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고시린 Nov 14. 2024

79년생 이효리와 정밀아

CEO를 위한 주역

 

잠에서 깨 정밀아의 노래 <어른>을 듣다가 피식 웃었다. 그는 “비 오던 어느 날에 안주도 없이 막걸리를 마시"다가, 홀연히 자신이 어른이 됐다고 느낀다. “어머나 내가 왜 이러는 거지, 어른이 된 것 같잖아.” 고작, ‘깡 막걸리’를 들이켜는 자기 모습에서 ‘어른’을 확인하는 내밀하고 수줍은 감성이 즐거웠다. 그는 세상 어디에도 있어 본 적 없는 '성인식'의 경험을, 옆에 나란히 앉은 친구의 목소리로 조근조근 들려준다.    

  

인디 가수라는 표현을 요즘도 쓰나 모르겠다. 어쨌거나 그는 긴 무명의 세월을 거쳐 3년 전엔가 《청파소나타》 앨범으로 한국대중음악상을 받았다. <어른>도 그중 한 곡이다. 그는 1979년생 여자 가수다.

 

**

1979년생 여자 가수로 이효리도 있다. 이효리는 뭐라 설명해야 하나. 가수를 넘어 한 시대를 풍미한 스타다. 처음엔 아이돌로, 다음엔 예능으로, 그다음엔 솔로로 사람들을 매혹했다.      


내내 무명이었다가 마흔을 넘어 은은하게 빛을 내는 중인 정밀아와 달리, 이효리는 20대부터 스타였고, 지금도 스타다.       


**

주역은 태양의 움직임을 집요하게 좇아간다. 그리고 삶의 스펙트럼과도 같이 다양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중에 눈에 띄는 두 가지 형상이 있다.     


.. 화천대유 | 태양(화)이 하늘(천) 저 높이 떠서 찬란한 상황이다.

.. 산화비 | 산 뒤로 숨은 태양(화)이 수줍은 듯, 붉은빛을 내보내는 상황이다.     


‘대유’는 큰 풍년을, ‘비’는 꾸미는 걸 뜻한다.      

이효리가 ‘화천대유’라면, 정밀아는 ‘산화비’다. 이효리는 중천에 내내 떠 있는 태양이다. 정밀아는 산 뒤로 넘어간 지 한참 지나, 뒤늦게 은은한 빛을 세상에 뿌리는 수줍은 태양이다.


**

‘자기 경영’은 경영 중에서도 고난도에 속한다. 경영이 잘못되어도 법인(기업)에겐 어느 정도의 면책이 주어진다. 개인에게 면책 같은 건 없다. '자기 경영'에 실패한 개인은 그치지 않는 폭우를 무방비 상태로 계속, 맞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일에 대해 무한 책임을 진다.

      

눈앞엔 두 가지 길이 있다.  

이효리의 ‘화천대유’ 스타일 자기 경영을 지향할 수도, 정밀아의 ‘산화비’ 스타일 자기 경영을 염두에 둘 수도 있다. 둘 다 나름의 방식으로 세상에 빛을 뿌린다.      


극도로 상업화된 방송-스타 시스템에서 이효리와 정밀아를 단순 비교하는 건 적절치 않을 수도 있다는 지적을 하면 할 말 없다. 하지만 이제 사십 대 중반, 1979년생 동갑내기 두 여가수의 확연히 다른 인생 경로를 보면서 비교를 안 하기도 그렇다.     


화천대유의 불(태양)은 급히 타올라 빨리 꺼지고, 뒤늦은 산화비의 불(태양)은 빛의 강도를 줄여 놓은 상태로 오래간다.

이전 03화 단풍과 커뮤니케이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