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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천재상사의 초스피드 업무속도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그는 명문대를 졸업한 엘리트였다. 경제학과를 나와 외국계 은행에서 일하다가 우리 회사에 마케팅 임원으로 스카우트되어 왔다. 상경계열 특유의 깍쟁이 같은 얼굴, 은행에서 흔히 볼법한 매우 전형적인 화이트칼라의 매너들, 거기에 곁들여진 매우 유창한 영어실력은 누가 봐도 그를 매력적인 40대 후반의 성공남으로 보이게 했다.


그에게는 약간 독특한 이력이 있었다. 30대 초반 몇 년간의 은행원 생활 후에, 그는 시험을 쳐서 수의학과에 입학했다고 한다. 이후 친척의 연고가 있는 뉴질랜드로 갓 결혼한 아내와 이민을 갔었다고 한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30대의 다시 대학입학을 하는 용기, 수의학과에 한 번에 붙은 녹슬지 않은 실력, 갓 결혼한 아내를 데리고 새로운 나라로 이민을 갔더라는 그 결단에 매우 놀랐다.

듣기만 해도 숨차고 벅찬 여정인데, 그는 그냥 학교 다니며 특별활동 하나 더해 봤다는 정도로 가볍게 말했다. 수의학과 졸업장과 낙농의 나라 뉴질랜드를 더해 보며, 그는 이민을 그는 매우 장밋빛으로 예측하고 갔던 모양인데, 현실을 너무 힘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영어가 능숙해서, 그는 수의학과는 전혀 상관없는 현지 트레이딩 회사의 아시안 매니저로 일하면서, 예쁜 아들도 태어났다고 한다. 그렇게 그냥 아내와 셋이 평화롭게만 보였던 그 나라에 정착하고자 했으나, 그는 도저히 적응이 안 되었다고 했다. 그 이유는 '너무 심심해서'였다.

정확히 9 TO 5 인 그곳의 직장, 퇴근하면 6시에 아무런 유흥과 놀이가 없이 모두가 그냥 가정에서 저녁시간을 보내는 뉴질랜드의 일상이 너무 심심해서 힘들었다고 한다. 전공을 제대로 살릴 수 없는 현실도 어려웠을 것이다. 그렇게 방황하다가, 그는 기러기 생활을 하기로 하고 혼자만 한국으로 돌아와 새롭게 직장을 구한 것이었다. 아이와 아내는 그곳에 남아, 함께 사는 일반적인 결혼생활은 그렇게 짧게 끝난 셈이었다.



그가 우리 팀의 직속상사로 왔을 때, 전체적인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그의 스마트한 분위기, 굿모닝! 하면서 들어설 때의 그 시원한 향수냄새가 우리 모두를 기분 좋게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작은 좋았다.

하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우리 팀은 다들 지쳐갔다. 그는 천재끼가 다분했기 때문이다.

4. 천재상사.jpg 출처 : 핀터레스트



첫째, 그는 잠이 없었다.

9시 출근인데, 거의 7시쯤엔 늘 출근해서 자기 방에 불을 훤히 켜고 경제신문을 보고 있었다. 그의 말로는, 4시간 밖에 안 자는 태생적인 SHORT SLEEPER라는데, 7시에 출근해 경제신문과 그날 해야 할 일들을 다 미리 파악한 그는, 9시에 직원들이 출근하자마자, 각 개인에게 그날의 '엄청난' 업무량을 지시했다. 회사에 들어서는 순간, 그는 마치 취조를 하려는 것처럼 기다렸다는 듯이 팀원 개인 옆에 일일이 다니며 그날의 일들을 엄청난 속도로 브리핑했다. 다들 모닝커피 한잔 제대로 먹을 수가 없었다.


둘째, 그에게는 예지력이 있었다.

그는 어떤 상황을 보면, 그다음과 다음다음 단계까지 미리 내다보는 통찰력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 그가 주는 업무지시에는 '오늘의 할 일'과 '미래에 뻔히 발생할 것 같은 업무'들이 동시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의 통찰력은 대부분 맞아떨어졌다. 정말로, 현 상황을 보고, 다음 상황을 정확히 예측해 내는 능력은 놀라울 정도였다. 그의 템포에 맞춰 일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 팀의 평균 퇴근시간은 저녁 9시, 저녁 10..... 점점 늦어졌고, 우리는 다 지쳐갔다.

특히나, 아이가 어린 여자 팀원들은 너무 힘들어하다가, 다른 부서로 이동을 요청하거나, 그게 여의치 못했을 경우, 퇴사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셋째, 그는 체력이 대단했다.

그렇게 잠을 적게 자고, 그렇게 많은 일을 하고, 그 와중에 골프장에 나가 살고, 온갖 모임과 파티를 즐기며, 우리가 보기에는 초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며 살았다. 돈 쓰는 스케일도 남달라, 그의 법인카드 때문에 늘 자금팀에서는 말이 많았다. 기러기 아빠였던 그에게는 여러 명의 여자친구들이 있었고, 그들과 출장을 핑계로 다니는 해외골프여행 경비를 그는 거리낌 없이 법인카드로 긁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실적은 실로 대단했기에, 대표님은 그런 걸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러던 그가, 해외 출장 중에 골프장에서 급사를 했다.
이제 갓 오십이 되었을 무렵.

회사에서는 그의 장례와 관련하여 그의 뉴질랜드 가족들을 부르고, 업무 및 개인신상에 관련된 사항들을 처리했다. 빈소에는 그의 아내가 아들을 데리고 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지켜봤고, 저쪽 한 구석에는 그와 마지막을 함께 한 여자친구가 울고 있었다.


요절, 분명한 요절이었다. 50년도 못 살고 떠난 아쉬운 삶.

흔히들 천재는 요절한다고 하던가? 조문하고 나오는 길에, '그는 정말 천재가 맞았구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에너제틱했던 환한 미소가 영정사진으로 꽃밭 속에 세워져 있었다.


그가 떠나고 난 후, 회사에는 그 앞으로 우편물이 하나 날아왔다.

안티에이징 클리닉에서 온 프로모션 편지였다. 천재는 아마 늙고 싶지도 않았나 보다.

문득, 그가 우리 팀에 제일 많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니 그게 뭐가 어려워? 그걸 뭘 고민들 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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