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이야기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세 번째 작품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대해 나만의 해설 이야기이다.
"오래전에, 우리는 이룰 수 없는 약속을 했다. "
이런 주제로 우리 앞에 다가온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2002년 별의 목소리 이후 3년 만에 만들어진 이 작품은 그의 작품 목록에서 본격적인 장편 애니메이션이라고 할 수 있고, 이 작품을 통해 비로소 국내의 팬들에게 그의 이름을 확실하게 알려주었다고 할 수 있다.
전작 별의 목소리가 25분에 불과한 단편에 머물렀지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이와는 비교할 수 없는 장장 91분의 장편애니메이션으로 그녀와 그녀의 고양이, 별의 목소리에 이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3번째 작품이다. 2004년 11월 20일 시부야 시네마에서 첫 개봉 이후 시차를 두고 다른 극장에서도 공개되었다.
전작을 뛰어넘는 작화 퀄리티와 능숙한 연출,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음악과의 매칭이 높이 평가되고 미야자키 하야오감독의 하울의 움직이는 성을 제치고 제59회 마이니치 영화 콩쿠르 애니메이션상을 수상했다.
이 작품 역시, 애니 이외에 소설판으로도 출간되었다. 소설판은 엔터브레인출판사에서 가노 아라타가 2005년에 출간되었는데 국내에는 2008년에 2권으로 출판되었다. 이외에도 만화판이 있는데 2006년에 사하리 미즈가 그린 것으로 나오지만 출판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른 자료에 의하면 월간 애프터 눈에 연재되다가 중단된 것으로 나온다. 사하리 미즈는 별의 목소리를 그린 작가이기도 하다.
기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일본이 쓰가루 해협을 사이에 두고 남북으로 분할 점령되고 다른 전후 세계가 무대. 1999년 홋카이도는 유니온에 점령되어 에조로 이름을 바꾸고 있었다. 유니온은 하늘 높이 솟은 수수께끼의 "유니온 타워"라는 탑을 건설하여 그 존재는 미국과 동맹 사이에 군사적 긴장을 초래하고 있었다.
아오모리에 사는 중학교 3 학년 후지사와 히로키와 시라카와 타쿠야는 쓰가루 해협 너머로 우뚝 솟은 타워를 동경하여 벨라시라(하얀 날개의 뜻)라는 이름의 비행기를 자력으로 조립, 언젠가 그것을 타고 탑까지 나는 것을 꿈꾸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동급생이었던 사와타리 사유리에 연정을 품고 있으며, 비행기 제작에 관심이 있는 그녀에게 벨라시라를 보여주며 언젠가 자신이 만든 비행기로, 사유리를 탑까지 데려가기를 약속한다. 하지만 갑자기 사유리는 아무런 연락도 없이 히로키와 타쿠야 앞에서 모습을 감추고 말았다.
이런 이유로 동요하게 된 사람은 비행기 제작을 중지하고 히로키는 도쿄의 고등학교로, 타쿠야는 현지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그녀가 사라진 상실감을 만회하려 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3 년 뒤인 1999년 , 유니온과 미국의 긴장은 더욱 높아지고 개전이 현실이 될 것 같은 기색 속에 탑의 비밀이 밝혀지고 있다.
한편, 사유리의 행방도 밝혀진다. 그녀는 중학교 3 학년 여름부터 3 년 동안, 원인 불명 증상으로 수면상태에 빠져 도쿄의 한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곧 타워와 사유리 사이에 충격적인 관계가 있는 것을 알게 된 히로키와 타쿠야는 그녀를 데리고 벨라시라를 몰아 탑까지 비행할 것을 결심한다. 드디어 선전 포고 후 전투 중에, 벨라시라는 쓰가루 해협을 넘어 타워로 날아간다. 그 먼 옛날, 그들이 약속한 장소를 향해......"
자, 본편 애니로 들어가자, 이 작품을 몇 번이나 보면서도 내가 놓친 실수는 작품의 시작 부분에서 나오는 성인 남자를 아무 생각 없이 지나쳤다는 것이다. 나중에 소설을 읽고 난 뒤에야 도입부에 나오는 그 남자는 주인공 후지사와 히로키가 성인이 된 모습이고 그가 고향 아오모리현의 츠가루에 가서 회상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도입부를 보자.
이 모습이 바로 성인이 된 후지사와 히로카이다. 소설에서는 31세로 나오는데, 소설판에서 도입부에는 이렇게 나온다.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텅 빈 차 안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이곳 츠가루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 단 한줄기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
여름이 다가올 무렵, 문득 16년 전의 어린 날을 기억한 히로키는 예정에 없었던 고향 츠가루로 떠나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단 한줄기 노선이라는 것은 JR츠가루선津軽線을 말한다.
기차 안에서 보게 된 남녀 학생.
"외떨어진 자리에 중학생 한 쌍이 있었다.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푸근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교의 교복이다. 교복도 옛날과 다름없다. 하지만 소년과 소녀는 무척 즐거운 듯했다. - 아무런 그늘도 없이. 예전에는 내게도 아무런 그늘도 없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쓸데없는 일이 견딜 수 없이 즐거운 보물이었다. 소중한 친구가 하나 있었고 아름다운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종점 바로 앞의 츠가루 하나마 역에서 내렸다. 조그만 자전거 주차장을 곁눈으로 보면서 민가와 모인 곳과는 반대 방향으로 향해 만들다만 채 끝내 개통되지 않았던 신츠가루 해협선의 고가 아래를 지났다..."
*츠가루해협선
2025년 현재 츠가루 해협선은 존재하지 않고 있다. 츠가루 해협선( 津軽海峡線)은 아오모리역과 하코다테역을 잇는 철도 노선의 안내상의 명칭이다. 2016년 3월 26일의 홋카이도 신칸센의 개업 이후 기존 쓰가루 해협선 구간의 여객 열차는 신칸센 열차만 운행하며, 쓰가루 해협의 세이칸 터널을 통과하는 재래선 여객 열차는 일부 단체 임시 열차를 제외하면 전부 소멸했다. 이 때문에 "쓰가루 해협선"의 명칭은 폐지되었다.
*츠가루 하나마 역은 존재하지 않은 역이다.
"이윽고 폐허가 된 공장의 조립식 가옥이 나왔다. "
"울창한 나무숲을 벗어나자 갑자기 경관이 펼쳐졌다. 눈앞에 마치 목장처럼 연두색으로 빛나는 들판이 한가득 펼쳐져 있었다."
그 장소에서 뜻밖에 보게 된 사유리의 환상, 성인이 된 히로키에 중학생의 모습인 사유리가 나타나는데 이것은 일종의 환상이다. 이 장면에 대한 소설판의 묘사는 이렇다.
"하지만 나는 거의 실체처럼 그녀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었다. 환상의 그녀가 풀을 밟는 소리가 났고 뒤에서 종종걸음으로 나를 따라잡아 돌아보았다. 짧은 교복 치마가 나풀거리며 길고 까만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도입부의 몇 개의 장면을 소설에서 서술하는 것으로 함께 살펴보았다. 이 도입부의 장면은, 주인공 히로키가 사유리와 타쿠야와 함께 했던 비밀의 장소를 찾아가서 과거의 기억들과 마주치는 것으로 시작된다.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이 도입부는 세 사람의 운명은 결국 함께 할 수 없는 것이었고, 각기 헤어져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이다.
작품의 결말에, 깊은 수면에서 사유리가 깨어나고, 그렇게 두 사람이 벨라실러를 타고 날아가는 장면을 보고 해피엔딩이라고 막연히 생각했던 나는 순진무구한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애니의 도입부의 첫 장면에서 히로키가 고향 츠가루로 가는 장면에서..
"그녀는 늘 뭔가를 잃어버리는 예감이 든다고 했다. 당시 아직 중학생이었던 난 실감이 날리도 없었거니와..
그래도 그녀의 그 말은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라는 독백이 나오는데... 이 독백과 도입부의 장면은 이 작품의 전체 스토리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뭔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는 것... 그것은 사유리가 느끼는 불안을 말하는 것인데, 단순히 사유리가 느끼는 감정이 아니라, 히로키와 타쿠야도 해당되는 것이었다. 사춘기의 시절에 느끼는 애틋한 첫사랑의 감정, 소중한 친구와의 우정,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는 동경, 아름다운 청춘의 소소한 일상... 이런 것들이 영원히 계속되었으면 하는 것인데 사춘기 시절에는 누구나 느끼며 갈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춘기를 지나 성장하면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그 애틋한 감성들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임을 사유리는 느끼고 있었다. 이 작품과 후속작인 초속 5센티미터를 보면서 대다수의 관객들이 느끼는 감정중의 하나가 어린 날의 아련하고 순수한 감성을 잃어버리고 살아왔구나라는 것인데.... 그런 느낌은 결국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말한 사유리의 말과 같은 것이지 않을까 싶은데..
도입부에 나오는 폐허의 역도 여러 가지 의미로 볼 수 있다.
알다시피 이 역은 주인공 세 사람의 추억이 담겨 있는 곳이다. 소설에서 이 역에 대해 자세한 묘사가 나오는데...
"오른쪽으로 제법 멀찍하게 낡아빠진 역이 비바람에 드러나 있었다. 콘크리트 승강장이 세 줄 늘어서 있고 그 승강장들을 입체적으로 잇는 목조 구름다리가 보였다. 구름다리는 벽과 바닥이 군데군데 망가져 있었다. 만들다 만 채로 방치되어 결국 한 번도 열차가 오가지 못했던 폐역이다. 아무것도 찾아오지 않고 어디로 갈 수 없는 장소, 이 장소에 오래전 나의 모든 것이 있었다..."
이 역은 처음 히로키와 타쿠야가 벨라실러를 만들기 위해 찾아낸 비밀의 장소였다. 그 뒤에 사유리와 함께 이곳에서 벨라실러를 만들어 갔고 그 시절은 세 사람의 삶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이었으며 동시에 그 추억들이 남겨져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그들은 흩어졌고 다시 찾아간 그곳에는 사랑했던 사유리도, 소중한 우정이었던 타쿠야도 없었으며 그곳에서 늘 보이던 거대한 탑도 사라지고 없었다.
결국 소설에서 서술한 것처럼 아무도 찾아오지 않고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장소가 그곳이며,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는 외로운 삶을 살아가는.. 그러면서도 어디로 떠날 수도 없는... 여전히 불확실한 미래와 안타까운 과거의 기억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히로키의 모든 것을 바로 그 황량한 역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그 황량한 역은 한때는 찬란했으되 지금은 고독한 히로키 그 자신이었던 것이다.
그 쓸쓸한 모습은 소설의 서론 부분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탑을 잃은 것은 내 탓이다. 사유리도 이미 내 옆에 없다. 사유리 그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어째서 나는 지금 사유리와 함께 있을 수 없을까....................... 나는 천천히 걸어가서 철 선로가 부설된 채 방치되어 있는 장소까지 갔다. 두 개의 노선이 합류해 다시 나뉘는 곳이 있었다. 그곳까지 가서 붉게 녹슨 선로에 앉았다. 그리고 조금 울었다. 나는 어쩌면 잃지 말아야 할 것만 잃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나이고, 그가 그이고, 그녀가 그녀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우리들의 앞날은 갈아탈 수도, 목적지 변경도 할 수 없었다...."
잃지 말아야 할 것들만 잃어버린 히로키... 순수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도, 가슴 떨리는 첫사랑의 사유리도..
너무나 소중했던 타쿠야도.... 이제는 모두 다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그것이 세 사람의 운명이었고 피할 수 없는 것이었다.
안타까운 것은 소설 속의 히로키가 말하듯이 앞날은 갈아탈 수도, 목적지를 변경할 수도 없었고 그들의 운명이 그렇게 될 거라는 걸... 그 시절의 그들은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유리가 그렇게 간절하게 그리워하던 따뜻한 온기의 세계... 그 세계는 사유리뿐만 아니라, 히로키도 간절하게 바라왔지만.... 슬픈 운명은 그것을 결국 허락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