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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회사 회의실에서 맘카페 모임을?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그녀는 30대 후반의 유부녀 직원이었다. 식약청에 다니는 남편과 중학생쯤 되는 아들이 하나 있는 평범한 직원이었다. 회계팀이었던 그녀는 7년 차쯤 되는 차장이었고, 한 팀은 아니었지만 나와는 동년배에 직급도 같아서 인사는 하고 지내는 편이었다.

그녀는 마치 북유럽 여자 같은 한국인 치고는 꽤 기골이 장대한 편이어서, 언뜻 멀리서 보면 난 늘 배구선수를 떠올리곤 했다. 성격도 활달하고 일도 잘하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지극정성 케어하는 열성 엄마여서, 종종 업무시간에 대놓고 아이 학원숙제를 전화로 붙들고 봐주기도 하고 (그게 된다는 게 신기했다), 학원 땡땡이친 아이를 큰 소리로 야단치기도 했다. 전화로 야단치는 소리가 우리 팀 쪽까지 또렷하게 들릴 정도로.


나는 그녀가 싫었다.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산다고 누구나 그렇지는 않을 텐데, 유독 아줌마 분위기가 너무 심하게 난다고 할까.


첫째, 그녀는 장대한 기골에 체중도 많이 나가, 너무 둔탁해 보였다.

여름엔, 출근시간에 헉헉대며 출근카드를 찍는 그녀에게서 훅 하고 땀냄새가 풍겨오곤 했다.

대강 휘날리는 커트머리에, 땀에 번져 번진 비비크림, 촌스럽게 그려진 눈사람 눈썹.

하여간 나는 그녀의 스타일이 싫었다.


둘째,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업무 패턴.

회사 은행 업무 보고 오다가, 코스트코 들려서 세일 상품 쇼핑하고 오는 일. (업무와 가사를 한 번에)

세관 업무 보고 오면서, 인근 부동산 들러 그 동네 아파트 시세 상담하고 오는 일. (업무와 재테크를 한 번에)

회사 회삭 자리에 아이 불러서, 고기 같이 먹게 하는 일. (사회생활과 아이 저녁 한 번에 해결)

대략 그런 스타일이었다.


셋째, 했던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 대화 스타일

폭설이 오던 날이었는데, 아마 오다가 차가 약간 돌면서 작은 접촉 사고가 났었나 보다.

모두들 지각한 날이어서 다 어수선했는데, 헐레벌떡 출근한 그녀는, 오전 시간 내내 커피잔을 들고 이 팀 저 팀을 다니면서, 오늘 그 접촉사고를 당해서 얼마나 놀랐는지, 폭설에 얼마나 운전이 힘들었는지, 자신이 얼마나 놀랐는지, 그 이야기를 계속 앵무새처럼 반복하며 떠들어댔다.


5. 거짓말장이.jpg 출처 : 핀터레스트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연말 감사가 있던 날, 관련 부서 직원들이 서울 외곽에 있는 물류센터에 가서 재고확인을 위해 며칠씩 야근을 하던 때였다. 그녀가, 본인은 아이도 좀 아프고 해서 저녁을 해주러 가야 한다며, 본인이 주 담당자인 그날의 업무에서 빠지며 일찍 퇴근을 했다. 좀 화가 나긴 했지만, 아이가 아파 케어하러 간다는데, 우리는 모두 그녀를 이해하고 기꺼이 야근해서 빼줬다.


저녁 9시가 넘고,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회사 본사에 들러 무겁고 들고 온 조사 자료들을 두고 퇴근하려고,

그 늦은 시간에 회사에 들렀다.

그런데, 10시가 다 되어가는 그 시간에 회사 전층이 환하게 불이 켜져 있는 것이 아닌가?

회사에 들어서자, 훤하게 불이 켜져 있고, 대회의실 안에서 사람들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들어서자, 아까 아이 때문에 집에 일찍 가야 한다던 그녀가, 여러 사람들을 데리고 열띤 회의를 하고 있었다. 앞에 대형 보드에 많은 메모들을 해 가며, 다른 사람들은 일종의 PT를 하는 것 같았다.


우리도 놀랐지만, 그 시간에 우리가 다시 회사로 들를 것이라고는 그녀도 상상 못 한 일이었나 보다.

서로 너무 놀라서 한참을 바라보며 내가 물었다.


"차장님, 아니 아까 집에 가신다는 분이 지금 여기서 뭐 하시는 거예요? "

"아...... 그게..... 저...... 제가 하는 맘카페 바자회 때문에 운영진 분들과 잠시........"


그녀는,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혼자 정시퇴근을 하고는, 본사 직원들 퇴근 시간에 맞춰 맘카페에서 하는 바자회 관련 업무회의를 열었던 것이다. Oh my god !

5. 인테리어 회의실.jpg 출처 : 핀터레스트

너무 황당했던 우리는 그렇게 어이없는 대화를 마무리하고 퇴근했고, 그녀 역시 어쩔 줄 몰라하며 그 디자인팀과 주섬주섬 짐을 챙겼다.


그날 이후, 나는 어떠한 배려도 그녀에게 하지 않았다.

모든 건 Rule대로, 원칙대로만 협업했다.

그날의 다른 팀원들도 다 그랬다.

얼마 후, 그녀는 사표를 내고 회사를 떠났고, 후배 직원이 바로 승진을 했다.

그렇게, 산만하던 한 사람의 자리가 너무나 쉽게 채워졌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나고, 은행에서 우연히 그녀를 봤다.

회사 다닐 때와는 꽤 다른 모습이었다. (좋거나 나쁘다라기 보단, 아주 많이 다른 분위기였다)

모쪼록, 떠난 자리, 떠난 자도 모두 평안하기를 빈다.


아쉽지 않은 이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슨 악감정이 남는 이별도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녀가 떠나 이제는 잔잔하고 조용해진 그 아침 시간이 좋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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