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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 담담하게 Dec 19. 2024

하코다테에서 보내는 편지(1)

벚꽃 피는 하코다테에서 

하코다테는 아주 작은 도시예요. 바다를 끼고 있는 항구도시가 대개 그런 것처럼 바다를 향한 언덕이 있고, 그 언덕에는 예쁜 집들과 성당과 공원이 있어요.


아침에 눈을 뜨면 난 부지런히 옷을 갈아입고, 그 언덕으로 산책을 나가요, 이곳에 온 그날부터 거의 하루도 빠지지 않는 나의 일과예요. 눈이 오는 겨울에 그 언덕을 오르는 일이 쉽지는 않고, 해가 빨리지는 이곳의 겨울 때문에 무섭기도 했지만, 그 언덕 위에 서서 바라보는 풍경은 쉽게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일으키곤 했어요.

새로 내린 눈 위로 걸으면 사각사각 눈이 밟히는 소리가 들려와요. 당신이 있는 곳에서는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변덕스러운 겨울 날씨는 순식간에 다시 눈보라로 바뀌고, 그럴 때에는 털모자를 다시 쓰고 걸어요.

문득문득 눈이 내릴 때마다 당신을 떠올리곤 해요. 언젠가 당신과 내가 손을 잡고 눈길에 걸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미끄러지지 말라고, 내 손을 꼭 잡고, 나를 붙잡아줬던 그 어느 겨울날의 기억들이 마구 쏟아져 내려서 나를 힘들게 해요. 그런 날도 있었는데 우린 어쩌다가 이렇게 아주 멀리 떨어졌는지...


눈 내리는 이 공회당 앞길을 쭈욱 걸어가면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내 마음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요? 눈은 계속 내리고  나는 계속 걸어가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당신에게 이야기해요, 겨울날의 하코다테 공회당에 와 본 적이 있어요? 관광객들도 없는 시간에 이 거리를 걸어본 적 있어요?


눈이 그치고 마침내 내 발걸음이 멈추는 곳은 항상 이 언덕 하치만자카예요, 이제는 익숙한 이곳에 닿으면 항상 저 멀리 항구를 바라보게 돼요. 항구의 불빛이 잘 보이는 이 언덕, 저 아래로 내려가면 누군가 있을 것만 같은데.. 그렇게 항구를 한참이나 내려다보다가 다시 걷고 걸어서 돌아오게 돼요.


시간이 흘러서 눈들이 녹고 이 도시가 긴 겨울의 흔적을 지우게 될 때쯤 새로운 색으로 도시는 바뀌게 돼요


4월이 끝나갈 무렵, 나는 다시 언덕 위로 올라서고, 그리고 눈부신 벚꽃이 공원과 거리를 환하게 밝히는 봄.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당신에게 전해주고 싶었어요. 당신과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봄날의 벚꽃 풍경을....

당신은 여전히 바쁘겠죠? 바쁘더라도 제때에 먹는 것 잊지 말고, 감기 걸리지 말아요..

그럼 이만... 벚꽃 피는 하코다테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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