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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국제결혼한 상사의 한국어 멀미현상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일본어를 전공한 그는 회사에서 일본과 관련된 모든 것을 담당하며 이름을 날렸다.

외모도 우리가 흔히 일본영화 오피스물에서 봄직한, 매우 일본 스러운 스타일의 소유자.

회사의 일본 주재원으로 나가 있는 동안, 현지 일본여성을 만나 국제결혼을 했다.

원래도 뛰어났던 그의 일어 실력은, 국제결혼이라는 24시간 회화 환경이 더해지자, 그야말로 네이티브들도

놀라워하는 실력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뛰어난 그와 일해 본 부하직원들은 다 같이 한 목소리로 힘들다는 하소연을 해댔다.

그가 하루종일 말을 해서 도무지 업무에 집중을 할 수 없을뿐더러, 그의 업무 지시들도 사담과 구분이 되기 어려워 매우 혼란스럽다는 평이었다.

그는, 업무와 상관없는 온갖 인문학과 역사와 상식, 본인의 취미인 골프와 관련된 이야기, 새로 시작한 수영과 그즈음에 시달리고 있던 허리협착증 통증에 관한 내용, 본인 가족들의 와병 및 입원에 관한 이야기까지 하루종일 부하직원들 등뒤에 대고 이야기를 해댔던 것이다.


전체 회식 같은 자리에서, 그와 가까이 앉을 기회가 있었는데, 그는 국제결혼의 애환을 종종 털어놨다.

아내가 일본인이기 때문에 모든 음식이 간이 싱겁고, 간장과 설탕으로만 간을 하니 느끼해서 힘들다는 것이다. 맛이 없어서 못 먹는다는 얘기는 차마 못하고, 늘 속이 더부룩하다고 했더니, 아내가 늘 걱정을 한다고 했다. 그래서였는지, 그는 늘 매콤한 메뉴를 즐겨 먹었고, 중국집에 가서도 짜장면에 수북이 고춧가루를 뿌려 먹었다. 밖에서 먹는 음식이 늘 더 좋다고 하면서, 심지어는 일부러 일찍 출근해서, 조반을 파는 식당에서 한국음식을 실컷 먹고 사무실로 올라온다고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그 팀에 새로 온 신입직원이 그만두는 일이 벌어졌고, 이미 사내에선 그런 일도 그 이유도 모두가 다 익히 심심치 않게 들어본 터라, 그러려니 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대표님은 그를 참기가 더 이상 어려웠던 것 같다.

3. 국제결혼.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는 대표님 방에 불려 갔고, 문제의 그 산만한 업무 스타일을 당장 고칠 것과, 부하직원을 잘 키워내는 것 또한 리더의 매우 중요한 자질이라는 긴 훈계를 듣고 나왔다고 한다.


속상 했던 그가 그날 저녁 동기 차장님과 술을 먹으로 했다는 넋두리를 나중에 들었다.

한국어, 한국어가 너무 고픈 거야. 일상에서 외국어로만 살게 되니까,
누군가와 그렇게 한국어가 하고 싶은 거야.
그게 그렇게 남을 괴롭히는 일이 될 줄은 몰랐어,
내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는 줄도 몰랐어.


그렇게 그는 술잔을 기울이며 한참을 중얼거렸다고 한다.

같이 살면서 하나의 모국어로 소통을 한다는 일, 아무리 마스터한 외국어라도 그 세심한 틈새를 메워주지는 못했던 것 같다. 서로 다른 문화와, '배워서 잘하는' 언어가 주는 외로움이 그토록 깊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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