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실의 재(灰)를 모으는 방법에 관하여
누군가는 그때를 가리켜 인생의 봄날이라 부르지만, 내게 교실은 언제나 늦가을이었다. 마른 낙엽처럼 바스락거리는 긴장감, 서리 맺힌 새벽처럼 차가운 눈빛들. 교복 주머니 속의 손가락이 떨리던 날들이었다. 책상 위에서는 이차방정식을 풀었지만, 실제로 나는 매일 다른 종류의 방정식과 씨름하고 있었다. 그 방정식의 미지수는 '나', 그리고 내 주변을 둘러싼 스물세 명의 급우들이었다.
창밖의 은행나무가 노랗게 물들던 열일곱, 나는 조용히 앉아 관찰했다. 명품 운동화를 신은 A의 주변에는 항상 다섯 명의 웃음소리가 맴돌았고, 태권도 검은띠를 가진 B의 뒤편으로는 아무도 지나다니지 않았다. 우리는 마치 아프리카 초원의 동물들처럼, 각자의 영역과 서열을 눈빛만으로 알아챘다. 매점 앞자리는 언제나 '그들'의 것이었고, 도서관 구석의 책상은 '우리'가 차지했다. 정글이라고 하기엔 너무 정돈되어 있었고, 정원이라고 하기엔 너무 야생적이었다.
자아는 이상하게도 단단하면서도 유연했다. 아침조회 시간의 나는 반장 선거에서 떨어진 후보였고, 점심시간의 나는 누구든 끼워주는 식탁의 주인이었으며, 방과 후의 나는 게임방 구석에서 비웃음을 참는 패자였다. 마치 옷을 갈아입듯 정체성을 바꿔가며 살았다. 교복 셔츠의 단추를 풀었다 잠갔다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문제는 내게 내세울 만한 것이 없다는 거였다. 성적은 중상위권을 맴돌았고, 얼굴은 그저 스쳐 지나가면 잊히는 평범함이었다. 운동장에서 공을 차면 항상 누군가의 발에 걸려 넘어졌다. 하지만 한 가지, 나는 바람의 방향을 읽을 줄 알았다. 교실이라는 작은 숲에서 누가 오늘따라 기운이 없는지, 누구와 누가 어제 다퉜는지, 그리고 그 다툼이 어디까지 퍼져나갈지.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연습했다. 왼쪽 입꼬리를 살짝 올린 미소, 고개를 15도쯤 기울인 경청의 자세, 눈을 반짝이는 타이밍까지. 마치 무용수가 기본동작을 반복하듯, 나는 '보통의 친구'를 연습했다. 때로는 연기가 서툴러서 들통 날 것 같았지만, 다행히도 모두가 자신의 연기에 바빠 남의 연기까지 살필 겨를이 없었다.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첫 번째 공식은 '필요한 만큼의 친절함'이었다. C가 수학 문제를 고민할 때면 슬쩍 풀이 과정을 알려주되, 정답은 알려주지 않았다. D가 축구를 할 때면 열심히 응원은 했지만, 경기에 끼어들지는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그들이 원하는 만큼만. 이를테면 퀴즈 프로그램의 전화친구처럼, 결정적인 순간에는 살짝 빠져나왔다.
두 번째 공식은 '적당한 거리두기'였다. 한 무리에 깊이 속하면 다른 무리와는 선이 그어진다. 나는 물 위를 걷듯 여러 무리 사이를 오갔다. 급식실에서는 운동부와, 청소 시간에는 공부하는 아이들과, 쉬는 시간에는 게임을 좋아하는 무리와. 어디에도 깊이 속하지 않으면서, 어디에도 완전히 배제되지 않는 묘한 균형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 균형 잡기는 더욱 정교해졌다. 마치 줄타기 곡예사처럼, 나는 보이지 않는 줄 위에서 춤을 추었다.
때로는 실수도 있었다. 한 번은 A와 B 사이의 갈등에서 양쪽의 이야기를 들어주다가 꼬이고 말았다. 교실 뒤편에서 들려오는 수군거림이 등골을 서늘하게 했다. 일주일간 쉬는 시간마다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차가운 수돗물로 얼굴을 적시며, 다음 전략을 세웠다. 결국 나는 둘 사이의 중재자로 거듭났고, 그들의 화해 이후에는 '믿을 만한 친구'라는 새로운 타이틀을 얻었다. 위기는 기회였다.
그런 나의 계산은 대부분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가끔, 밤에 혼자 일기를 쓸 때면 이상한 공허함이 찾아왔다. 진짜 내 모습은 무엇일까. 누군가에게 진심으로 화를 내거나, 마음껏 기뻐하거나, 솔직하게 슬퍼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일까. 투명인간이 된 것처럼, 나는 모두의 곁에 있었지만 어쩌면 아무도 진짜 나를 보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일기장은 점점 두꺼워졌지만, 정작 그 안에는 진짜 내 이야기보다 남의 이야기가 더 많았다.
여름방학 즈음, 급식실에서 우연히 마주친 담임선생님께서 물으셨다. "너는 참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모두와 잘 지내니?" 나는 잠깐 입술을 깨물었다. 대답하고 싶었다. 선생님, 저는 그저 살아남기 위해 계산기를 두드렸을 뿐이라고. 매일 아침 거울 앞에서 연습한 미소로, 복도에서 마주치는 모든 눈빛에 맞춤형 대응을 준비했다고. 하지만 그저 웃음으로 넘겼다. 그게 또 하나의 계산이었을까.
운동장 구석에 있는 오래된 느티나무 아래의 벤치는 내 유일한 휴식처였다. 그곳에서는 아무도 내게 무언가를 기대하지 않았다. 한참을 하늘을 올려다보다가 문득 깨달았다. 나는 끊임없이 남의 눈치를 보며 살았지만, 정작 내 눈으로 세상을 제대로 본 적은 없었다는 것을.
지금도 가끔 교복을 입었던 그 시절을 떠올린다.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연습했던 미소, 상황별로 준비해 둔 적당한 농담들, 그리고 주머니 속에서 떨리던 손가락까지. 그때의 나는 어쩌면 최선을 다해 연기하는 배우였는지도 모른다. 무대는 교실이었고, 관객은 급우들이었다. 매 순간이 오디션이었고, 리허설이었고, 실전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연기는 점점 나의 일부가 되어갔다. 눈치를 보며 시작한 친절이 진짜 마음이 되고, 계산된 웃음이 진짜 즐거움이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쩌면 그것이 청소년기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연기하면서, 그 과정에서 진짜 자신을 발견해 가는 것. 마치 연극배우가 가면을 쓰고 연기하다가 문득 자신의 진짜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졸업을 앞둔 겨울, 마지막 종례가 끝난 뒤 텅 빈 교실에 혼자 남아 있었다. 석양이 칠판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이제는 계산기가 필요 없을 것 같았다. 그동안의 계산들이 모여 하나의 답을 만들어냈으니까. 그 답은 다름 아닌 '나'였다.
이제 와 생각해 보면, 그때의 계산기는 단순한 생존도구가 아니었다. 그것은 세상을 읽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었고,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연습이었다. 여전히 나는 가끔 주머니 속에서 손가락을 떨지만, 이제는 안다. 그 떨림이 나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나비의 날갯짓처럼, 작은 계산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빚어냈다는 것을.
교실 창가에 서서 노란 은행잎을 바라보던 열일곱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가 두드리는 그 계산기가, 언젠가는 너의 지도가 될 거라고. 타인의 마음을 읽는 그 미세한 떨림이, 결국은 너 자신을 이해하는 나침반이 될 거라고. 그리고 그 복잡한 방정식 속에서 피어난 해답이, 바로 너가 될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