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겨우 한 발자국입니다.
지난 회차에서는 나의 첫 병원 방문 일지를 업로드했다. 그때는 고등학생이었고 미성년자의 신분인 나는 함부로 혼자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그래서 도망치는 게 최선이라 생각했다. 모두에게 피해는 주는 지금의 상황을 피하고, 숨기고, 드러내지 말자. 그렇게 다짐하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에 학교 기숙사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기숙사에서의 첫 시작은 쉽지만은 않았다. 이미 1학년때부터 기숙사에서 생활해 오며 서로의 생활 루틴을 어느 정도 알고 있을 정도로 깊은 라포가 형성되어 있는 무리에 외지인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두려운 공간으로 느껴졌다. 당시의 나는 굉장히 예민하고 내향적인 내면의 스스로를 외면하기에 너무 급급했고 겉으로는 웃고 있어도 속앓이를 하는 상태였기에 더욱 두려웠다. 그나마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에게 아무렇지 않은 척 방에 침대 하나 비어있냐는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여기는 자신들의 짐칸이라며 자리 없다. 돌아가라. 하고 장난을 던졌고, 나는 장난임을 알면서도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며 미움받을까 너무나도 두려웠던 기억이 난다. 당연하게도 장난이었고 내가 그 자리에 들어가도 되겠냐는 질문을 하자마자 짐칸을 비우고 자리를 청소하곤 저에게 사진을 보내주었던 훈훈하고도 애틋한 기억이다. (지금 생각하면 같은 나이지만 참 어른스러웠던 친구들입니다.)
기숙사에 들어가서 당연하게도 내 상태가 씻은 듯이 나아지지는 않았다. 친구들과 함께 지내게 될 방은 2층 침대 3개가 놓여있는 6인실 방이었고, 번갈아가며 1,2층을 바꿔가며 사용하는 규칙이 있었다. 나는 자리를 바꿀 때마다 박스와 담요로 벽을 치고 홀로 숨었다. 임시로 만들어놓아 무너지기 쉽지만 그 누구도 들어올 수 없는 요새를 하나 지어놓고는 매번 그 안에서 홀로 스스로에게 상처를 내며 살았다. 도움을 청하고 싶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으려 했고, 그저 이 친구들에게만은 피해가 되지 않아야겠다는 일념하나로 혼자서 묵묵히 버텼다. 사실 혼자라고 생각했던 나 하나였던 것 같다. 친구들이 묵묵히 기다려주거나 모른 척 해준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버텨내고 우리는 성인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서 나에게 분명하게 남아있는 것이 있었다. 괜찮은 척하는 방법. 그 방법을 터득한 나는 정상적이고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사람인 척하며 살아갈 수 있는 그 방법으로 대학을 위해 자취하러 바로 집을 떠났고, 조용히 버텨냈습니다. 홀로 잠드는 날에는 항상 눈물을 흘리며 잠에 들고, 함께 잠드는 날에는 불이 모두 꺼진 후에야 조용히 눈물 한 줄기를 흘려보내며 밤마다 크거나 작은 눈물로 버텨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