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스물다섯 번째 봄은,
‘ 맞다, 나는 이름이 있었다. ’
이따금 생각하곤 한다. 내가 이름이 있었다는 걸. 나에게도 이름이라는 게 있고, 그럴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는 걸 이름을 듣는 순간 깨닫곤 한다. 이름이 주는 놀라움이란 그런 건가 보다. 나의 가치와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 부모님이 지어주신 귀한 이름을 세상의 정신없음에 치어 잊곤 한다.
글을 쓰는 나는 오랜 시간 우울증을 앓고 있다. 한동안은 진단받지 못한 나의 아픔이었지만 이제야 마음의 감기라는 의미를 알아차리고 병원에 다니고 있다. 정신과에 다니면 많은 사람들이 보인다. 심한 우울증을 앓고 있는 노인, 요즘은 흔하다는 성인 ADHD로 보이는 20대들, 삶의 무게를 이겨내지 못하고 자기 자신을 괴롭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이기적 이게도 나는 아직 저 정도는 아닌가 보다 하는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한다.
새벽에 쓰는 글을 쓰레기라 하였다. 그렇지만 그러면 어떠한가, 약을 먹지 않고 써 내려가는 내 한낱 천한 글 따위가 그들의 공감을 살 수만 있다면. 20대는 생각보다 정신질환을 많이 앓고 있다. 당장 나의 부모님만 하더라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정신질환은 의지의 문제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주변의 많은 사람들을 보며 편견을 깰 만큼 흔한 것이 정신질환이다.
엄마가 그런 이야기를 하신 적이 있다. 회사 사람 중에 우울증을 심하게 앓았던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은 휴직을 하셨다고 한다. 휴직하기 직전의 눈빛과 복직 후의 눈빛이 많이 달랐다고 했다. 정신질환이란 그런 거다. 눈빛이 달라지는 것. 그들의 삶이 얼마나 황폐했는지 알 수 있는 그 눈빛이 정신질환이라 생각한다.
글쓴이도 좋은 삶을 살고 있다 자부할 수는 없지만, 이 이상의 정신질환은 힘들 것 같다. 중증 우울증이라는 판정을 받고, 퇴사를 하고, 본인이 우울증과 공황장애라는 것을 피부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다. 이 이상은 버겁지 않을까 다시금 생각한다. 쓰니가 말하는 버겁다는 건 뭘까. 버텨내기 힘든 현실일까, 아픈 나 자신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