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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 4편

첫 간판 달리던 날

by 브라질의태양 Dec 15. 2024


보도블럭을 새롭게 깔고, 군데군데 화분을 놓아 꽃길을 만들고, 기존에 있던 네온사인 간판을 예술 간판으로 교체하는 것이 골목 외관 가꾸기의 큰 틀이었다.

그중 간판 교체가 단연 하이라이트였고 주민들의 기대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기존 간판은 건물 벽면을 거의 다 가릴 만큼 큼직하고 다른 간판들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양이었다면 '예술간판'은 크기도 조금 작으면서 건물, 골목의 형태를 살리고 가게마다의 개성을 드러내 예쁘게 제작하는 것을 말했다.

"간판 글씨는 커야지! 작으면 보이도 안 한다!" 예술 간판에 대해 주민들은 낯설어하면서도 조금은 냉소적이었다. 나 또한 생소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기도 했다. "작가님들이 직접 만드시니 예쁠 겁니다."라고 얘기하며 주민들을 설득해 나갔고 진안군 백운면의 사례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백문이 불여일견! 마산 창동과 부산 남포동 차 없는 거리를 보고 작은 간판이 달린 상가들을 견학했다. "작아도 예쁘네. 차가 없으니까 걷기에도 편하네."라고 하며 인식도 바뀌고 골목의 변화에 대한 기대도 커져갔다.


드디어, 대망의 첫 간판이 달리던 날.

첫 '예술 간판'이 H식당 앞에 달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응? 장난함? 진짜 이거 맞아? 재료비 한 5만원 들었을까? 내가 예술에 대해 잘 모르는 거겠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관계자들 입에서는 한숨이 나오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은 "이게 뭐꼬?"라는 말들을 하며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 중심엔 H식당 사장님이 있었고 낯빛은 잿빛에 가까워져 있었다.

너무 하다. 너무 했다. 내가 만들어도 이거보단 잘 만들겠다! 이 간판은 그냥 간판이 아닌 예술 작가님들이 만드는 거라 '작품'의 가치를 지녔고 그만큼 비용도 많이 들어갔단 말이야. 하... 나빴다.

"떼주세요. 안 할랍니다." 내 속마음이 입 밖으로 튀어나온 줄 알고 깜짝 놀랐다. 옆에 서 있던 H식당 사장님이 한 말이었다.

나를 포함한 관계자들은 몸 둘 바를 몰랐고 사장님을 다독이며 "보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정작 제작자는 그 자리에 없었다.

그 후 주민들의 불안과 불신은 눈덩이처럼 불어 나갔고 누가 먼저라 할 것 없이 간판을 교체하지 않겠다고 앞다퉈 말했다.


사실 이건, 사회복지사의 영역이 아니다. 그렇다고 나 몰라라 하고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수습해야 했다. 윤국장님은 제작한 작가님께 전화해 보완할 것을 요청했고 나 또한 골목을 다니며 주민들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나는 주민들의 불안한 마음과 불만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골목 욕받이'로 포지션을 변경했다.

이런저런 얘기들을 허심탄회하게 할 곳이 없었던 주민들은 '너 오늘 잘 만났다.'라는 마음으로 아주 신랄하게 감정을 쏟아 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사회복지사로서의 큰 덕목인 '경청'을 앞세워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주민들의 요구사항들을 부지런히 관계자들에게 전하며 중개자 역할을 해나갔다.

결과적으로 70%(54개 중 41개 )가 넘는 가게들이 간판을 교체하는데 동의하였고 H식당 간판을 만든 작가 대신 오승환과 같은 특급 마무리 투수 작가님들이 등판해 주민들도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어 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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