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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uckuism May 12. 2020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했다.

묵묵히 가족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오신 모든 아버지들에게


저번 주에 동생과 함께 어버이 날을 준비했다. 동생은 돈 휴지가 담긴 각 티슈를 만들고, 나는 꽃다발과 키우는 식물을 주문하여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아버지는 항상 차로 날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몇 분 안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매번 어색하고 서먹하기 일쑤였다.


평소와 같이 아버지와 차를 타고 가던 어느 날, 아침 라디오에서 갑작스럽게 아버님을 잃은 사람의 사연이 나왔다. 사연의 주인공은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 하지 못했던 것이 너무 죄송하다며 과거의 자신이 너무 밉다고 했다. 그리고 이 사연을 모두 읽은 라디오 DJ는 이어서 이런 말을 했다.


"평생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못하는 아들이 정말 많다고 하죠. 오늘은 아버지에게 용기내어 사랑한다고 말을 해보면 어떨까요?"


나는 그 말을 듣고 갑자기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언제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데,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도 사연에 나왔던 사람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못했던 못난 아들이었다. 


갑자기 겁이 났다. 이러다가 사랑한다는 말을 평생 못하는 건 아닌 지, 불의의 사고로 아버지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지면 어떡할 지, 이런 저런 상상이 꼬리를 물었다. 그리고는 그 때부터 차에서 내리기 전까지 정말 정말 많이 고민했다. 사랑한다고 할 지 말지를. 


결국 나는 부끄러움과 낯간지러움을 한아름 안고 차에서 내리면서,


"아버지, 제가 사랑하는 거 아시죠?"


라고 무심결에 한마디를 툭 던졌다.


아버지는 그 말을 들으시더니 허허 웃으시며 아무 말씀도 안하시고 출발하셨다. 그런데 뒤돌아서는 내 발걸음은 왜 그렇게 가벼웠을까? 막상 뱉고 나니 아무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사랑한다는 말이 어려웠을까?


몇 일 뒤 저녁,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전화기가 울렸다. 전화기를 보니, 아버지의 핸드폰 번호였고 나는 잽싸게 전화기를 들어올렸다.


"여보세요?"


아버지는 약주를 드시는 중이셨는지, 전화기 너머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섞여 들려왔다.


내 목소리를 들으신 아버지는,


"어! 아들! 우리 아들!!! 사랑하는 우리 아들! 야 우리 아들이야! 아들이 나 사랑한댄다!! 너넨 이런 아들 없지??"


하시며 주변 지인분들에게 큰 목소리로 자랑을 하시고는 오늘 너무 즐겁다며 먼저 자라고 하시곤 전화를 끊으셨다. 전화를 끊은 나는 왜인지 움직일 수 없었다. 알 수 없는 슬픔이 몰려왔다. 술에 취해 기분 좋게 자랑하시는 아버지의 그 말들이 나는 왜 하염없이도 슬프게 들렸을까? 


우리 가족의 기둥이자, 버팀목으로 반평생을 살아오신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힘들어하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왜 그랬을까? 아버지이기 전에 사람인데, 아픔과 고통, 힘듦을 느끼는 그저 평범한 사람인데, 왜 나는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볼 수 없었을까? 


나이가 들면서 너무나 당연했던 아버지의 강인한 모습이 진짜 아버지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가족들이 자신때문에 불안하게 하지 않기 위해 힘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그저 묵묵히 참고 살아오셨다는 것을, 나는 나이가 들어서야 깨달았다.


그런 아버지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 마디를 지금까지 하지 않았던 내 자신이 정말 미웠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멍하니 앉아 눈물을 참았다.


그 이후로 아버지에게 자주는 아니더라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아버지도 나와 동생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점점 쉽게 하시더니, 이제는 서로 사랑한다는 말이 어색하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이전보다 더 화목해졌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상대방이 알아주길 바라지만, 그건 그저 바람일 뿐이다. 결국 내가 어떻게 상대방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방식도 달라진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남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특별한 날이 아니더라도 아침에 아버지에게 전화를 한 번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부끄럽지만,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한 마디 해보는 것은 어떨까? 그 한 마디로 인해 아버지는 하루를 행복하게 시작하시고, 지금까지 당신이 참아오셨던 많은 날들을 가치있게 생각하실 것이다. 잘 살았다고,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삶이었다고. 내가 한 희생들은 꽤나 가치있는 것이었다고. 


나는 오늘도 아버지에게 사랑한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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