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네 번째 마지막 이야기
이제 마지막 편이다. 23회에 걸쳐 이 작품에 대한 모든 것을 해설하는 내용을 담았다. 물론 이것은 내 주관적인 시각에서 본 것이기에 작품을 본 사람들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
자, 이제 본편애니 해설에서 미처 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해 이야기할까 한다.
첫 번째 마지막 부분에서 사유리가 말하는 히로키에게 전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1. 그 말은 ‘사랑 고백’일까?
표면적으로는 그렇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작품의 결은 조금 다르다. 이 작품을 본 사람들은 대부분이 느끼듯이 작품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감정을 극적으로 터뜨리지 않는다. 대신 인식의 변화를 보여준다. 그래서 그 “전해야 할 말”은 “이제 나는 도망치지 않겠다.” “나는 선택했고, 알고 있고, 받아들였다.” 의미로 봐야 한다. 즉, 감정의 고백이라기보다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는 선언이다.
2. 왜 ‘전해야 한다’고 말할까?
중요한 건 “있다”가 아니라 “전해야 한다”이다. 이것은 사실 의무감에 가깝다. 그녀는 그동안 잠들어 있었고
세계와 연결돼 있었고 현실에 온전히 서 있지 못했다. 하지만 달라진다. 나는 여기 있고, 너도 여기 있고,
그래서 말해야 한다. 이건 도망치지 않는 태도이다.
3. 그 말의 진짜 핵심은 무엇일까?
앞서 사유리는 말했다. “내가 앞으로 무엇을 잃을지 알았어.”라고 그다음에 “전해야 할 말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잃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말하겠다는 것. 상실을 두려워하지 않고 현재를 선택하는 순간 아다.
4. 그래서 그 대사는 어떤 의미인가
그것은 “고마워.” “미안해.” “기다리게 해서.” “그래도 나는 여기까지 왔어.”라는 의미이다.
5. 왜 그 장면이 따뜻하면서도 쓸쓸할까
소년 시절의 고백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지만, 이 고백은 상실을 통과한 뒤의 고백이다. 그래서 더 조용하고
더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대사를 희망이라기보다 “그래도 살아가겠다”는 말로 이해했다.
두 번째 그렇다면 왜 이 작품의 엔딩은 쓸쓸하게 남아 있는 걸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마지막은 재회의 환희가 아니라 통과한 뒤의 고요함이라고 해야 한다.
1. 되찾았지만, 되돌리지는 못했기 때문이다.
사유리는 돌아왔지만 세 사람이 함께 했던 그 아름다운 시절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히로키와 다시 마주 설 수는 있지만 그들이 함께 비행기를 만들던 시간은 이미 닫힌 세계이자 지나가 버린 과거가 되어버렸다.
2. 감정이 ‘설렘’이 아니라 ‘각오’이기 때문이다
그녀가 “전해야 할 말이 있다”라고 할 때 그것은 두근거림이 아니라 책임에 가까운 태도이다. 상실을 알게 된 뒤의 사랑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래서 그 무게감이 쓸쓸함으로 전해진 것이다.
3. 세 사람의 ‘함께’는 완전히 끝났기 때문이다.
타쿠야는 그 자리에 없었고 셋이 나란히 같은 꿈을 보던 구도는 사라져 버렸다. 결국 “이건 새로운 시작이지만
예전의 세계는 끝났다.”라는 감정을 느끼게 한다.
세 번째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작품들 중 가장 정치적인 작품이다?
신카이 마코토의 다른 작품들은 개인의 감정, 사랑, 시간에 집중한다. 예를 들면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등이다. 하지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분단, 군사. 정치, 국제 관계 같은 요소가 들어간 유일한 작품이다. 그래서 일본 평론에서는 종종 “신카이 마코토가 다시는 만들지 않은 종류의 영화”라고 한다.
네 번째 사유리가 말한- 아, 그렇구나 내가 앞으로 무엇을 잃을지 알았어라는 말의 의미는?
이 대사는 이 작품에서 가장 의미심장한 대사 중 하나로 자주 해석된다. 일본 평론에서도 여러 해석이 있지만, 크게 보면 세 가지 의미가 겹쳐 있는 대사라고 설명하고 있다.
1. 자신의 “기억”을 잃게 된다는 예감
가장 가장 직접적인 의미는 이것이다. 영화 후반에 사유리는 긴 잠에서 깨어나지만 어린 시절의 기억을 잃었다. 즉 히로키와의 약속, 비행기, 탑을 보던 시간과 같은 모든 기억이 사라진다. 그래서 그 대사는 사실
“나는 언젠가 이 기억들을 잃게 될 거야.”라는 예감으로 해석된다.
2. 히로키와의 “시간”을 잃는다는 의미
또 다른 해석은 조금 더 감정적인 해석인데 후지사와 히로키와 사유리는 서로에게 중요한 존재였지만 결국 같은 시간을 살지 못하게 된다. 사유리는 꿈속 세계와 연결되어 있었고 현실에서 점점 멀어져 갔다.
그래서 이 대사는 “나는 히로키와 함께할 시간을 잃게 될 거야.”라는 의미로도 해석된다. 이 때문에 많은 팬들이 이 대사를 가장 슬픈 대사라고 말한다.
3. “소년 시절 자체”를 잃는다는 의미
일본 평론에서는 이 해석도 자주 등장하는데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사실 청춘의 상실이다. 소년 시절에는
탑이 꿈이었고 비행기는 모험이었고 미래는 열려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세계는 정치적으로 갈라지고 친구들은 다른 길을 가고 그들이 함께 했던 약속은 사라진다. 그래서 그 대사는 결국 “우리는 언젠가 지금의 시간을 잃게 된다.”라는 청춘의 끝을 의미한다는 해석도 있다.
4. 그래서 이 대사가 영화 전체를 설명한다
많은 평론가들이 이 대사를 중요하게 보는 이유는 이 한 문장이 영화 전체의 주제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들이 잃는 것은 세계의 균형, 어린 시절의 약속, 친구와의 시간, 사랑의 기억들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결국 “사람은 살아가면서 무엇인가를 반드시 잃는다.”라는 이야기가 된다.
흥미롭게도 신카이 마코토 작품들 중에서도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같은 영화에서도 “기억을 잃는 사랑”이라는 테마가 반복된다. 그래서 일부 평론가들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신카이 마코토가 평생 반복하게 될 주제를 처음으로 완전히 드러낸 작품”이라고 말한다.
다섯 번째 신카이 마코토 작품 중에서 남자 친구 관계가 이렇게 중요한 작품은 이 영화가 거의 유일하다.
예를 들어 초속 5센티미터, 너의 이름은 등 대부분 남녀 관계가 중심이다. 하지만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사실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 이야기”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섯 번째 이 작품의 배경으로 등장하는 폐역은 어떤 의미인가?
1. 폐역은 “소년 시절의 세계”
히로키와 타쿠야가 비행기를 만들던 장소는 사용되지 않는 폐역이다. 이곳에 등장하는 인물은 후지사와 히로키, 시라카와 타쿠야, 그리고 사유리뿐이다. 그래서 이 공간의 특징은 아무도 오지 않은 장소, 어른들의 세계와 떨어진 공간, 그리고 세 사람만이 공유하는 장소이다. 다시 말해 소년 시절에만 존재하는 세계이다.
2. 기차가 멈춘 장소
기차역이지만 기차는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이 설정은 상징적인데 기차는 보통 시간, 이동, 성장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역에서는 기차가 더 이상 오지 않는다. 즉 시간이 멈춘 공간으로 이 장소는 영원한 소년 시절을 상징한다.
3. 비행기는 “꿈”
히로키와 타쿠야가 만든 벨라실러는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이 비행기의 의미는 탑에 가겠다는 약속, 분단된 세계를 넘는 꿈. 현실을 넘어가는 상상력이다. 그래서 폐역 안의 비행기는 소년 시절의 꿈이 보관된 장소라고 볼 수 있다.
4. 시간이 지나면서 이 장소는 사라진다.
작품 속에서 시간이 흐르면서 이 폐역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는다. 이것도 매우 상징적인 연출인데 소년 시절에는 폐역, 비행기, 세 사람의 약속이 존재했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친구들은 흩어지고 꿈도 현실 속으로 사라져 버린다. 즉 폐역은 우정, 사랑, 청춘이 그래도 남아 있는 장소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보고 가장 강하게 기억하는 장면도 사실 비행기를 만들던 폐역의 풍경이다. 이를 보고 일본의 평론가는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탑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일곱 번째 왜 SF인가?
별의 목소리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우주적 공간 혹은, 초현실적인 배경을 안고 있다. 이런 배경에 대해서 과거의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면...(초속 5센티미터 개봉 시기의 인터뷰)
질문 - 이번 작품(초속 5센티미터)은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같은 전작보다 성숙미가 훨씬 풍긴다. 우주적 공간이나 초역사적 공간에서 노닐던 상상력이 현실에 착색된 때문일까?
신카이 마코토 감독 - 나는 언제나 일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무도 나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관객이 좋아할 만한 공상과학(SF) 애니메이션을 선택했다. 지금은 날 아는 관객이 조금은 있기에 SF라는 장르의 힘을 빌리지 않아도 될 만큼 용기가 났다.
2005년도 인터뷰에서는...
질문 - 별의 목소리는 미래와 과거의 추억이 시간적으로 잘 어우러져 있다. 감독의 개인적인 취향인가?
신카이 마코토 감독 - 어렸을 때부터 SF와 관련된 책을 많이 봐서 SF에는 익숙하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표현하고 싶었는데 시간과 공간을 건너뛰며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설정이 사람 사이의 관계를 더욱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SF를 선택했다.
여덟 번째 신카이 마코토의 핵심 주제 시간과 거리.
신카이 마코토의 작품세계에 있어서 드러내고자 하는 주제는 여러 가지이나, 가장 핵심적인 주제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과 거리의 문제이다. 별의 목소리,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 초속 5센티미터 그의 초기 세 작품 속에서 감독은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에서 시간과 거리라는 것이 어떤 형태로 다가와서,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세 작품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이 시간과 거리에 의해 지배되고 영향을 받는다. 별의 목소리에서 노보루와 미카코는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을 사이에 두고 있었다. 빛의 속도로 달려도 8년이 걸리는 시리우스와 지구... 그리고 서로 다른 공간에서.. 서로 다르게 흘러가는 시간. 그 엇갈리는 시간과 거리는 이 두 연인의 사랑이 쉽게 이루어질 수 없음을 나타낸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히로키와 사유리는 역시 각기 다른 공간과 거리 속에서 살아가야 했다. 깊은 수면상태에서 3년의 시간을 흘러 보낸 사유리. 시간의 엇갈림은 별의 목소리의 미카코와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의 사유리가 중학교 시절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던 반면에 노보루와 히로키는 각기 어른으로 성장해 갔다. 이 슬픈 엇갈림.... 우리네 삶에서 수없이 나타나는 시간과 거리에 의해 엇갈림이다.
그 엇갈림의 결정판이자 최종판이 바로 초속 5센티미터였다. 타카키와 아카리의 사랑이 결국 이루어지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엇갈림들이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꼭 한발짝 씩 어긋나는 감정들...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서의 히로키와 미즈노 리카, 타쿠야와 카시하라 마키, 그리고 초속 5센티미터 2화에 등장하는 카나에 스미다도 결국은 그 한 발짝 어긋나는 감정으로 아픈 상처를 안고 각기 다른 삶을 살아가야 했다. 이 시간과 거리,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고독과 외로움에 대한 이야기는 초속 5센티미터에서 좀 더 많이 다뤄볼까 한다..
아홉 번째 이 작품에 대한 평론가들(일본)의 평가는 어떤 걸까?
앞편에서 이미 이 작품에 대한 평가에 대해서 설명한 바 있지만 추가적으로 덧붙인다. 일본 평론가들과 애니메이션 평단에서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높은 예술성 + 미완성적인 작품”이라는 복합적인 평가이다. 즉, 찬사와 비판이 동시에 존재하는 작품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큰 흐름으로 정리하면 일본 평론의 핵심 평가는 다음 4가지이다.
1. “영상미는 이미 거장의 수준”
일본 평론가들이 가장 먼저 칭찬하는 부분은 영상 표현이다. 이 작품에서 이미 감독 신카이 마코토 특유의 스타일이 완성되어 있었다는 평가가 많다. 특히 강조되는 요소들은 하늘과 구름 묘사, 빛과 풍경 표현, 일본 지방 풍경의 사실적인 묘사 등 많은 리뷰에서 이 작품을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영상” “풍경 자체가 감정을 말하는 애니메이션”이라고 평가한다. 이 때문에 일본 애니메이션 평단에서는 종종 “신카이 마코토 영상미의 출발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2. 음악과 분위기는 매우 높게 평가
음악을 담당한 텐몬의 OST도 일본 평론에서 매우 좋은 평가를 받았다. 특히 평론에서 자주 언급되는 것들은
쓸쓸한 분위기, 기억과 거리감을 만드는 음악, 장면과 자연스럽게 섞이는 음악 등이다. 한 평론에서는 “그리움과 미스터리를 만들어내는 음악”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일본 애니메이션 팬들 사이에서는 “텐몬 시대 신카이 작품의 정점”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3. 하지만 스토리는 어렵고 불완전하다는 평가
반대로 가장 많이 지적되는 약점도 있다 일본 평론에서 가장 흔한 비판은 다음과 같다.
① 이야기 구조가 어렵다
영화에는 평행세계, 정치적 분단, 탑의 과학적 설정, 사유리의 의식 연결 등 많은 설정이 나오는데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많다. 그래서 “아이디어는 훌륭하지만 설명이 부족하다.”라고 한다.
② 전개 속도가 느리다
또 하나의 비판은 느린 전개이다. 초반전개가 매우 느리고 설명이 길어진다. 그리고 전체 전개가 감정 중심이라 사건이 적다. 이 때문에 일부 평론가는 “영상미는 아름답지만 영화로서는 느리다”라고 평가했다.
4. 지금은 “신카이 스타일의 출발점”으로 재평가
흥미로운 점은 초기 평가와 현재 평가가 조금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에는 아름답지만 난해한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았지만, 지금은 이 작품에서 이미 사라진 사랑, 시간과 거리, 기억과 꿈, 서로 엇갈리는 관계 같은 신카이 마코토의 핵심 주제가 모두 등장한다는 점이 강조된다. 그래서 지금 일본 평론에서는 이 작품을 “후일의 걸작들을 예고한 작품”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종합하면 일본 애니메이션 평단에서는 이 작품을 보통 이렇게 정리한다.
“아름답지만 아직 완성되지 않은 신카이 마코토의 첫 장편 실험작.”
이것이 개인적으로 가장 동의하고 있는 평가이다.
자, 24회에 걸쳐 긴 해설을 마칠까 한다. 초기 3부작에 대한 해설은 점차 늘어나는데 이 작품에 대해 처음 해설 글을 썼을 때는 모두 13회였다. 시간이 흐른 만큼 이 작품에 대한 세세한 의미, 혹은 20년이 지난 뒤의 재평가에 대해 보강하느라 글이 길어졌다. 다음 이야기는 초기 3부작의 정점에 해당되는 초속 5센티미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