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한 번째 이야기
자, 이제 마지막 피날레를 향해 달려간다. 사유리가 난 저탑에 갈 거야라고 말하는 순간, 탑은 마치 잠에서 깨어나듯이 침식의 범위를 확장하기 시작한다.
이 상황을 츠네오가 있는 연구소에서는 스크린을 통해 보여준다.
-탑의 가동 레벨, 또다시 상승
-분기 우주의 침식 범위 계속해서 확산되고 있습니다.
-현재 반경 36km, 매 시간 04km로 서서히 확대 중입니다.
츠네오 -잠에서 깨어나는 징조에 반응하는 건가?, 괜찮은 거겠지? 오카베...
히로키와 타쿠야가 벨라실러에 사유리를 태우고, 에조의 탑을 향해 비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츠네오이지만 급박하게 돌아가는 이 상황에서 긴장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을 계획한 오카베를 향해 혼잣말로 괜찮은 거겠지? 오카베라고 말한다. (애니 본편에서는 오카짱이라고 부른다)
-선생님! 방금 선전포고가 발표됐습니다.. 이제 곧 츠가루 해역에서 첫 격돌이 있을 것입니다.
미국과 일본의 선전포고 계획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막상 전쟁이 시작되자 긴장감은 최고조에 달한다. 에조를 향해 발진하는 전투기와 전투함들, 그리고 이륙하는 헬기의 모습들이 차례차례 이어진다.
전투기들이 날아가는 모습을 오카베는 어느 도로에서 바라보고 있다. 이 장면이 오카베가 본편 애니에서 등장하는 마지막 모습이다.
벨라실러를 가동한 히로키와 타쿠야, 사유리를 태운 벨라실러도 이륙 준비를 하고 있다.
마침내 이륙을 한 벨라실러, 3년 만에 다시 완성된 기체는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랐다.
히로키와 타쿠야가 예측했듯이 츠가루 해협상공은 에조와 일본, 미군의 전투기들이 치열한 공중전을 벌이고 있었고 벨라실러는 그 전투를 피해 가기 위해 해수면 바로 위, 초 저공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미사일에 의해 전투기가 격추되면서 파편이 떨어졌고 그 파편들을 피해 회피 비행을 하던 벨라실러의 기체에 핏덩어리가 부딪친다.
츠가루해협을 통과해서 에조(현재의 홋카이도)의 동쪽 해상을 저공으로 날아가던 벨라실러, 히로키는 육지가 가까웠음을 확인했다. 아마 홋카이도의 동쪽 해상을 가로질러, 도마코마이에서 에리모미사키 사이 그 어디쯤에서 육지로 진입했고, 동북 방향, 에조의 중앙부를 향해 날아갔을 것으로 추정된다.
육지로 접어들자, 고도를 높여 구름 위로 올라섰다. 방금 전 츠가루 해협을 통과할 때와 달리 너무나 평화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그리고 마침내 탑에 도착해서 탑 주변을 활공하게 된다. 어린 시절부터 그토록 동경해 왔던 탑, 그 탑에 이르렀지만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낭만적인 만남은 결코 아니었다.
이 장면에서 히로키는 왈칵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아내고 있었다. 그토록 위협적이라는 탑은 고요하기만 했고 마치 거울처럼 벨라실러의 모습이 투명하게 보였다.
히로키는 탑의 모습을 지켜보다 뒤돌아 사유리에게 말한다.
히로키 - 봐 사유리, 약속의 장소야
이때 꿈의 세계에 있던 사유리는 하늘을 날고 있고 벨라실러를 보게 된다.
사유리- 저 날개는.... 벨라실러... 아... 꿈이 사라져 가..
사유리 - 아, 그렇구나 내가 앞으로 무엇을 잃을지 알았어
사유리 - 신이시여 부디
히로키 - 신이시여 부디
히로키 - 사유리를 잠에서 깨어나게 해 주세요 부디.
사유리 - 제발 깨어나고 한 순간이라도 좋아요. 지금 이 마음을 지우지 마세요. 히로키한테 전해야 할 말이 있어요. 꿈속에서 이어진 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특별했는지를.. 아무도 없는 세계에서 내가 히로키를 얼마나 불렀는지.. 히로키가 얼마나 날 불렀는지를
히로키 - 사유리
사유리 - 제발.. 내가 여태껏 얼마나 히로키를 좋아했는지를.. 그 말만 전할 수 있다면.. 난 더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아요. 제발 한 순간만이라도.. 내 마음을
마침내 사유리가 잠에서 깨어났다.
히로키 -사유리
사유리 - 후지사와...
히로키가 깨어난 사유리를 향해 손을 뻗는 이 장면은 후반부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이다. 그토록 찾아왔던 사유리, 늘 같은 꿈을 꾸면서 그 꿈속에서 서로를 찾지만 만날 수 없었던 히로키와 사유리가 3년 만에 다시 서로를 마주 보게 된다.
사유리가 잠에서 깨어난 순간 탑은 갑자기 반응이 증폭되면서 주변을 급격하게 침식해 들어가고 있었다.
히로키 - 사유리
사유리 - 나 너한테 무슨 말을 해야만 해. 무척 소중한.. 잊고 말았어
히로키 - 괜찮아 이젠 깨어났잖아? 앞으로 또 전부... 잘 돌아왔어,... 사유리
이 장면 이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주제가인 너의 목소리(기미노코에)가 흘러나오면서 벨라실러에서 발사된 PL외각탄이 탑을 향해 날아가서 대폭 팔을 일으키게 된다.
연구소의 스크린에도 침식이 멈췄다는 표시가 뜨고 츠네오는 이제 다 끝났다는 듯이 미키의 팔에 손을 얹는다.
그리고 폐역에서 탑이 사라지는 것을 지켜보는 타쿠야의 모습도 비쳐준다. 이윽고 돌아서서 걷는 타쿠야의 얼굴에는 평온함이 보인다.
히로키를 뒤에서 껴안고 우는 사유리를 지켜보던 히로키, 그의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약속의 장소를 잃어버린 세상에서 그래도 앞으로도 우린 살아간다.
이 작품의 가장 핵심적인 주제를 히로키의 독백으로 전한 뒤, 영화 참여 스태프진등의 자막이 올라간다.
그리고 평화로운 여름날의 폐역, 그 하늘 위로 벨라실러가 날아가는 장면을 끝으로 이 작품은 끝이 난다.
자, 이제 본편 애니의 마지막 해설이다.
히로키와 타쿠야, 사유리가 가지게 되는 뭔가를 잃어버리는 느낌. 이미 앞편에서 설명한 바 있지만 먼저 세 사람 각각의 입장에서 살펴보자.
1. 사유리
사유리는 본편에서 현실에 온전히 발붙이지 못한 인물이다. 기면증 때문에 잠에 빠져들지만, 그건 병리적 증상이라기보다 “현실의 나”가 조금씩 비워지고 있다는 은유에 가깝다. 그래서 그녀가 잃어버리는 건 물건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나, 여기 존재하는 나, 누군가와 함께 있는 나 같은 것들이다.
또한 사유리는 히로키와 타쿠야 사이에서, 또는 평범한 일상과 탑이 있는 세계 사이에서 어느 쪽도 명확히 선택하지 못한 채 멈춰 있는 인물이다. 그래서 그녀가 “잃어버린 것 같다”는 감각은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잃어버린 미래, 혹은 가능성들이다.
마지막으로 그녀가 잃어버리는 것은 ‘연결의 상실’이었다. 다만 중요한 건 사유리가 완전히 잊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기억은 어딘가에 남아 있는데, 그 기억과 현재의 자신을 연결하는 실이 끊어진 상태이다. 그래서 그녀는 늘 “뭔가 중요한 걸 두고 온 것 같은 기분” 속에 머물러 있게 된다. 이것은 신카이 마코토가 자주 말하는
사람과 사람, 과거와 현재, 꿈과 현실 사이의 거리감과 정확히 겹친다.
그래서 사유리는 ‘탑’과 닮아 있다 아니 한 몸이다라고 할 수 있다. 에조의 탑은 다른 세계와 연결되어 있지만
이 세계를 조금씩 침식하고 있었다. 사유리도 마찬가지, 그녀는 다른 가능성, 다른 세계, 다른 미래와 연결되어 있고 그 때문에 지금 여기의 자신을 잃어가고 있었다.
이제 정리하자면 사유리가 말한 “늘 뭔가를 잃어버리는 것 같다”는 말은 살아가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아직 붙잡지 못했다는 슬픔, 그리고 이미 잃고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아는 감각이었다.
2. 히로키
히로키의 뭔가를 잃어버리는 느낌이라는 것은 한 마디로 이미 잃었는데도 아직 끝났다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는 상실을 붙잡으려는, 아니 잃어버릴까 두려워서 멈춰 선 인물이다.
그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은 사유리와의 약속, 타쿠야와 함께 만들던 벨라실러,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함께 하는 그 시절의 시간들이다. 그래서 그는 계속 과거를 현재로 끌어오려 했다. 비행기를 만드는 건 미래를 향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잃어버린 시간을 붙잡아두려는 몸부림이라고 할 수 있다.
3. 타쿠야
타쿠야는 가장 냉정해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먼저 상실을 받아들인 인물이었다. 사유리와의 거리 혹은 약속 히로키와 함께 했던 두 사람만의 꿈, 그리고 그 시절의 순수함 등, 이 모든 것들을 결국 잃었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았다. 그래서 분노로 바꾸고, 행동으로 바꾼다. 그러니까 타쿠야의 상실은 “잃은 걸 안 채로 앞으로 가는 선택”이다.
개인적으로 탑에 도착한 히로키가 고통스러워하는 장면이 또한 인상적인데, 그 순간 히로키는 무엇을 깨달았던 것일까? 그는 이미 깨닫고 있었다. 탑에 도착하면 모든 게 해결될 수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어떤 것은 영원히 끝날 수도 있다는 걸.. 그가 느낀 “잃어버리는 느낌”은 사유리를 잃는다는 공포만이 아니다. 소년 시절의 자신을 완전히 떠나보내는 감각이다.
그렇다면 왜 그 장면에서 느끼는 감정이 그렇게 강렬한가? 그전까지 히로키는 약속을 붙잡고 과거를 되돌리려 했었다. 하지만 그 비행 직전, 그는 알게 된다. “되돌리는 게 아니라, 이제는 선택해야 한다는 것을, 그 선택은 세계를 구하는 선택이면서 동시에 과거를 끝내는 선택이었다. 그래서 그 상실감은 슬픔이라기보다 결단 직전의 공허함에 가깝다.
또 한 가지, 사유리가 잠에서 깨어나기 전에 히로키에게 전하고자 했던 마음, 그러니까 좋아했던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는 것도,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아니, 탑이 파괴되는 그 순간은 단순한 사건의 종결이 아니라, 사유리가 간직하고 있었던 그 여름날 가장 아름다운 그 시절의 순수함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막상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슬피 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 이제 전체 해설에 대한 이야기를 마친다. 다음 편에서는 이 작품의 주제에 대한 추가적인 해설, 비판, 재평가, 몇 가지 뒷 이야기에 대해서 정리하고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해설을 완결 지을 예정이다.
그 뒤에 신카이 마코토 초기 3부작의 대미라고 할 수 있는 초속 5센티미터에 대한 해설이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