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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 그녀의 사랑 이야기

당신에게 주는 상장

by 늘 담담하게

결혼기념일이 다가왔습니다. 2년 전 그녀는 아름다운 5월의 신부가 되어 그와 남은 삶을 함께 하기로 맹세했었습니다. 지난 2년 여자에게 있어 결혼 전과 결혼 후의 삶은 어떤 것이냐고 누군가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흠... 결혼으로 인해 좀 더 넓은 세상을 알게 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어. 그전에는 우리 아빠, 엄마, 언니들. 친구들.. 이런 게 내 삶이었는데 결혼을 하고 나서 남편, 시댁 이런 새로운 가족들이 생겼고 내 삶의 크기가 좀 더 커진 거지... 결혼 전보다.. 또 다른 면에서는 그동안은 막연하기만 했던 결혼생활이 현실이 되고 책임도 늘어나고 그런 면들이 달라진 것 같아... 그리고... 이제야말로 내가 진짜 여자가 된 것 같기도 하고 내가 한 남자의 아내가 되었고 이제 아이를 낳으면 엄마도 되는 거잖아.. 물론 결혼 후의 삶이 장밋빛 행복이지는 않아. 신경 써야 할 것도 많고... 부부싸움도 하고... 뭐.... 그래도 조심스럽지만 해볼 만한 것 같아. 다른 사람은 어떨는지 모르겠지만 난 내가 선택한 결정에 대해 후회는 없어... 늘 나를 존중해 주고 아껴주고 사랑해 주는 한 남자가 내 뒤에 있으니까...."

결혼기념일이라고 해서 흔히 말하는 이벤트 같은 것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사실 결혼기념일이라는 게 두 사람이 결혼한 날을 기억하고 그날의 느낌과 각오들을 떠올리면서 두 사람의 사랑을 더욱더 내실 있고 아름답게 만들어 가는 날인데 언제부터인가 그날은 이벤트가 없으면 안 되는 결국에는 서로에게 부담스러운 날이 되어가는 것 같은 날로 바뀌어 가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진정한 축하가 아니라 의무감만 남게 되는 결혼기념일은. 차라리 그냥 잊어버리고 가는 게 낫지 않을까 싶기도 하는데... 어찌 되었건 결혼기념일이라고 하지만.. 그와 그녀는 조촐하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어디 좋은 곳이라도 여행을 갔다 올까도 싶었지만 두 사람 다 바쁜 탓에 따로 시간을 낼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집에서 보내기는 그렇고 해서 두 사람의 새로운 아지트가 된 붉은 벽돌 파스타가게 드 플로르에서...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그날 저녁, 그녀는 그보다 먼저.. 퇴근해서.. 드 플로르에서 그를 기다렸습니다. 한참 후에 그가 허겁지겁 나타났습니다.


"왜 이렇게 늦었어?"

"응... 뭘 좀 찾아오느라고..."

"뭔데?"

"그런 게 있었어..."

두 사람이 주문을 하고... 맛있는 파스타가 나왔고... 모처럼 그와 그녀는 즐거운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가 끝날 즈음에...


"당신에게 줄 게 있어?"

"응?... 선물 같은 거 하지 않기로 했잖아..."

"선물은 아니고...."

"그럼 뭔데?"

"잠시만 좀 경건한 자세를 갖춰주지 않을래.... 내가 당신에게 내 마음이 담긴... 작은 것을 줄려고 하거든.."

"아니 이 아저씨가... 웬 경건한 자세?"


그는 가방에서 뭔가를 꺼냈습니다. 그것은 하얀색의 종이였습니다.


"그게 뭐야?"

"어허.. 경건한 자세...."


그렇게 말하고 나서 그가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아니 왜 이래.. 사람들 보잖아 창피하게..."

"오늘 밤.. 내가 당신에게 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거야... 감사의 마음을 담은 상장..."

"상장? 맙소사...."

"당신은 지난 2년 동안..... 친정과 시가의 부모님들에게도.. 정성과 마음을 다해 보살폈고.. 어리석고 여린 한 남자를 아낌없는 희생의 정신과 사랑으로 이끌어왔습니다. 아울러 지난 2년 동안... 당신의 성실한 생활은... 우리의 통장 잔고를 몇 배로 늘리는 등 자산의 증대에도 지대한 공헌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은 한 사람의 사회인으로서도 최선을 다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이렇게 가정과 직장, 두 개의 삶을 최선을 다해 성실하게 살아온 당신의 지대한 공헌에 대해 이렇게 감사의 상장을 전합니다. "

그것은 정말 제대로 만들어진 상장이었습니다. 그녀는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그 상장을 받아 들었습니다. 이 창피함을 어쩌려고.......

결혼기념일에 상장을 받은 여자는 아마 그녀가 유일할 것입니다. 그녀가 상장을 받아 든 순간... 주변에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다른 사람들이 웃으며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 사람들과 같이 웃으며 박수를 치는 그가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습니다.

"당신은 상 받을 만 해... 고맙고 또 고마워.... 지난 2년간.. 날 버리지 않고... 살아줘서... 정말 고마워..."


굉장히 창피한 일이지만, 그래도 뭐 이런 이벤트 괜찮습니다.


이해

세상은 이렇게 넓고
어둠은 이렇게 깊고
그 한없는 재미와 슬픔을
나는 요즘 들어서야 비로소
내 이 손으로 이 눈으로 만지고 보게 된 것이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오랜 시간
강바닥을 헤매는 고통보다는
손에 쥔 한 줌 사금에 마음을 빼앗긴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지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 요시모토 바나나의《키친-달빛 그림자》중에서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