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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만날 때의 담담함

영원한 안녕이라는 것을

by 늘 담담하게


"그래, 오래만이네. 어떻게 지내?"

"뭐 그럭저럭 지내는 거지. 넌 어때?."

헤어진 지, 1년이 흘렀다. 친구를 만나기 위해 가다가 맞은편에서 걸어오는 그녀를 만났다. 깜짝 놀랐지만 이내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녀에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약속 시간이 아직 남아 있어, 편의점에서 사 온 캔 커피를 그녀에게 건넸다. 헤어지고 나서 네 개의 계절이 지났다. 오랜만에 만난 그녀에게 처음 건넨 말이 어떻게 지내라는 질문이었다. 오랜 시간의 간극 때문이었을까, 그녀에게 할 말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았다.


"괜찮아, 일이 바빠서.."

"그렇구나... 얼굴은 전에 보다 더 좋아 보이네.."

그녀도 딱히 내게 건넬말이 생각나지 않았을 것이다.


"전에? 아 너하고 헤어졌을 때는 뭐 힘들었고, 당연히 안 좋았지, 이제는 괜찮아"

"그래 괜찮다니...."


그때였다면 그런 대답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아팠던 기억들도 서서히 마음의 창고 어딘가, 아니 먼 기억 속에 사라져 가고 있었기에 힘들었지만 이제는 괜찮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얼굴은 네가 좀... 그때보다 많이 야윈 거 같고... 요즘도 술 많이 먹니?"

"아니, 다 옛말이지, 이제는 그렇게 못 마셔..."

한때, 우리가 만났던 그때, 그녀는 정말 술을 많이 마시곤 했는데... 특히 나와 헤어지고 난 뒤, 그녀도 괴로웠는지 미친 듯이 술을 마시곤 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직장 생활을 할만하고? 여자친구는 생겼어?"

여자 친구라니.. 내가 그렇게 환승 연애를 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 의례적인 질문일 것이다.


"회사 생활은 뭐 이제는 안정되었어, 처음에는 다 힘든 거잖아, 여자친구는... 음, 그게 잘 안되네, 아직도 여자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나 봐 그때처럼"


"넌 착해서 괜찮은 여자친구가 생길 거야"

"음, 착하다는 거, 그게 연애에서는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꼭 착하다는 게 연애를 성공으로 이끌지는 못하는 것 같아, 그리고 대부분 여자들이 헤어지면서 그렇게 말하잖아, 누구 씨는 착한 사람이에요. 뭐 이제는 너와 만났던 시절처럼 착한 사람도 아니고, 이제는 별로야,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와아, "

"왜?"


"갑자기 네가 정말 어른스러워졌다고 해야 할까? "

"세월이 흐르다 보니 뭔가 좀 깨달은 게 있는 거겠지"


나는 그녀의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끝내 물어보지 못했다. 그녀가 만나는 그 남자와의 사이가 좋지 못하다는 것을 친구를 통해 전해 들었지만 그것을 물어볼 수는 없었다.



"아참 바쁠 텐데 시간을 많이 뺐었네, 일어나야지?'

"엉 "


"만나서 반가웠어, 어떻게 지냈나 궁금하기도 했는데.."

"열심히 살고 있으니까, 너도... 잘 먹어야겠다. 건강하게 잘 지냈으면 해"


"그래 그럴게.. 오늘 이렇게 갑자기 만났는데, 괜찮은 거 같아"

"뭘... 옛 여자 친구 만나서 좋다. 네 모습도 더 예뻐진 것 같네.."


그녀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 순간 그것이 우리 인연의 진짜 마지막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다시는 이 지상의 삶에서 마주칠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때 힘없이 미소 짓던 그녀의 얼굴도, 한때 눈부시게 예뻤던.. 뭘 내주어도 아깝지 않았던 그녀를, 담담하게 그녀가 악수하자며 손을 내밀었을 때 부드러웠던 손의 감촉도, 잊어야 한다는 것을... 발길을 돌려 걷다가 뒤돌아보자 그녀가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내 코끝이 갑자기 찡했다. 그녀가 안쓰럽다거나 다시 예전의 감정이 되살아나서가 아니라, 영원한 안녕이라는 것을 깨닫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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