 꼬아 자세를 고쳐 앉고서 등을 한껏 의자 등받이에 기대며 나에게 말했다.


네가 뭐가 힘드냐. 죽고 싶어서 그러는 거야? 너, 선생님이 여기 이 의사라는 자리에 앉기까지 얼마나 많은 어려움을 겪었는지 알아? 죽을 만큼 힘들었고, 죽을 만큼 공부했다 이거야. 그런데, 너는 그럴만한 일을 겪었어? 그냥 너희 또래 애들은 우울증이라고 하면 관심받고, 그걸 즐기고, 또 무언가 사연 있어 보이고. 그래서 약을 처방받아서 먹기 시작했다는 그 프레임이 필요한 거야? 야, 니 또래애들은 다 그래. 그리고 세상에 너보다 힘든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겨우 너 정도 가지고 여기까지 찾아와?


그 사람은 미동도 감정도 대답도 없는 내 표정을 보곤 코웃음을 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약 먹고 싶은 거지? 줄게. 어차피 못 죽잖아. 약 줄 테니까 먹어봐.


밖에서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시던 부모님을 부르셨다. 약을 처방해 주신다는 의사라는 사람의 말에 어머니는 걱정 어린 마음으로 물어보았다.


우리 애가 나쁜 마음먹고 이걸 다 한 번에 먹어버리면 어떡하죠? 괜찮은 건가요?


그 개자식이 모니터를 응시한 채로 키보드를 치며, 말했다.


어머니, 그거 한 번에 다 먹어도 못 죽어요. 괜찮으니까 약 챙겨드세요.


그렇게 나는 감정도 미동도 대답도 없이 진료실을 나왔다. 그날 나는 모든 걸 보았고 모든 걸 기억한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틀어박혔고, 의사를 증오하며 내 팔에 또 한 번 붉은 줄을 그어댔다. 죽을 용기도 없는 한심한 사람임을 타인에게서까지 인정받은 그 느낌에 나는 온몸을 떨며 붉은 방울들이 흘러 내려올 만큼 그렇지만 용기가 없어 병원에 갈 정도는 아닌 그 애매한 자해를 반복했다.


그게 내가 겪은 첫 병원이다. 몇 해가 지난 지금까지도 나는 그날의 진료실의 온도와 습도와 향, 의사 놈의 목소리와 억양까지 모두 기억난다. 그 날의 상세한 기억들은 깊은 트라우마로 자리 잡아, 그 후에는 병원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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