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밥상에서 마주친 거울 속 이야기
점심시간, 남직원 둘이서 회사 근처 시장에 있는 콩칼국수를 먹으러 갔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옆 테이블에 앉은 할머니 두 분 중 한 분이 우리를 유심히 보더니 정성스레 먹던 김밥 반줄을 건네줬다. 할머니의 주름진 손에서 김밥을 받아 들 때, 그 손끝에 새겨진 수십 년의 세월이 순간적으로 전해졌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이 그러하듯, 이 낯선 할머니의 손길에서도 문득 할머니의 삶의 무게가 고스란히 전해지는 듯했다.
"아재들 날 더운데 고생들 많지요? 내가 배불러서 그러는데 이것 좀 나눠 먹어요."
"코로나 안 걸렸으니까 안심하고 먹어요."
"수제비도 시켰는데, 너무 많을 것 같아서 나눠먹자고요."
어르신의 인심에 "감사합니다." 한마디 건네고 접시를 받았다. 이윽고 어르신은 계속 말을 걸어왔다. 자신의 아들과 또래 같다며 아들 생각이 난다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눈빛을 이해했다. 세상에는 공짜가 없다지만 김밥 반줄 값이라 생각하고 마음을 열어 이야기를 들어줬다. 자신의 아들과 며느리는 학생을 가르치는 교직에 있는 사람들이고 아들은 며느리에게 폭력을 당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우리 아들이 힘은 더 센데, 온몸에 멍들어가며 맞고 사는 거 보면 요즘 여자들 보통이 아니여~"
어르신의 떨리는 목소리에는 자식을 지키지 못하는 무력감과 안타까움이 묻어있었다. 그 말을 들으며 나는 눈을 들어 할머니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생을 살아오며 새겨진 주름 하나하나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듯했다.
함께 오신 어르신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 아들이 너무 착해서 문제야!"
단순한 한마디 속에 오랜 우정과 위로가 담겨있었다.
어르신은 수제비가 나오자마자 종업원에게 대접을 하나 더 달라 시켰고 정성껏 절반을 덜어 우리에게 건넸다. 그 순간 자신의 아들을 감싸주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이, 낯선 우리에게로 고스란히 전해지고 있었다.
"아재들은 장가갔지요?"
질문에 씩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사실 함께 온 직원은 이미 수년 전에 이혼을 했고, 그렇다고 대답하면 행복하게 살고 있는 모습이 어르신에게 상처를 줄 것만 같았다. 어르신은 우리가 주문한 콩칼국수가 나오기 전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더운데 고생하고, 기죽지 말라며 나갔다.
상황이 전환되길 기다린 듯 주문한 콩칼국수가 나왔다. 우리는 어르신의 이야기를 듣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지 않았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미뤄둔 우리의 이야기를 하며 식사를 이어갔다.
직원과 이런저런 사는 이야기를 나눴지만, 몸은 식탁에 앉아있으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으로 떠나 있었다. 내 의식은 마치 떨어져 나와 어르신이 앉은 테이블로 옮겨간 듯했다. 마음 한구석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 어르신의 아들 모습이 떠오르며 머릿속을 빙빙 맴돌고 있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을 이렇게 선명하게 그려본 적이 있었을까. 직원과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내 귀에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여전히 울려 퍼지고 있었다.
자기 인생을 살지 못하는 자식을 바라보는 모친의 마음은 복잡 미묘한 감정들로 얽혀 있었을 것이다. 어르신의 눈빛에서는 한없는 걱정과 깊은 슬픔이 뒤섞여 흘러나오고 있었다. 아마도 자식이 자신의 길을 찾지 못하는 것이 자신의 잘못된 교육이나 지나친 기대 때문은 아닐까 하는 자책감에 시달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자식의 고통을 덜어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과,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앞에서의 깊은 무력감이 뒤엉켜 있을 것만 같았다.
어르신의 아들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자식들을 생각해서 가정을 지키고 싶고, 교직이라는 모범이 되어야 할 직업의식에 사로잡혀 자신의 참담한 처지를 바라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누군가 정해준 것도 아닌 묵시적 사회적 통념과 관념이 정신을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남들 살아가는 방식을 똑같이 따를 필요가 없다. 어쩌면 그들의 삶은 거짓으로 포장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남들이라 불리는 타인들도 시기의 차이가 있거나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불안정한 가정을 이어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겉으로 멀쩡해 보이는 가정도 문을 열어보기 전까지는 그 안에 어떤 상처가 숨겨져 있는지 알 수 없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표면 너머를 볼 수 있는 지혜를 키워가야 할 뿐이다.
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하려는데, 앞에 나가신 할머니가 이미 계산을 하셨다고 종업원이 말씀해 줬다. 자신의 답답한 마음을 젊은이들에게 투영하며 대가를 지불하신 것이다.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오늘의 만남은 낯선 이의 아픔이 어떻게 내 가슴에 메아리치는지, 그리고 그 공명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깊이 연결되어 있는지를 일깨워준 시간이었다. 시장 한복판 작은 콩칼국수 집에서, 한 어머니의 평생에 걸친 사랑의 무게를 잠시나마 느꼈다. 겉모습만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고, 그들 목소리 아래 흐르는 보이지 않는 감정의 강을 느끼려 노력하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어르신이 건네준 김밥 반 줄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서로 모르는 이들 사이에도 흐를 수 있는 인간적 연결의 시작점이었다. 매일 수많은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지만, 진정으로 마주하는 순간은 드물다. 시장 골목 어딘가에서 여전히 아들을 걱정하고 계실 어르신의 모정이, 오늘의 따뜻한 국물처럼 내 마음속에서 오래도록 식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우연한 만남의 순간들이 모여 우리 삶의 진짜 의미를 만들어가는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