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 추억한다.
팀의 직원을 충원키로 해서, 서류를 받고 있었다.
사람을 뽑을 때, 배치될 팀에서 1차로 프로필을 검토하는 시스템이어서
내가 그 일을 맡게 되었다.
요즘 졸업하는 친구들의 이력서란, 한결같이 모두
"고득점 토익", "높은 학점", "기타 무척 다양한 자격증" 등으로
거의 같은 프로필이 주를 이루는 터라,
일단 들어오는 대로 서류들을 정리해 놓고
금요일쯤 집중적으로 검토해, 선별하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단연, 내 눈을 잡아 끈 자기소개서가 하나 들어왔다.
어린 시절, 사고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자랐지만,
엄마와 남은 형제들이 모두 사랑하고 합심하여
모두들 무사히 학교를 마치고, 아파트도 하나 사서
지금 자기는, "매우 행복한 사람"이라는 내용이었다.
통상,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란 모두
"저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라는 결론에 닿기 위한 설명들이라
그 친구의 자기소개서가 무척 각별히 느껴졌다.
더더구나, 자기소개서 전면에 흐르는 무언가 "명람함"이랄까
나는 그 느낌이 꽤 맘에 들었다.
직장생활에서, "밝은 성격"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프로필을 보니, 학교나 전공 그리고 나이, 통근거리 등이 큰 무리가 없을 듯했고,
무엇보다도 나는 그 "행복한 사람"의 얼굴을 한번 보고 싶어졌다.
약속된 날, 상사와 함께 인터뷰를 하면서 보니
세상의 어려움도 꺽지 못한 그 아이의 밝은 심성이 얼굴에 그대로 묻어 있었다.
다른 후보자들도 있었지만, 나는 상사에게 그 친구를 추천했다.
2주 후쯤, 우리 회사에 정식사원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그런데, 정말 예기지 못한 상황이 생겼다. 그 명랑한 친구한테.....
심한 아토피가 재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아마도, 처음 시작하게 된 사회생활, 긴장감 등이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그간 숱한 노력으로 잠재워졌던 심한 아토피가 재발한 것이라는 고백.
아이의 얼굴은 하루가 다르게 심해져 갔고, 언제나 책상엔 숱한 약들이 있었다.
난감한 일이었다.
새로 직원을 뽑아 업무배치를 해줘야 하는데,
아토피란 게 하루아침에 낫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상사들과 회의 중에 그 친구에 관한 일이 마지막 화제로 올랐고,
이제 막 입사해 업무를 받은 상태도 아닌 수습상태이니
다른 후보자들 중에서 대체하자는 것이었다.
상사들을 매정하다고만 할 수도 없었다.
직장이란, 여러 사람이 모여 일하는 공간이며
너무 심한 상태로 악화되어 가는 모습은,
분명히 다른 사람에게 시각적 무리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반면 아토피란 것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병이다.
그런 것으로 인사상 불이익을 준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지 않을까,
나는 상사들과 그 아이 (아무것도 모르는) 사이에서 혼자 고민하기 시작했다.
내가 내린 결론은,
정 심해지면 본인이 힘들어서도 일단 포기하고 몸을 추스를 것이고,
심리적인 긴장이 주요 원인일 수도 있으니,
아이에게 조금 시간을 주면,
다시 충분히 좋은 컨디션으로 갈 수 있지도 않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업무를 배치했다.
내 맘 속 최대 바람은,
"상사들의 인내심이 허락한 시간 내에 그 아이가 호전되는 것"이었다.
틈틈이, 아이의 얼굴 상태를 확인하고,
내가 들은 아토피 호전에 좋다는 여러 습관들을 수다처럼 알려주고
다른 직원들에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따뜻하게 배려했다.
오며 가며, 늘 바라보게 되던 아이.
누군가가 입사한 일이, 그토록 내 신경을 쓰이게 했던 적은 처음이었다.
나는, "오늘은 더 나아 보이는데.." 하면서 매일 칭찬해 주었다.
아이는, 피부과 치료를 열심히 받고, 아토피 전용 비누를 쓰고, 특별한 화장품에...
하여간 본인이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 같았다.
물론, 음식도 엄청나게 조심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확연히 피부가 가라앉기 시작하더니
어느새, 처음 봤던 얼굴로 돌아왔다.
휴우........... 나는 혼자 안도했다.
그런 일로 서로 헤어졌다면, 뽑은 사람에게도 본인에게도 큰 상처가 되었을 일.
잊힐 만하면 늘 문자를 보내는 놈.
- 잘 지내세요? 여름이에요, 더워서 오늘 생각이 났어요. -
- 잘 지내세요? 겨울이에요, 추워져서 오늘 생각이 났어요 -
그래, 세상의 어려움도 꺾지 못한 너의 그 명랑함...
부디 아토피로부터 잘 지켜내거라.
때로는 냉혹한 이 세상살이에서도 잘 살아남거라!
니 웃음이, 널 지켜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