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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이야기

운명에 대하여

by 늘 담담하게

처음 그녀에게 반해서 구애할 때 그는 늘 우리의 만남은 운명이며 천생연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 말을 할 때마다 그녀는 다소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무시하곤 했는데.


어느 날 저녁이었습니다. 그녀의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나서 헤어지려고 하는데 갑자기 그녀가 그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말에요... 계속 그쪽과 나... 운명이라고 하는데요.... 그쪽이 계속 말한 대로 우리의 만남이 운명이라면 한번 시험해 볼까요?"


그는 깜짝 놀랐습니다.


"시험해 보다니요?"

"운명이라면서요... 운명이라면... 증명해 볼 수도 있는 거잖아요..."

"어떻게요?"

"어려울게 뭐가 있겠어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녀는 지갑에서 동전을 꺼내 들었습니다.


"자... 이 동전을 던져서... 앞이 나오면... 우리는 운명인 거고요.. 뒤쪽이 나오면... 운명이 아니니까... 제 앞에서 두 번 다시 운명이니 천생연분이니 하는 말들을 하지 말아 주세요... 어때요? 할 수 있겠어요?"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동전으로 운명의 여부를 알아보다니 하지만 만약 그 순간에 그녀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두 번 다시 그녀에게 다가설 수 없는 것은 너무도 분명한 일이기에 그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 이것조차도 운명이라면..."


그렇게 혼잣말을 하고 나서 그는 그녀에게 말했습니다.


"좋아요... 앞이 나오면 우리는 운명이고 천생연분이니까 계속 만나는 거고요... 뒤가 나오면 두 번 다시 그쪽 앞에 나타나지 않을 거예요"


"오호... 호기를 부리시네요... 자아 그럼 한번 시험해 볼까요? 우리의 운명을.."


그녀는 공중으로 동전을 던졌습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동전이 공중에서 맴돌다 떨어지기까지를 지켜보는 것은 정말 영겁의 시간이 흘러가는 것 같았습니다. 땡그랑 소리와 함께 동전이 땅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동전이 땅에 넘어지는 순간 그녀가 그 동전을 밟았습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손을 뻗어 동전을 주었습니다.

그런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그가 조심스럽게 물었습니다.

"앞이에요? 뒤예요?"


그녀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웃으며 말했습니다.


"뒤예요... 역시 우리는 운명이 아니네요... 이제 약속을 지키셔야 할 것 같은데요.. 설마 두말을 하는 건 아니겠죠?"


뭔가 결정을 하고 나면 단호하게 밀고 나가는 그녀인지라.. 그 순간 딱히 달리 말할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허탈한 느낌으로 그는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약속한 대로... 이제 그녀 앞에 나타나서도 안되고.. 연락해서도 안 되고.. 설령 우연으로 마주치게 될지라도... 운명이라고 할 수 없기에... 그녀를 처음 보는 순간... 뭔가 마음에 강렬하게 스며드는 것 같은 느낌이 있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끝나다니... 그렇게 시간이 흘러가고 한 달 정도 흘러갔습니다.


실연 아닌 실연의 후유증이.... 휩쓸고 지나간 어느 날 저녁... 퇴근하기 위해 회사를 나서는 순간, 그녀가 서 있었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아니... 여긴 어떻게..."


당황해하는 그를 보면서... 그녀가 미소 지었습니다.


"왜 그렇게 놀라요? 제가 여기에 서 있어서요?.... 글세요.. 이것도 운명이 아닐까요?"

"네에..."

"그날... 동전 던지기 말이에요... 사실은 앞면이었어요..."


그는 어이가 없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한참 동안 그녀를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문득... 그날의 기억이 생각나서... 이제는 함께 살고 있는 그녀에게 그가 말했습니다.


"그때... 그 동전 던지기 말이야...."

"동전 던지기? 아... 그때... 그게 왜?"

"당신이 앞면이라고 했잖아 나중에..."

"그랬지... 그런데 그게 어때서?"

"정말... 앞면이었어?"

그 질문에.... 그녀는 그냥 웃기만 했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가지고 온 커피를 내밀었습니다. 우리는 정말 운명이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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