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결에 머리를 다듬고, 빗물에 몸을 씻는다……!
이게 대체 어떤 상황일라나. 고려를 세운 태조 왕건이 후삼국의 지독한 싸움판을 누비고 다니는 자신을 묘사한 표현이다. 《고려사》에 나오는 말이란다. 뭔가 꼬질꼬질한데, 그렇게만 보기엔 결연하고, 멋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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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리학의 타협 없는 이데올로기 때문일까. 조선사(史)가 갑갑해, 고려 역사로 방향을 틀자마자 발견한 표현이다. 박종기 교수가 쓴 《고려사의 재발견》은 초장부터 후련하다. 천하를 차지하려는 궁예, 견훤, 왕건의 일대 결투가 때로 《삼국지》를 멀리 넘어 호방하다. 그중, 견훤과 왕건 사이 사생결단의 전투 스케치를 읽다가 피식 웃었다.
저자는 왕건을 ‘천하의 싸움꾼’으로 부른다.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전쟁기계’란 용어가 떠올랐다. 강건한 국가의 바깥에서 국가를 흔들어 대는 유목민들의 생존 방식…….
그런데 궁금했다. 왕건은 천하의 싸움꾼 또는 전쟁기계의 기질로만 그들의 천하(후삼국)를 통일했을까. 당시 후삼국의 통일은, 그에겐 천년 신라의 공간에 사라진 고구려를 불러들이는 혁명에 갈음했다. 천여 년 전, 대혼돈의 반도에서 그렇게 거대한 혁명을 성공시킨 건 과연 ‘전쟁기계’ 왕건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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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건의 수십 년 혁명 역정은 다른 이유를 들려준다. 후삼국 전쟁의 초반만 해도 압도적 우세를 점했던 견훤은 망해가는 신라에 적대적이었다. 신라를 수시로 공격하고, 신라의 왕족들을 능멸하고 농간했다. 왕건은 달랐다. 스무 살에 궁예 밑에서 군사를 일으키고 40년, 궁예를 떨치고 고려를 세우고 20년이 지나도록 신라를 적으로 두지 않았다. 통일의 그날, 그러니까 혁명 완수의 순간까지 신라의 왕실을 극진히 대우했다.
왕건이라고 이미 쇠잔한 신라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싶은 생각이 없었을까. 그러나 그는 참았다. 왕건을 최후의 승리자로 이끈 건 그런 신중함과 기다림과 초인적 관망의 능력이다. 민심이 자신을 향할 때까지, 그는 이미 망한 왕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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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서 혁명적 상황과 방법론을 제시하는 혁(革) 괘는 이상한 주문 하나를 던진다.
“하루해가 다하고 나서야 변혁한다.”
하루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라니. 오늘의 해가 다 지도록, 생각에 생각을 거듭하라 권한다. 손과 발을 움츠리고 있으라 충고한다. 기다림 자체가 난국을 타개하는 무기다. 기다리는 동안 상황도, 나도 변하기 때문이다. 하루해가 다 가도록, 초승달이 보름달이 다 되도록, 기나긴 한 해가 다 가도록, 기다리고 또 기다려라!
왕건은 세월을 붙든 채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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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정치의 일이라면, 혁신은 기업의 일이다.
혁명도, 혁신도 은밀하고 과감하게 이뤄져야 한다.
기억하자.
혁명과 혁신의 키워드는 하나가 아니라 두 개다.
은밀과 과감…….
‘은밀’의 세월은 길수록 좋다. 적어도 하루해가 다할 때까지 은밀해야 한다. 오늘은 내일을, 내일은 모레를 기다린다. 상황과 내가 접점을 찾아가는 동안 날이 저물고, 날 저문 뒤의 어둠 속으로 우리는 잠복한다. 그 칠흑 속에서 자신을 숙성시킨다.
왕건은 천하의 싸움꾼이어서가 아니라, 은밀한 세월을 견딜 줄 알아 거사를 이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