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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암에 걸린 상사의 Password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by 은수자 Feb 05. 2025

그는 매우 예민한 성격이었다. 

50대의 그는,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해외프로젝트 계약 전문으로 수십 년간 일한 베테랑이었다. 외국어를 무척 잘하셨고, 요즘으로 말하면 극 I 성향이어서, 사내에 크게 어울리는 사람도 없고, 크게 그를 따르는 부하직원들도 없었다. 


서울내기 깍쟁이! 

내가 그를 보면서 늘 느끼는 이미지였다. 실제로 그는 사대문 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만 교육받은 양반이라고 농담 삼아 말하곤 했다. 술은 크게 즐기지 않았지만, 은근 Heavy smoker여서 하루 한 갑의 담배를 피운다고 했고, 가끔씩 점심 식사 후, 혼자서 회사 근처 공원에서 담배를 즐기며 혼자 생각에 잠겨 있는 그를 종종 볼 수 있었다. 


우리 팀은 아니었지만, 종종 그의 지휘 아래 해야 하는 업무들이 종종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예의 그 유창한 영어실력을 발휘 헤서, 해외와의 화상회의를 멋지게 해내고, 그의 젠틀한 매너를 파트너들도 다 좋아했다. 마일드, 나는 그를 묘사할 수 있는 제일 좋은 형용사가 아마 이 "MILD" 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 회사에 한 달간의 병가를 냈다. 대장암이라고 했다. 

어느 날부터 너무 입맛이 없어서 영양 수액이나 한 병 맞을까 하고 갔던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그에게 큰 병원 진료를 권했고, 그는 바로 그렇게 암환자가 된 것이다. 

아무 증상이 없었던 거 치고는 그의 병기는 꽤 나빴고, 이미 다른 장기에 다 전이가 된 상태였다. 

한 달 병가를 내고 떠났던 그는, 그 한 달을 채우고 잠시 회사에 나와 사직서를 내고, 본인의 책상을 싹 치우고 떠나갔다. 그가 떠나간 자리에는, 회사에서 준 차 키 (임원이셨다), 회사에서 준 핸드폰, 회사에서 준 노트북이 놓여 있었다. 


그 노트북에는 패스워드가 적힌 포스트 잍이 붙어 있었는데, 그게 "Smile"이었다. 
출처 : 핀터레스트 출처 : 핀터레스트 

음... 아마 그는 많이 웃고 살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던 게 제일 아쉬웠을까?

돌아보니, 그가 웃는 모습을 거의 보지 못했던 것 같았다.  


회사에서 해준 환송회 날, 병색이 완연한 얼굴로 그는 꽃다발을 받으며 빨개진 눈시울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저의 예민한 성격으로 인해 혹여라도 상처받은 분이 계시다면 용서를 빌고 싶습니다. 모두들 다 금연하시고, 건강 잘 챙기시지 바랍니다. 돈과 물질은 건강에 비하면 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를 배웅하고 돌아서는데, 그가 나를 불러 세웠다. 

너무 애쓰지 말고 살게나. 자네는 늘 내가 보면, 너무 종종거리며 살아. 느긋하게 맘 편하게 살게! 


반년이 지났을 무렵, 부고를 받았다. 

병들어 떠난 그의 빈소에는 거의 아무도 오지 않았고, 가족들만 옹기종기 앉아 계셨다.  

퇴사 후, 회사에서는 바로 그의 퇴직급여를 지급했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죽기 전 몇 달 전까지 아내의 통장에 거액의 퇴직급여를 입금해 주고 황망히 짧은 생을 마무리하며 떠났다. 


인생은 참 짧다. 행복하고 건강한 시간은 더 짧다. 

출처 : 핀터레스트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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