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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시린 Nov 13. 2024

단풍과 커뮤니케이션

주역 에세이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비결은 요즘 설악산을 물들이고 있는 강원도의 단풍에 있지…, 라 말하면 뜬금없을 줄 안다. 하지만 정성스레 뽑아낸 메시지로 누군가를 설득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은 정말, 늦가을 단풍에 깃들어 있다. 설악산까지 갈 필요도 없다. 한때 초록을 뽐내던 북한산을 붉은 기운으로 물들 단풍을 창밖으로 내다보면서 괜한 얘기 몇 줄 써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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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들인다는 것……. 커뮤니케이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다.


기업의 마케팅이든 선거 캠페인이든, 무엇보다 고객/유권자를 설득할 수 있는 메시지를 뽑아내는 게 우선이다. 많은 이들이 메시지의 성격에 대해선 끊임없이 말을 보태왔다. 요약하자면, 내가 가진 재료(상품, 정치적 가치)에 집중하지 말고, 그걸 받아들일 사람의 마음에 집중하란 거다. 그들의 마음속에 별자리 하나를 새겨 준다 생각하면 된다.

그런데 그것만으론 부족하다.

 

잠깐, 이천 년도 훨씬 전에 지중해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리해 놓은 레토릭의 기본을 복기해 보자. 그는 레토릭의 요소를 세 가지로 압축했다.  


로고스

파토스

에토스     


로고스와 파토스는 메시지의 두 가지 성격이다. 설득하려면 논리적이든지(로고스), 감성적이든지(파토스) 해야 한다. 그 밖에도 곁가지들이 있을 수 있다. 선동적인 메시지도 있을 수 있고, 읍소하는 메시지도 있을 수 있고, 분노를 유발하는 메시지도 있을 수 있다. 그래봐야 곁가지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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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도 그랬지만, 레토릭의 삼요소 중 가장 중요한 건 에토스다. 이걸 단순하게 풀이하면 메시지를 내보내는 사람의 캐릭터(도덕성을 포함하는)일 텐데, 레토릭이 오가는 그러니까 실제 커뮤니케이션의 장(場)에 에토스를 갖다 놓고 보면 의미가 좀 달라진다. 캐릭터 자체가 아니라, 그 캐릭터가 상대방에게 얼마나 먹히느냐가 된다.      


바로 ‘감화’의 문제다. 메시지 이전, 내 캐릭터로 그들을 얼마나 내 편으로 만들어 놓느냐는 문제다. 그게 바로 고객/유권자를 물들이는 것이다. 로고스와 파토스로 무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전에, 그 메시지를 받아들일 사람들을 내 편으로 ‘물들여야’ 한다. 평소에 아무런 애정도 주지 않고 있다가, 이거 해라, 저거 해라 메시지 하나 툭, 던진다고 먹힐 리가 없다.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원하나?

먼저, 물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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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의 풍산점 괘는 단풍의 형상이다. 늦가을 서늘한 바람(풍)이 불며, 그 아래 산을 붉게 물들였다. ‘풍산점’의 ‘점(漸)’은 점진적 변화를 뜻한다. 올해 단풍도 금강산에서 설악산으로, 설악산에서 지리산, 내장산으로 서서히 남하했다. 서두르지 않고 한반도를 붉게 물들였다.      


그러니,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붉게 물든 요즘 산하를 오랫동안 쳐다보고 있기만 하면 된다. 가을의 붉은 기운에 기분 좋게 취하면서, 그들을 물들이고 취하게 할 계획을 짜면 된다. 메시지를 정교하게 다듬기 전에 할 일이다.     


성공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원한다면,

먼저, 물들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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