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은 역사로만 기록되어야 한다.
첫사랑과 재회해서 결혼한 선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그가 소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켜면서 말했다.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첫사랑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는데 그 이야기 끝에 그가 말했다.
"첫사랑... 그건 말이야 그냥 기록으로만 남아 있어야 해, 역사서에 기록되는 것처럼... 너네들 삶의 역사에 어느 시절, 어느 때에 만난 여자, 삶에서 처음으로 뜨거운 열정과 슬픔을 겪게 한 여자.. 그 뒤의 소식은 알 길이 없음, 찾을 수 없음. 들리는 소문으로 어디선가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음.. 뭐 이렇게 기록되어야 해... 난 말이야, 첫사랑과 10년 만에 만나서 결혼했어... 우리 와이프를 처음 본 게 고등학교 1학년때인데 그때는 그런 그림 있지? 소녀가 혼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을 그린 거.. 그녀는 정말 그 그림 속의 소녀 그 자체였어.. 말수도 적고, 뭐라고 말을 붙이려면 도망가 버리고.. 그 모습을 잊지 못해 10년 뒤에 만나서 다시 구애한 뒤 결혼했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이게 뭔가 좀... 씁쓸해... 뭐 티격대격하면서 애들 낳고 잘 살고 있긴 한데... 그 뭔가가..."
그러면서 첫사랑의 끝을 보여주겠다며 그의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00 씨 행복하니?"
그러고 나서 몇십 초도 안돼서 즉각 답신이 왔다. 그는 문자를 우리에게 보여주었다.
"이 인간이, 무슨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를 하고 있어, 집에 안 들어오고 뭐 해?"
그 순간 갑분싸. 모두들 웃지도 못하고 시무룩.. 특히 결혼을 얼마 안 남겨둔 친구는 더더욱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이게 바로 첫사랑의 끝이야, 비극이지... 뭐 그 조용한 소녀를 이렇게 만든 건의 책임의 상당 부분은 나에게 있는 거지만.."
그날 술자리 모임의 결론은 그랬다. 첫사랑은 역사로만 기억되어야 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