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은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이란...무인도나 다름없어.."
오랜만에 만난 대학때의 동아리선배...소주잔을 연거푸 입에 털어넣으며....그렇게 말했습니다.
선배가 사랑했던 사람, 아니 아내였던 그녀....그녀가...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지 벌써 6년이 지났습니다. 예쁜 딸아이를 하나 남겨두고...가을이 깊어가던 11월의 어느날...그의 곁을 영원히 떠났습니다.
술기운이 올랐는지 선배는 품에서 수첩을 꺼내었고 그 수첩속에서 한장의 사진을 꺼내었습니다. 그것은 선배의 아내이자 그의 선배이기도 합니다.
"이게 말야...나는 이렇게 나이가 들어가는데...이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아....스물 아홉...그 시절의 모습으로만 남아 있어... 내가 나이가 들어...노인이 되어도...이 사람은..여전히 스물아홉의 젊은 모습으로 기억되잖아... 슬프긴 한데..한편으로 이 사람은 나이를 먹지 않으니까...세월이 지나..우리 딸이 이 나이가 되면...엄마사진을 보고 어떤 말을 할까 싶어.. 엄마는 하나도 늙지 않았네...아니 영원히 나이를 먹지 않잖아...그걸 상상하면...이상하지 않니? 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어느덧 삼십대가 되었는데...지를 낳은 엄마는 이십대의 모습으로 남아있으니..."
차마 뭐라 말을 할수가 없었습니다. 6년이나 지난 일이지만 여전히 그는 선배를 위로할 말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배는 고개를 숙이고 있었습니다. 그는 조심스럽게 선배의 등을 두드려주었습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은 것 같지만 술 한잔 들어가면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생각에 눈물짓는 선배..
"야...사랑하는 내 후배....너도 이제 결혼을 했으니까 하는 말인데....사랑에 있어서 가장 하지 말아야 할게 뭔지 아니? 그건..다음에 라는 거야..다음에 여행가고..다음에 저녁먹고...다음에 잘해줄게 같은...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있을때...아니 지금 당장 잘해줘야 해...다음이란 건 없어...다음이라고 말하는 것은...그 사랑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 없는 일이야 알겠니? ...."
사랑하는 사람이 없는 세상. 그는 무인도라고 했습니다. 아무것도 없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적막함만 가득한 무인도...
"임마..제수씨에게 잘해줘 알았니?"
술에 취해 택시를 타는 선배는 그렇게 그에게 소리쳤습니다. 있을때 잘해라는 말....그 평범한 말이...삶에 있어 중요한 것인데...사람들은 그것을 쉽게 잊고 살아갑니다.
어느새 아파트 앞에 이르렀습니다. 이 시간까지도 불이 켜져 있는 것을 보면 아내는 그를 기다리면서 책을 읽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큰 숨을 몰아쉬고...집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리고 하늘에 감사했습니다....그 시간...그의 아내가 그를 기다리고 있고...잠시후면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될터인데...그 순간은, 그 세상은 결코 무인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