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자연 유산 시레토코 반도
이제 센모 본선의 여행은 북동방향으로 계속해서 나아간다. 카와유 온천역의 다음 역은 미도리역緑駅이다.
미도리역은 1931년에 개업한 역으로 당시 역명은 가미삿쓰루역上札鶴駅이었다. 1956년에 현재의 역명인 미도리역으로 개명을 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당시 이 역이 속한 행정구역이 키요사토정과 미도리정이어서 소재지 지명인 미도리역으로 바뀌었다. 미도리緑라는 지명은 사방이 푸른 초록으로 둘러싸여 조용한 곳이라는, 또는 봄과 여름의 신록이 매우 보기 좋아서라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1938~1955년까지는 카미삿쓰루 삼림철도(上札鶴森林鉄道)의 기점역이기도 했다.
자, 여기서 홋카이도 철도 역사를 살펴보면 꼭 나오는 것이 바로 산림철도와 식민궤도노선이다. 먼저
산림철도가 무엇인지, 궁금하니까 살펴보고 가자.
*산림철도란?
산림철도을 간단하게 설명하면 산림철도(山林鐵道)는 경편철도의 일종으로, 주로 목재를 운반하기 위해 건설, 운영된다. 일본의 경우 험한 산악지형에 대응하기 때문에 궤간이 좁고 곡선이 심한 선형이 특징이다. 산간 안쪽에 마을 이나 인부들의 숙소가 있었기 때문에 여객운송까지 한 노선도 존재한다.
2025년 현재 일본 전체의 철도선을 나타낸 지도를 보면, 홋카이도는 광대한 면적에 비해 적은 철도 노선이 남아 있을 뿐이다. 왜 이렇게 줄어들었을까? 홋카이도가 한때 철도왕국으로 불렸던 시절이 있었다. 그것은 일본의 마지막 세대의 증기기관차들이 활약하고 있던 70년대 초보다 더욱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다.
홋카이도의 대부분이 미개척지였던 시대, 1869년에 삿포로에 개척사가 설치되어 대규모 이민·식민(개척)이 시작되었다. 이는 광대한 홋카이도를 삼림자원, 광물자원의 공급기지로서는 물론 1차 산업 전반의 생산거점으로 개발하고 나아가 국력을 증강할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당시의 홋카이도는 아직 교통망이 미발달 하고, 더불어 눈이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 도로 및 전체 지역의 상태는 계절에 따라 크게 바뀌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철도에 의한 수송이 각지에서 추진되게 된다. 석탄을 나르는 철도와 함께 크게 발달한 것이 삼림철도이다. 삼림자재의 반출을 주목적으로 하는 철도는, 1908년 도마코마이의 오지 제지王子製紙 공장 관련 노선의 부설을 시작으로 , 그 후 관영철도가 홋카이도 중앙부의 산간을 중심으로 부설되었다. 루베시베留辺蘂를 기점으로 삼림철도는 해발 1,000m를 넘어 이시카리국에 이르렀고, 마루셋푸정의 무리이삼림철도武利意森林鉄道는 총연장으로 80km를 넘었다. 그러나 이들 삼림철도의 대부분은 1950년대 중 피크를 맞이한 이후 목재수송용 도로가 개설되고, 자동차 운송의 본격화, 외국산 목재의 수입등으로 인해 급속히 선로망을 축소하여 1960년대 후반에 소멸하게 된다.
다음 역은 삿쓰루역札弦駅이다.
1929년에 개업한 역으로 원래 역명은 삿쓰루札鶴駅이었으나 1956년에 현재 사용되는 札弦駅으로 바뀌었다. 역명은 사쓰루가와 강의 아이누어 지명 사쿠루 サクル에서 유래되었다. 이 것은'여름에 다니는 길'을 뜻하는 '아이누어를 일본어로 음차 한 것이다. 예전에는 이 강을 따라 산을 넘어 시베쓰에 이르는 교통로가 있었던 데 따른 것이다(눈이 많이 오는 겨울에는 폐쇄되기 때문에) 이 밖에 나가타 카타마사가 「살(sat-ru)」(마른·길)에서 유래한다고 하는 설을 내고 있는데 이것에 대해 야마다 슈조는 「잘못 읽었을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음이 기요사토역清里町駅이다.
1929년 개업한 역으로 당시 역명은 가미샤리역이었다. 1956년에 기요사토역으로 역명이 바뀌었다. 역명의 유래는 이 지역이 기요사토초로 바뀌면서 기요사토초의 모촌이었던 고시미즈小清水와 샤리斜里 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어졌다.
기요사토역의 다음 역은 미나미샤리역中斜里駅이었다. 이었다라고 한 것은 2025년 현재 이 역은 없어졌기 때문이다. 이 역에 대해서 2019년 4월에 JR홋카이도가 샤리정에 역을 폐지하든지, 아니면 역 운영비 200만 엔을 부담하라는 요구를 전했고 그 후 샤리정은 이 역의 폐지를 받아들였다. 결국 이 역은 2021년 3월 13일에 폐지되고 말았다.
*이 철도 여행기를 읽는 이들은 이런 일들이 일본에서만 벌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한국에서도 계속 일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이다.
1962년에 개업한 역으로, 보시다시피 역사가 없는 무인역이었다. 샤리정의 남쪽에 있기 때문에 미나미 샤리역이라는 역명이 붙여졌다. 하나둘씩 사라지는 역, 한때 철도 왕국이라고 불렀던 일본 철도의 쓸쓸한 현실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그다음 역이 나타샤리역中斜里駅이다.
1929년에 개업 당시에는 사루마가와 역(猿間川駅)이었으나, 1950년에 나카샤리로 개칭되었다. 역 이름은 샤리역(현재의 시레토코샤리역)과 카미샤리역(현재의 기요사토역)의 사이에 있다고 해서 지어졌다.
이름이 바뀌기 전의 역명인 사루마가와는 샤리가와강의 지류인 사루가와 강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아이누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여러 설이 있다. 일본의 언어학자인 마시로 치리가 쓴 『사리정사지명해斜里町史地名解』에서는 「살루파오마나이(sar-pa-oma-nay)」(살루[=사리의·섬에·있는·강) 혹은 「살루파벳(sar-pa-pet)」(살루의·강물·강)이라고 하는 해석이 소개되어 있고, 이것에 대해서 야마다 슈조는 「이 강이 사리가와 강 하류에 들어가는 것을 나타낸 것이라고 했다. 1973년에 국철 홋카이도 총국이 발행한 「홋카이도 역명의 기원」은 「살루오마펫(sar-oma-pet)」(갈대밭·에 있는·강)에 따른다고 하는 설을 게재하고 있다
나카샤리역을 지나면 이제 시레토코 반도의 관문 역할을 하는 시레토코샤리역知床斜里駅이다. 센모본선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역인데, 만일 센모본선이 폐지되면 시레토코반도를 어떻게 여행해야 할지, 여행자의 입장에서는 매우 난감하다.
시레토코 반도는 철도를 제외하고 다른 여행수단은 고속버스, 렌트, 항공편+렌트뿐이다. 가장 저렴한 비용은 고속버스인데, 삿포로에서 우토로까지 가는데만 6시간 45분이 걸린다. 이 정도 시간을 들여 우토로까지 간다고 해도 다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지역 버스이고, 볼 수 있는 것도 극히 제한적이다. 그다음이 렌트인데, 이 역시 삿포로에서 출발하면 비용과 시간, 여행의 피로도에 쉽지 않다. 마지막이 항공편과 결합한 렌트인데, 아바시리부근의 메만베츠 공항이나, 구시로 부근의 구시로 공항으로 간 다음 거기서 렌트를 해서 가야 하는데 이것도 추가 비용과 시간이 소요된다.
개축한 시레토코 샤리역이다.
1925년에 개업한 시레토코샤리역의 처음 이름은 샤리역이었다. 1998년에 시레토코 반도 세계유산 등재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홍보 차원으로 앞에 '시레토코'를 붙였다. 2007년에 역사를 개축했다. 샤리라는 역명은 아이누어 시야리 シヤリ(갈대가 자라나는 습지)에서 유래되었다. 이 역이 중요한 것은 뚜벅이 여행자에게 있어 시레토코 반도 여행의 출발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시레토코 혹은 시레토코 반도는 어떤 곳일까? 시레토코 반도를 처음 여행했을 때의 보았던 풍경은 거대한 원시림의 세계였다. 처음 이곳을 가기까지 나는 빽빽하게 나무만으로 가득한 원시림은 2000년대 초반 백두산으로 가는 여행에서 보았던 것이 유일한 경험이었다. 홋카이도 동쪽의 오호츠크해 쪽으로 뻗어 나온 시레토코 반도는 ( 知床半島, Shiretoko Peninsula)는 평균 넓이 25km, 전체 길이 70km의 반도이다. 반도의 남쪽은 네무로 해협과 닿아 있다. 시레토코라는 지명은 아이누어 シレトク에서 유래된 것으로 지반의 앞부분, 혹은 지반의 튀어나온 곳이라는 뜻이다.
일본 정부 관광국에서 설명하는 시레토코는 다음과 같다.
"홋카이도 북동부 오호츠크 해에 돌출되어 있는 형태를 하고 있는 시레토코 반도는 일본의 마지막 비경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며, 원시림으로 뒤덮인 험준한 산악지대에는 바닷가마우지와 흰 꼬리독수리 등의 야생동물이 서식하고 있어, 전 지역이 국정공원으로 지정되어 있다. 관광의 거점이 되고 있는 도시 우토로와, 반도 동쪽의 라우스. 우토로 항에서는 시레토코 관광선이 출항하고 있어 단애절벽으로 이어지는 반도의 절경을 즐길 수 있다. 관광선에서 볼 수 있는 , 수증기를 뿜어 올리며 떨어지는 '가무이왓카 온천 폭포'를 비롯해, 아름다운 자태로 인해 ‘처녀의 눈물’이라고 불리는 '후레페 폭포' 그리고 도로변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해안을 향해 호쾌하게 떨어지는 '오신코신 폭포' 등 시레토코는 폭포의 왕국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리고 다섯 개의 보석이라고도 불리는 시레토코의 다섯 호수는 원시림으로 둘러싸인 작고 조용한 호수들로서 약 1시간이면 다섯 개의 보석 같은 호수를 한바퀴 둘러볼 수 있다. 또한 겨울이 되면 시레토코의 해안은 유빙으로 뒤덮이며 빼어난 설경을 자랑하기도 한다. 우토로와 시레토코 횡단도로로 연결되는 라우스는 라우스 다시마와 해안에서 솟아오르는 온천으로 유명한 고장이다. 해식동굴 맛카우스에는 푸른빛을 발하는 발광이끼가 자생하고 있어 관광객의 눈길을 끌기도 한다."
인공위성에 본 시레토코 반도이다.
시레토코 반도의 오른쪽 편에 네무로 해협이 있고 그 오른편에 보이는 섬이 일본이 러시아와 영토 분쟁 중인 북방 4개 섬 중의 하나, 구나시리 섬이다. 사진 2장 중 위의 사진은 겨울철 유빙이 시레토코반도 앞바다까지 왔을 때의 모습이다.
시레토코 반도의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자면.. 반도의 끝자락에 시레토코 곶이 위치해 있고, 중앙부는 시레토코 화산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북쪽에서부터 시레토코다케(1,254m), 시레토코이오잔(1,562m), 라우스다케(1,660m), 온네베쓰다케(1,331m), 우나베쓰다케(1,419m)등, 높은 산들이 이어지고 있다. 반도의 동쪽에는 라우스호, 서쪽에는 시레토코 오호와 가무이왓카 온천폭포, 오신코신 폭포가 있다. '
화산지대이기 때문에 라우스온천, 세세키온천, 이와오베쓰 온천등 자연분출하는 온천도 많으며 특히 폭포 자체가 천연 온천인 가무이왓카 온천폭포는 자연의 신비가 가득한 비밀의 온천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반도 중앙부에 위치한 우토로지구에는 시레토코 관광의 또 다른 거점인 우토로 온천이 있다.
홋카이도에서도 몇 안 되는 야생동물과 원시적인 자연경관이 남아 있는 곳이기에 반도 중부에서 끝자락에 이르는 산악지대와 해안이 1964년에 시레토코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그 후 시레토코 곶 주변은 엄격하게 규제되는 특별보호지구로 지정되었고 관광목적의 상륙이 규제되었다. 또한 1982년 3월에 국가지정 시레토코 조수보호구(희소 조류 및 동물 서식지)로 지정되었다.
이후 2005년 7월 14일에 남아프리카 공화국 더반에서 개최된 제29회 유네스코 세계유산회의에서 ""시레토코""라는 이름으로 세계유산(자연유산) 등재가 결정되어 2005년 7월 17일에 정식으로 등재되었다.
지금까지 나는 시레토코 반도를 모두 세 번 여행했다. 첫 번째는 여름에 철도와 버스등을 이용한 여행으로, 두 번째는 겨울철에 유빙워크를 위해 갔고, 세 번째는 여름철에 자동차로 가는 여행이었다. 각기 다른 시간에 떠났던 여행에서 나는 어떤 것은 보았고 어떤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 세 번의 여행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들은 무엇하나,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었다는 것이다. 바다와 숲, 폭포와 호수가 공존하는 시레토코는 매번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나는 그 여행길에서 여러 가지를 많이 얻었다. 이번 편은 시레토코가 어떤 곳인지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을 했고 시레토코 여행에 대해서는 따로 다시 쓸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레토코샤리역은 과거 식민궤도 샤리선(1952년 폐지)과 콘보쿠선根北線(1970년 폐지)이 연결되기도 했다.
여기서 또 식민철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 가자.
*식민철도란?
홋카이도의 오지로의 이주·개척을 할 때 당시의 교통수단은 말뿐이었다. 그런데 말도 화산재와 이탄습지가 가 많은 토양에서는 비가 내리거나 눈이 녹을 때의 진창에는 어떻게 해볼 수가 없어 이주가 어려웠다.
그런 배경에서 궤간 762mm의 간이궤도가 건설된다. 1925년 5월의 앗토코(현재의 네무로시 지역)-나카시베쓰 58 km의 개통이 성공을 거둔 것으로부터, 1932년까지 13개 구간 318 km가 개업했다. 홋카이도의 동부와 북부지방을 중심으로 각지에서 궤간 762mm의 '식민궤도'가 부설된다. 이들 궤도의 대부분은 개설 시 마차 철도였으나 차츰 동력화가 이루어진다. 1929년에 네무로선, 에사시선에 이어 가솔린카가 도입된다.
이 네무로선과 에사시선은 궤도법 제32조에 준하여 철도성과의 협의를 바탕으로 설치되었기 때문에 시간표에도 게재되었지만, 그 외 많은 선로는 홋카이도청이 철도성과의 협의 없이 건설했다. 태평양 전쟁 후 식민궤도는 내무부로부터 농림부 관할로 바뀌었고 간이궤도라는 다른 호칭이 부여됐다. 또한 1951년에 홋카이도 개발국이 발족해, 이것과 관리 위탁 계약을 맺는 「정촌영 궤도」라고 하는 형태로 운영되는 것이 증가한다.
1946년에는 이미 식민 궤도의 총연장은 600km를 넘었고, 그 후에도 각지의 개발에 힘썼으나 1960년대 후반에 들어서 본격적인 도로망이 확중되면서 동시에 이들 궤도는 폐지되고 마지막 남은 차나이선이 1972년 5월 1일에 폐지되면서 식민 궤도의 시대는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