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번째 이야기
이번 편부터는 이 작품의 기본 내용을 따라 이야기를 진행할까 한다. 앞서 이어진 본편 해석의 내용을 되새기면서 살펴보면 작품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애니가 시작되면서 후지사와 히로키의 내레이션이 나온다.
"그녀는 늘 뭔가를 잃어버리는 예감이 든다고 했다. "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는 신주쿠역에 성인이 된 후지사와 히로키가 출근을 하는 듯 나타난다.
분명히 넥타이를 맨 정장차림으로 전철에 올랐지만 화면이 바뀌면서 츠가루선을 달리는 보통열차로 옮겨간다.
계속해서 후지사와 히로키의 내레이션이 이어진다.
"당시 아직 중학생이던 난 실감이 날리도 없었거니와 그래도 그녀의 말은 신기하게도 내 마음을 흔들어 놓았다"
"아직 전쟁이 발발하기 전 에조라 불리던 거대한 섬이 외국의 영토였을 무렵의 이야기이다."
소설에서 이 부분에 대한 묘사이다.
"무엇 하나 변하지 않았다. 텅 빈 차 안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운 분위기였다. 이곳 츠가루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이 단 한줄기 노선을 이용하고 있다. "
여름이 다가올 무렵, 문득 16년 전의 어린 날을 기억한 히로키는 예정에 없었던 고향 츠가루로 떠나게 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단 한줄기 노선이라는 것은 1화에서 설명한 JR츠가루선津軽線을 말한다.
이 부분에 대한 소설판에서 이렇게 나와 있다.
"외떨어진 자리에 중학생 한 쌍이 있었다.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나는 푸근한 마음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 모교의 교복이다. 교복도 옛날과 다름없다. 하지만 소년과 소녀는 무척 즐거운 듯했다. - 아무런 그늘도 없이. 예전에는 내게도 아무런 그늘도 없이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쓸데없는 일이 견딜 수 없이 즐거운 보물이었다. 소중한 친구가 하나 있었고 아름다운 여자애가 하나 있었다."
오래전 타쿠야와 함께 벨라실러를 만들었던 폐역을 찾아온 히로키는 뜻밖에도 사유리의 환영을 보게 된다.
푸른 하늘 위로 날아올랐던 벨라실러와 사유리.. 그리고 다시 히로키의 쓸쓸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이 작품의 제목이자 전편 내용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내용이 담겨 있다.
"지금은 이미 지나간 먼 옛날, 구름의 저편에 그녀와 약속한 장소가 있었다"
그다음에 본편 애니의 제목인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라는 자막이 나오고 히로키와 타쿠야, 사유리의 중학 시절이 이어진다. 3월 아오모리현 츠가루군, 이 작품의 이야기가 시작된 시점이다.
".. 너는 내게 그렇게 간청했노라. 은하와 태양, 대기로 불리던 세계의 하늘에서 내려온 눈의 마지막 한 그릇을 갈라진 바위 그늘 위로 진눈깨비는 홀로 쌓이노라. 나는 귀에 위태로이 올라서, 눈과 물 새하얀 그 두 가지를 주워 모아 투명하고 차디 찬 물방울로 가득 찬 이 맑은 노송가지로부터...."
사유리는 미야자와 겐지의 영결의 아침이라는 시를 낭송하고 있었다.
이때 다시 히로키의 내레이션 흘러나온다.
"그 무렵 우린 어떤 두 가지에 마음을 두었다. "
미나미요모키타역에서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다시 히로키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마음을 둔 그 하나는 같은 반의 사와타리 사유리였고 다른 하나는 츠가루 해협을 사이에 둔 국경 반대편에 우뚝 솟은 저 거대한 탑"
사유리는 친구들과 함께 다른 열차로 돌아가고 있었고 히로키와 타쿠야는 역시 다른 열차로 돌아가는 장면이 교차하면서 히로키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난 늘 그 탑을 올려다보았다. 내게 있어 가장 소중한 것이 그곳에서 날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몹시 애가 탔다"
타쿠야 또한 스케이트부 연습을 마치고 난 뒤 탑을 바라보며 말한다.
"언젠간, 언젠간 반드시 가 보겠어"
이렇게 두 소년은 각기 다른 두 개의 존재, 국경 너머의 탑과 사와타리 사유리를 마음에 품고 있었다. 사춘기의 소년들에게 언젠가 무엇인가 하겠다는 꿈과 아름다운 이성의 존재, 이 두 개의 존재가 그 시절의 모든 것이라고 말한다고 해도 어느 누가 아니라고 부정할 수 있겠는가?
스케이트부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는 타쿠야에게 후배 여학생이 연애편지를 건네는 장면이 이어진다.
이어서 히로키와 타쿠야가 수돗가에서 커피 우유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으로 바뀐다.
히로키 - "그래서 거절했냐? 또?"
히로키 - "1학년 마츠라던가? 개 귀엽던데.."
타쿠야 -"그럼 네가 사귀지 그래?"
깜짝 놀라는 히로키.
타쿠야 -" 너라면 사귈래?"
히로키 -"아, 아니 내가 왜?"(당황하며..)
타쿠야 -" 너 누구 좋아하는 애 있냐?"
히로키 - "뭐 아니... 그게.. 뭐 분명 걔, 귀엽긴 하지만 사귀다니, 뭘 어떻게 해야 할지도 잘 모르고"
타쿠야- 네가 고백받은 것도 아니잖아?
히로키 -"물어본 건 너잖아!"
이 장면은 두 소년이 연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그리고 아직은 순수하고 귀엽기만 한 것을 보여준다. 물론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타쿠야는 시큰둥한 반응이고, 히로키는 본격적인 연애에 대해 제대로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한편으로는 타쿠야와 히로키가, 이미 마음에 사유리에 대한 연정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이것은 다음 장면에서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방과 후 부활동을 하는 히로키, 활을 쏘고 있다. 후속작인 초속 5센티미터의 주인공 타카키도 부활동으로 활쏘기를 한다.
부활동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역에서 혼자 서 있는 사유리를 발견하는 히로키가 나직하게 말한다.
"사와타리"
수줍음이 아직 있었던 히로키는 얼굴을 붉힌 채 열차 정류장에서도 사유리와는 제법 떨어져 서 있다.
그때 책을 읽고 있던 사유리가 히로키를 보게 된다.
사유리 -"후지사와"
히로키 -"사와타리"
사유리-"늦게 가네?"
히로키 -"연습하다 보니 늦었어. 바이올린?"
사유리 -"후지사와도 시라카와랑 왜 같이 안 가?"
히로키 -"나도 특별활동 있었거든"
사유리 -"후지사와, 너 가끔 혼자 활 쏘더라?"
히로키 -"난 아직 멀었어. 잡념이 많아서 말이야"
보통열차가 가까이 다가오고 두 사람은 열차에 올라탄다.
이 장면에서부터 신카이 마코토가 왜 빛의 마술사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실제 보통 열차의 내부를 완벽하게 묘사한다. 특히 열차가 달려가면서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이토록 정확하게, 이토록 아름답게 묘사한 작품을 나는 이전에 보지 못했다. 일본 철도 여행마니아인 내가 봐도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천장에 매달린 선풍기에 새겨진 국철이라는 글자, 그 밑에 아오모리현 미사와관구라고 쓰여 있는 것에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국철은 현재의 일본 철도가 민영화되었던 1988년 이전 시기의 일본 전체를 운행하던 철도회사의 명칭이다. 국가가 직접 운영하다가 도로와 항공 교통이 발달하면서 점차 승차 인원이 줄어들면서 적자가 쌓여가자, 일본 전체를 지역별로 나눠 민영화한 것이 오늘날의 일본 철도이다. 좀 더 자세하게 말하면 홋카이도지역은 JR홋카이도로, 혼슈 지역은 도쿄 이북은 JR 동일본으로, 나고야를 중심 하여 주부 지방을 관할하는 JR 도카이, 오사카에서 혼슈 서쪽 끝, 야마구치현까지를 JR 서일본, 시코쿠는 JR 시코쿠, 규슈 지역은 JR 규슈로 각각 나눠 민영화했다.
사유리- "후지사와, 봄 방학에 무슨 예정 있어?"
히로키 -"타쿠야랑 같이 아르바이트해 "
사유리 -"알바? 좋겠다. 어디서?"
히로키 -"하마나 에 있는 군사 하청 공장. 유도탄 제조일이야"
사유리-"대단하네. 알바도 다하고 난 특별활동이 전부인데"
히로키-"그렇구나"
차량 방송- 다음은 나카오구니, 나카오구니. 나카오구니 다음 역은 도다이라입니다"
이때 사유리가 의미심장한 말을 한다. 그 말에 히로키는 눈을 크게 띄면서 놀랐다.
사유리-"벌써 다 왔네. 나 있지. 어제, 이렇게 후지사와랑 같이 돌아가는 꿈 꿨었어"
자, 여기서 잠깐, 사유리의 이 대사는 여러 가지 뜻을 가지고 있다. 첫째는 지금 이렇게 히로키와 같이 기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와 함께 훗날 깊은 수면의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사유리를 깨워 현실로 돌아가는 사람이 히로키라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사유리 - 그럼 잘 가, 새 학기 때 봐
열차의 뒷 창문으로 역에서 내려 철로를 걸어가는 사유리의 천진난만한 모습이 이어지고 히로키는 사유리의 말이 무슨 뜻이었는지, 상기된 모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철로를 걸어가는 사유리의 모습 너머, 에조의 거대한 탑이 보인다. 이 장면은 훗날 사유리와 히로키의 관계, 그리고 예정된 운명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기차에서 내린 사유리, 기차를 타고 가는 히로키, 그리고 이 두 사람과 뗄래야 뗄 수 없는 거대한 탑이 한 장면 안에 모두 들어와 있다. 결말 부분에서 다시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늘은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