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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

내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기억하세요?

by 늘 담담하게

요즈음 그와 그녀는 무척 바쁘기만 합니다. 그는 최근 추가된 사업계획 때문에 아침 일찍 출근했다가 저녁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돌아오고 있고, 그녀 또한 회사일로 바쁘지만, 얼마 전에 장모님이... 병원에 입원하시는 바람에 퇴근 후 병원에 들렀다가 오기 때문에, 어떤 날은 깨어 있는 서로의 얼굴을 보기도 어려울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런 이유로 결혼초에 그와 그녀는 상대가 늦게 오더라도 그 시간까지 먼저 자지 않고 기다려주었지만 지금은 몸이 피곤해 도저히 그럴 수가 없어서.. 그가 늦게 들어와 보면 아내는 깊은 잠에 빠져 있을 때가 많아졌습니다. 그렇다 보니 서로 대화를 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게 되었고.. 그래서 그와 그녀는 짧은 편지와 메모를 남기기 시작했습니다. 톡이나 문자로 모든 것을 전달하는 시대임에도 두 사람은 뭔가 올드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가 늦게 들어와서 잠든 아내를 보며, 침대옆 아내가 쓰는 커피잔 옆에 메모지를 올려놓았기도 하고, 아침 일찍 나갈 때면 그가 항상 준비하는 토스트 옆에 메모지를 놓아두기도 했습니다.


"당신 너무 깊게 잠이 들어서 깨우지 않았어. 오늘 하루 너무 피곤한 모양이네. 내일 아침에도 내가 먼저 나가야 할 것 같아. 아침식사는 탁자 위에 올려놓을게. 사랑해요... 마누라님"


"오늘 저녁도 늦을 것 같아, 점심때쯤 전화하겠지만, 혹시 전화 못하더라도 이해해 줘. 무슨 일 있으면 문자 보내주고. 저녁에 늦더라도 먹을 것은 되도록 내가 사 올게. 오늘 하루도 즐겁기를.. 당신의 네오가..."


"장모님은 괜찮으신 거지? 내일 아침에 회사에서 장모님에게 전화드릴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어떻게든 이번주말에는 시간을 낼 테니까.. 같이 가자. 주말에는 내가 병실을 지킬 테니까.. 믿어줘... 피곤하더라도... 당신은 항상 예쁜 사람이야..."


그녀 또한 그에게 짧은 메모들을 남겨두었습니다. 퇴근 후에 집에 들어갔을 때, 냉장고 위에 붙어 있는 아내의 메모.


"많이 피곤하지? 당신 회사는 항상 문제야, 인원도 부족한데 일은 너무 많고.. 집에 퇴근했다가 지금 병원에 가려고... 엄마 때문에 오늘 밤은 병원에서 자고 내일 바로 출근할게. 문단속 잘하고... 서방님... 편히 주무시와요.."


혹은 늦은 시간 집에 들어갔을 때 이미 잠든 그녀가 남긴 메모


"서방님! 오늘 밤도 또 늦는군요^^ 소첩은 너무 피곤해 잠자리에 들겠나이다. 서방님.. 오늘 지어온 한약 냉장실에 있으니 반드시 드셔요. 호호 그리고 오늘 밤은 내가 아무래도 침대 위에서 난동을 부릴 것 같으니, 힘들면 작은 방에서 주무셔도 됩니다. 항상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것을 알지요? 당신의 트리니티가..."


잠버릇이 다소 고약한 그녀가 특별히 다른 방에서 자도 된다고 허락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알고 있겠지만, 네오와 트리니티는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별칭입니다. 영화 매트릭스의 두 주인공의 이름이지요.


그는 메모를 쓸 때마다, 마치 아내에게 연애편지를 쓰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연애편지라는 것은 결국 그녀에게 자신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기에 그는 짧은 몇 줄이라도 그의 마음속에 담겨 있는 사랑을 표현해 내려합니다.


솔직히 그 몇 줄 안 되는 짧은 메모 한 장이 그녀에게 어떤 위로를 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성스럽게 적어 내려간다면 다소 둔감한 그녀도 깨닫지 않을까 싶습니다.


미국 레이건 대통령은 그가 알츠하이머병으로 모든 기억을 잊게 될 때까지 50년 동안 그의 아내 낸시여사에게 매일 사랑의 편지들을 써서 보냈습니다. 그게 단순히 유난 떠는 일일까요?


미국 NBC 인기 드라마, 로 앤 오더에 출연했던 제리 오바크는 2004년 69세의 나이에 대장암으로 숨질 때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아내 엘레인에게 사랑의 시를 썼습니다. 그것도 결혼 생활 25년 내내.


항상 내용은 짧았지만 그 안에 담긴 아내에 대한 사랑은 깊은 울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항상 촬영 스케줄에 쫓겨서 새벽녘이 돼서야 비로소 집에 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그의 아내 엘레인은 이미 잠들어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는 잠든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사랑의 시를 썼습니다.. 그러고는 곱게 접어 아내의 커피잔 한편에 올려놓았습니다.

잠에서 깨어난 엘레인은 남편이 남긴 사랑의 시를 읽어보곤 곤히 잠들어 있는 오바크의 볼에 살짝 입맞춤을 했습니다. 그 시간이 25년이었습니다..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엘레인은 건강이 극도로 악화되었고, 2009년 초 엘레인은 급성폐렴이 걸려 결국 끝내 회복되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는데 당시 병실에서의 그녀의 모습은 너무도 평온한 표정이었습니다.


그 뒤 가족들이 오바크의 시를 발견하고 책으로 발간했는데... 책의 제목은 '내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기억하세요'(Remember How I Love You)였습니다. 따로 달린 다른 제목은 '아주 특별한 결혼생활의 러브레터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말로 모든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하지만 바쁜 삶 때문에, 서로에게 말할 기회가.. 그리고 서로에게 사랑하는 마음을 전하지 못할 때가 너무 많습니다. 전화나 톡은 지극히 습관적이고 그런 상태에서의 대화는 지극히 건조합니다.


그러다가.. 좀 더 시간이 흘러가면, 연애시절이나.. 결혼초 서로에게 가졌던 감정을 열렬히 전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시들해져 버립니다. 그렇지만... 매일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일상일지라도.. 그 안에서 서로에게 전하는 짧은 메모 한 장으로 사랑을 전할 수만 있다면...


그는 평생.. 그녀에게 수많은 메모지와 편지를 보낼 것입니다. 그리고 먼 훗날 그녀에게 물어볼지도 모릅니다.


"내가 어떻게 당신을 사랑하는지 기억하세요?"


아마 그녀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할 것입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이 수많은 메모지... 그것으로 당신이 나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는지.. 알 수 있을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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