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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이야기 -3.도쿄의 오피스 거리, 마루노우치

마루노우치의 어제와 오늘

by 늘 담담하게


도쿄역의 마루노우치 출구로 나오면 거대한 현대식 빌딩군이 모여 있는 마루노우치가 보인다. 마루노우치(丸の内)는 도쿄도 치요다구에 있는 비즈니스 거리이자 상업 지구로 도쿄역과 황궁 사이에 위치한다. 마루노우치라는 이름을 뜻 그대로 풀이하면, "동그라미 내"라는 뜻이다. 황궁의 바깥쪽 해자 내에 위치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이 지역은 일본의 금융 산업의 중심으로, 서울의 마포와 여의도를 합쳐 놓은 것과 비슷하다. 일본 내 3위까지의 모든 은행들의 본점들이 여기에 위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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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노우치 출구


마루노우치는 1590년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에도성에 들어가기 전에는 도쿄만의 일부였고 히비야 후미로 불렀던 곳이었다. 1592년부터 에도성이 확장공사를 하면서 이곳을 매립하기 시작했고 바깥 해자를 만들자, 그 이전 안쪽에 있던 해자는 안쪽 해자가 되었기 때문에 이곳은 오쿠루와우치御曲輪内(에도성의 바깥 해자에 둘러싸인 안쪽이라는 뜻)이라고 불렀다.


이후 이곳에 다이묘들 중에서 신판 다이묘(도쿠가와 일족의 다이묘들), 후다이 다이묘(도쿠가와 가문의 가신들)의 도쿄 저택들이 주로 이 지역에 몰려 있었다. 당시 이런 다이묘들의 저택이 24개가 있었기 때문에 다이묘 코우지大名小路라고도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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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시대 마루노우치에 있던 돗토리번 저택의 정문, 현재의 우에노공원으로 옮겨져 있다.


이외에 에도 막부와 관련된 시설들이 있어, 엄격한 통제와 감시가 이루어진 곳이다. 쉽게 말해 마루노우치는 기본적으로 무사의 거리이며, 에도의 보통 사람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곳이었다. 메이지 유신 이후 다이묘 저택들은 헐려 관유지가 되었고 메이지 신정부는 여기에 구 일본 육군이 쓸 병영과 막사를 지었다. (어느 정도 세상이 안정되어 황거의 경비를 위한 군사시설은 야마노테 방면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육군의 병영들은 1890년에 다른 곳으로 옮겨갔고 미쓰비시 그룹의 이와사키 야노스케(岩崎 彌之助, 1851년 2월 8일 ~ 1908년 3월 25일, 창립자 이와사키 야타로의 동생)가 이 땅을 150만 엔에 매입하였다.(당시 판매된 부지 면적은 84,000평, 매입 가격에 대해서는 자료에 따라 차이가 있다. 호즈미 가즈오가 쓴 메이지의 도쿄에는 128만 엔이라고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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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쓰비시가 이 땅을 구입할 때만 해도 스기야바시에서 오테마치 주변 일대가 풀이 무성한 들판이 되어 있어 미쓰비시가하라 三菱ヶ原 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4년간 그대로 방치되어 있다가 청일전쟁으로 경기가 좋아지기 시작하자, 1894년에 마루노우치 최초의 오피스 빌딩인 미쓰비시 1호관이 준공되었고 이것을 시작으로 런던의 롬바드가를 본뜬 붉은 벽돌 거리가 건설되어 잇쵸 런던 혹은 리틀 런던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이렇게 미쓰비시가 마루노우치 지역을 개발하였기 때문에 현재도 이 지역의 많은 부분이 미쓰비시 부동산 소유로 남아 있고 미쓰비시 그룹 내 회사들의 본사가 이 지역에 많이 위치해 있다.


미쓰비시 1호관의 준공과 같이 고치번의 번주 저택의 철거지에 도쿄부청사(훗날의 도쿄도청사, 지금은 신주쿠로 옮겨갔다)가 완성되었고 1911년 돗토리번 저택 터에 제국 극장, 1914년에는 미카와 요시다번, 미마사카쓰야마번, 가즈사 쓰루마키번 저택터에 도쿄역, 1923년 오카야마번 저택터에 마루노우치 빌딩이 건축되면서 급속하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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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마루노우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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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지 시대의 마루노우치, 오른쪽 건물이 1호관 건물이다.


*도쿄에 이런 지방 번의 저택들이 있는 에도 막부의 참근 교대 제도 때문이다.


참근교대(: 参勤交代 산킨코타이)는 각 번의 다이묘를 정기적으로 에도를 오고 가게 함으로써 각 번에 재정적 부담을 가하고, 볼모를 잡아두기 위한 에도 막부의 제도이다. 이 제도에 따라 각 번은 도쿠가와가에 반기를 들기가 매우 힘들어졌고, 도쿠가와 막부가 15대에 걸쳐 번영을 누리는 요인이 되었다. 산킨(参勤, 참근)은 일정 기간 주군(이 경우는 쇼군)의 슬하에 오고 가는 것, 코타이(交代, 교대)는 여가를 제공받아 영지에 돌아가 행정 사무를 보는 것을 의미한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마루노우치의 오피스 빌딩들은 연합군 사령부에 접수되었기 때문에 쫓겨난 기업의 대부분이 도쿄역을 낀 야에스로 옮겨갔다. 이후 마루노우치가 현대화되기 시작한 것은 1957년부터였다. 당시 새로운 건물들을 짓기 위해 기존의 붉은 벽돌로 건축된 건물들을 해체해 고층 빌딩들이 들어서기 시작했고 1970년대에는 약 30m 높이 건물군들이 건축되었다.


%EB%A7%88%EB%A3%A8%EB%85%B8%EC%9A%B0%EC%B9%982.jpg?type=w1 1930년대 마루노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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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마루노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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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높이의 건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낙후화되었고 2000년대에 들어 마루노우치 재개발 사업이 본격화되면서 마루노우치 빌딩, 메이지야스다생명빌딩들이 들어섰다.


여행자의 입장에서 사실, 마루노우치의 건물들을 보러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마루노우치 지역의 빌딩들과 그곳에 있는 유명음식점,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마루노우치 나카도리의 일루미네이션등은 볼만하다. 오늘은 마루노우치가 어떤 지역이었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간단하게 살펴봤다. 다음 편부터는 마루노우치 지역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이야기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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