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칭찬을 할 줄 모르는 상사가 있었다.
그는 수입영업팀에서 일하면서도 영어는 한 마디도 못했다.
그런 그가 팀장으로 굳건히 버티는 비결은, 그의 엄청난 판매능력에 있었다.
영어는 못했지만, 그에게는 제품을 파는 능력, 즉 남을 설득하고 맞추는 능력이 있었기에, 늘 실적이 좋았다.
다만, 수입선 해외거래처들은 그가 가끔씩 국제전화를 해 해 대는 형편없는 엉터리 영어 때문에, 제발 그가 전화하는 일을 말려 달라는 부탁을 회사 대표님께 할 지경이었다.
통상,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갖는 콤플렉스나 울렁증, 그런 것을 그는 갖고 있지 않았다.
늘 자신만만했고, 나만큼 실적 좋은 사람 있으면 나와 보라며, 회식 자리에서 대표님과도 호탕하게 대화를 이끌어 나갔다. 하지만, 그의 밑에서 버텨내는 부하 직원들이 없었고, 신입 직원이 입사하면 몇 달 이내에 사표를 쓰거나, 다른 팀으로 이동 신청을 하곤 했다.
그의 밀어붙이는 업무 스타일, 영어 실력을 온전히 모두 부하 직원에게 의지하는데서 오는 업무 과중, 그런 공을 다 가로채 모든 것은 자기의 성과인양 으스대는 그에게, 사람을 키우는 능력은 늘지 않았다.
당시, 우리 회사를 무시하는 미국 회사가 있었다.
일본과 한국 모두에게서 많은 주문을 받는 대형 메이커였다.
그 당시, 일본 주문은 거의 늘 한국 주문보다는 가격이 좋았기 때문에, 그 메이커는 대놓고 일본 오더를 우대했다. 늘 먼저 선적을 해줬고, 연말에는 그 해의 물량 할인 (volume discount)도 일본 오더에 훨씬 많은 %를 제공했다.
대표님이 자주 출장을 가고, 현지에 우리 일을 코디해 주는 한국인 에이전트도 있고, 여러 모로 공을 들였지만 그 메이커의 일본시장 사랑은 멈춰지지 않았다. 생산순위, 선적순위, 가격정책 모두에서 언제나 일본시장을 최우선으로 배려했다. 그래서 우리 주문은 늘 선적 지연에 시달렸고, 때때로 그로 인해 우리는 지연배상금을 우리 납품처인 End user에게 지불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했다.
그런 상황에서, 영어 한마디 못하는 그는 아무것도 해결하지 못했고, 부하 직원들만 닦달을 해댔다.
매일매일이 선적 딜레이와의 전쟁이었다.
그 팀원들은 어느 날 "주간 선적 현황표" (weekly shipping report)라는 서류를 만들기로 했다.
주간 선적 현황을 해당 메이커에 매주 일정한 기일에 늘 발송해서, 선적 현황을 한눈에 볼 수 있게 보내주며 일정을 확인했다. 처음엔 별 반응이 없던 메이커에서, 어느 날부터인가 그 현황표에 업데이트를 해주며 회신을 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선적 지연들이 많이 줄어들고, 메이커와의 관계도 많이 개선되었다.
순전히 팀원들만의 노력으로 생긴 결과였다. 그렇게 해당 제품을 잘 수입해서 도착시키면, 그의 눈부신 영업력이 빛을 발해 높은 실적을 내었다.
하지만, 그는 절대 그 누구도 칭찬해 주지 않았다.
연말이 되자, 미국에서 FEDEX 소포가 하나 도착했다.
그의 이름이 아닌, 해당 여자 팀원 이름으로 도착한 작은 소포에는, 손으로 쓴 크리스마스 카드와, 명품 스카프가 4장 들어 있었다. 그 팀의 4명의 여자 팀원들에게 보내는 선물이었다.
그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Thank you so much for your excellent assistance in this year.
그리고 메일에는 한 해를 보내는 소회를 적어왔다.
사실, 억만장자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은 저는, 해외주문 내역들을 제대로 보지 않았어요.
매니저들이 다 알아서 하겠거니 했고, 일 년의 반은 거의 플로리다 별장에서 메일로만 간략히 업무를 보고 받았죠. 그래서 한국 오더들을 특별히 일본 오더에 비해 홀대하고 있었던 것을 몰랐어요.
그런데, 당신 팀에서 보내주는 너무 잘 정돈된 주간 선적 현황표를 받으며, 한국 오더는 물론 아울러 일본 오더까지 한눈에 파악이 되면서,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당신들의 멋진 조력, 고맙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함께 일하는 상사에게서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칭찬과 선물을 받고 하이파이브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