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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카이 마코토 작품 해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일곱 번째 이야기

by 늘 담담하게


그 소중하고 아름다웠던 여름이 지난 후, 그러니까 사유리가 갑자기 히로키와 타쿠야의 곁에서 떠나버린 뒤 그들의 약속은 방향을 잃고 추락을 하고 만다. 애니에서는 이 부분을 건너뛰어 타쿠야는 아오모리의 아미 개리지 전시 특수 정보처리처로 들어가 탑에 대한 연구를 하는 것으로 나오고 히로키는 도쿄의 고등학교로 진학해서 고독한 삶을 살아가는 것으로 나온다.


그러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한정된 애니에 비해 더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소설에서는 사유리가 사라지고 난 직후의 상황에 대해 설명을 하고 있다.

The.Place.Promised.In.Our.Early.Days%2C2004.CD1.avi_001903194.jpg?type=w1 전시 특수 정보처리처에 들어간 타쿠야

여름 방학 이후 개학을 한 뒤, 사유리가 갑작스러운 이유로 전학을 갔다는 소식을 전해 들은 두 소년은 선생님을 찾아가 사유리의 전학에 대한 상황을 물어보지만 아무도 명쾌한 답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유리의 집을 찾아가서 그녀의 어머니를 만나보지만 뭔가 숨기는 듯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사유리의 행방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다시 찾아갔을 때 그 집은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고.. 이것은 그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사춘기 시절 아름다웠던 소녀, 연정을 갖고 있었던 그 대상이 갑자기 사라지고 난 뒤의 상황에 대해 우리가 거쳐왔던 그 시절을 되새겨보면 그들이 어떤 상황이었는지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탑에 대한 열망만큼이나 사유리에 대한 사랑의 감정도 깊어져 가고 있었는데 그 대상이 사라져 버리다니..


그런 상황에 대한 원망과 상실감이 그들에게 쓰나미처럼 밀려왔고, 그 결과 그토록 힘을 기울였던 비행체 제작도 방향을 잃고 추락을 하고 만다. 비행체 제작을 먼저 그만둔 것은 타쿠야였다. 한마디 말도 없이 자취를 감춘 사유리, 갑작스럽게 아지트에 나타나지 않은 타쿠야...


히로키가 가장 믿고 의지했던 이 두 사람의 배신 아닌 배신으로 인해 히로키는 아무런 희망을 갖지 못하게 되어 그 현실을 피해 도쿄로 떠나버린다.


여기서 안타까운 것은 사유리의 실종에 대해 상처를 입은 것은 히로키와 타쿠야 두 사람인데 왜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위로하지 못했을까 하는 점이었다. 그들 스스로가 최고의 콤비라고... 이야기했으면서..


그러나 이미 히로키가 예감한 대로, 사유리는 단단할 것만 같았던 그들의 세계에 균열을 가져다주는 존재였다.


다시 말해 사유리를 만나기 전 두 소년의 세계가 동경과 우정으로 가득 찬 아직은 미성숙의 세계였다면 사유리가 등장하는 순간, 그들의 세계는 더 이상 소년의 세계가 아니라, 어른으로 성장해 가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세계로 바뀐 것이다.


앞서 탑에 대한 의미를 이야기하면서 탑과 사유리는 동전의 양면처럼 같은 것이라고 이야기했었다.


탑이 파괴되면서 그들만의 세계가 무너지고 그 자리에 어른의 세계가 세워지는 것이라고 했듯이 사유리는 순수하기만 했던 그들의 세계가, 결국은 깨어질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나중에 이야기할 기회가 있겠지만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애니에서 드러나는 사랑과 이별은 하나라는 주제와 통하는 부분이다.



어른의 세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사춘기 그 민감한 시절에 나눈 소중한 약속. 우정이라는 것에 첫사랑이 더해져서 황금처럼 빛났던 그 날들. 그것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리게 되자 히로키와 타쿠야는 각기 다르게 그 상처를 이겨내려 했다. 하지만 아직 어린 두 소년이 할 수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그렇기에 애초부터 그들이 함께 상처를 극복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자.. 타쿠야의 이야기로 돌아가서 히로키는 도망치듯이 아오모리를 떠나 도쿄로 갔지만 타쿠야는 아오모리에 남았다. 그들에게 밀려온 상실의 아픔에 히로키는 도피하는 것으로 대처하지만 타쿠야는 히로키와는 다른 방식으로 대응한다. 타쿠야가 오카베의 월터해방전선에 가담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런 타쿠야의 행동에 대해 소설판을 다시 찾아보자.


탑에 대한 연구를 하고 있으면서 왜 월터 해방전선에 가담하려는 것이냐고 묻는 오카베의 말에 타쿠야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렇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어서 정리해버리고 싶어요"


그때야 그는 유리창 너머로 가늘고 하얀 수직선이 보이는 것을 깨달았다. 타쿠야는 그것을 노려보며 말했다.


"그래요 얼른 정리해버리고 싶습니다... 저 탑은"


또 다른 부분에서는..


"그래도 나는 하고 싶습니다. 반드시 내 손으로 하고 싶어요. 초조하단 말입니다. 저런 게 서 있다는 사실이. 저 경치가, 저게 서 있는 한 나는 계속 초조할 테고 아무 데도 갈 수 없어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요."


그렇다. 타쿠야는 탑을 증오하고 있었다. 한때는 탑을 바라보며 동경을 품었던 그였는데 이제는 탑을 파괴하고 싶어 견딜 수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다시 살펴보자..


"올려다보자 머리 위에 탑이 있었다. 평소보다 한층 더 선명하게 보였다. 대기의 렌즈가 탑의 모습을 눈앞으로 끌어당기고 있었다. 타쿠야의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져 있었다. 그는 탑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모든 증오가 담겨 있었다..."


"세계를 구하는가. 타쿠야에게 있어 세계는 아무래도 좋았다. 세계 따위 어떻게 되어도 좋다. 그렇게라도 말하지 않으면 자신의 결심이 흐려지니가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타쿠야의 바람은 그저 탑을 이 세상에서 지워버리는 것이다. 자기 자신의 내면에 있는 어린 마음을 죽이는 일이다. 탑을 파괴함으로써, 부수적으로 사유리를 구하지 않음으로써 자신은 과거의 자신에서 해방되어 다른 인간이 될 수 있을 터였다. "



"어쨌든 사와타리를 위해서 탑은 사라져야만 해요. 사와타리가 눈을 뜬 뒤라면 탑은 어떻게 되어도 좋아요. 그녀를 위해.. 아니 이제 달라요.. 우리들은 우리들 자신을 위해 탑으로 가야 해요.."



수면상태에 있는 사유리를 데려가려 할 때... 막아서는 토미자와에게는..


"선생님 이것이 저를 위한 길입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제 영혼은 죽습니다...."


사유리를 폐역으로 데리고 온 뒤.. 오카베에게 한 말은..


"아마도 사와타리가 현실로 이어지는 끈이 그것일 것 같아요 지금도 꿈속에서 계속 벨라실러를 기다리고 있어요. 사와타리는 잠에 빠지기 전부터 예감이 들어서 우리들에게 부탁을 했던 겁니다. 구해내 달라고 나도 히로키도 줄곧 그 사실을 어디선가 느끼고 있었던 것 같아요.."



"그것도 있습니다. 사와타리는 우리에게 의지해주었어요. 우리들은 부탁을 받았지요. 그러니까 책임이 있어요. 하지만 그것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입니다. 약속은 자신을 위해서 이루어야만 하는 거였어요 아쉬움을 느끼는 채 살아갈 수는 없습니다. 약속을 이루어내는 인간이라는 사실을 스스로에게 증명해야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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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소설의 꽤 여러 부분을 인용했다. 이 내용들을 보면 타쿠야의 감정과 행동의 변화를 알 수 있다. 사유리가 사라지고 난 뒤, 상실감에 휩싸인 타쿠야는 히로키 못지않게 방황해야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 모든 일의 근원이 되는 탑에 대한 증오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탑을 연구하는 아미 개리지에 들어간 것이고... 탑을 파괴하려는 월터 해방전선에 가담한 것이다.



여기에는 좀 더 복잡한 의미들이 있는데 탑은 어느샌가 그들의 성장을 방해하는 거대한 장애물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탑에 대해 막연한 동경을 꿈꾸던 세계에서 탑을 연구하면서 탑이 세계를 파괴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서 더 이상 순수하고 낭만적인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위협하는 존재.. 그리고 타쿠야와 히로키에게 있어 한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탑이 있는 한 사유리는 수면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그녀 역시 성장할 수 없이 갇혀 있는 상태가 되어버리기 때문에, 탑을 파괴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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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 사유리에 대한 연정... 타쿠야도 그 감정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탑을 파괴하고 사유리를 구하려는 히로키의 행동에 함께 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 정리해 보자.


타쿠야의 감정도 히로키 못지않은 것이었고... 탑에 함께 가자는 그 약속 또한 타쿠야는 잊지 않았다. 히로키가 떠나버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히로키와 달리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탑에 대처했다.


철저히 고향을 외면하고 돌아서 버린 뒤 오카베가 보낸 편지와 꿈속에서 이어지는 사유리의 존재를 잊지 못해

돌아온 히로키보다는 차라리 타쿠야가 더 멋지지 않을까 싶은데...


타쿠야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로 해두자. 그리고 애니에서 등장하는 타쿠야와 사유리가 아오모리 시내의 서점에서 만나는 장면.. 그리고 후반부의 기차 안에서 사유리가 꿈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거기서 하얀 비행기를 본다는 장면이 나오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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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를 볼 때는 이것이 실제에 있었던 이야기 같지만 소설에서는 타쿠야가 꿈을 꾼 내용으로 나온다. 그도 그럴 것이 열차 안에서 둘이 이야기를 나눈 뒤 바로 그다음 장면이.. 타쿠야가 병원에서 깨어나는 장면이기에 그렇게 생각될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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