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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장애아이를 둔 상사의 뒷모습

- 아롱다롱 오피스텔링_회사생활을 추억한다

by 은수자


사람을 만났네.


30여 년의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습니다.

삶의 무지개가 다양하게 펼쳐지는 생의 현장, 직장.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양장본 소설 한 권처럼 단정한 추억이 됩니다.

주인공에 대한 배려를 위해 조금의 각색을 더했습니다.

기억에 얇은 픽션을 입혀, 그 하나하나의 기억을 추억해 봅니다.



1. 장애 아이를 둔 상사의 뒷모습


그 사람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몹시 차가운 상사가 있었다.

회식이나 워크숍 그런 행사에는 늘 불참을 하셨는데, 차장급이셨던 연차에도 뭐랄까 팀을 아우르는 리더십은 보이지 않았다. 회사에서는 그의 불참을 누구나 할 것 없이 다 묵인을 하셨는데, 아마도 대표님의 배려인 것 같았다. 우리 팀 상사는 아니셨기에 세세히 그의 스타일을 알 수는 없었는데, 해당 팀원들은 대부분 불만이 아닌, "불편"을 호소했다.


- 음, 업무는 정말 완벽하시죠. 근데, 너무 틈을 안 주시니까, 늘 어렵고 약간 불편해요. -

- 7년을 같이 일했는데, 노래하시는 모습 같은 거 궁금해요, 술도 한잔 사 주시면 좋겠고요 -


큰 키에 깔끔한 슈트를 늘 입고 다니셨는데, 조키까지 깔맞춤 하시는 패션 스타일이 특징이었다.

지금도 늘 기억에 남는 모습은,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칼퇴근하시는 그 단호한 뒷모습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해외 출장길에 중요한 서류를 집에 두고 공항을 가는 일이 생겼다.

해당 팀원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외근 중이었던 터라, 타 부서인 내가 부득이 그의 집에 가서

해당 서류를 들고 공항으로 가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의 성격상, 부하직원이 본인 집을 방문하는 일이 생기는 걸 절대 달가워하지 않았을 텐데,

집과 공항이 반대 방향이니 어쩔 수가 없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본인이 왔다 갔다 하기엔 비행기를 놓칠 수밖에 없었기에.


깨끗한 신축 아파트였다.

무척 어려 보이는 아내분이 문을 열어주었는데, 한 눈에도 열 살 이상은 차이가 나는 것 같았다.

이미 전화를 해 두신 듯 바로 서류를 내게 건네주셨는데, 뒤에 아이가 쫓아 나와 나를 제 엄마 뒤에서 빤히 쳐다봤다. 거실에, 아이와 활짝 웃고 있는 그의 사진이 낯설었다. 회사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미소.

서류를 받아 들고 인사하고 돌아서는데, 아내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저기요, 우리 남편... 회사에서 어때요?
그 사람 되게 이상하지 않아요?
아뇨... 그냥, 집에서는 말을 잘 안 해서요, 아이 수발만 하고...


난 그냥 그렇지 않다고, 좋으세요.라고 간단히 말하고는 공항으로 갔지만,

그녀의 그 난감해하던 표정이 오래도록 남았다.


나중에, 대표님과 둘만 밥 먹을 기회가 있었다.

그에 대한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다.

-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아마 늘 마음이 좀 힘들어서일 거야. 차가운 거는.

예전 직장에서부터 같이 근무한 친구라, 내가 시간은 많이 배려하는 거지 -


음, 알 수 없다.

그의 차갑게 보였던 뒷모습이, 차가운 마음이었는지 외로운 마음이었는지.

아내가 물어보던 그 쓸쓸한 질문이 그를 향한 것이었는지, 세월을 향한 것이었는지.


나중에, 그는 작은 회사를 차려 독립했고, 대표님은 초반에 그가 자리 잡는 데 도움을 주었다고 들었다.

지금은, 활짝 웃는 날도 있는, 수더분한 따뜻한 할아버지가 되어 있으시면 좋겠다.

그 당시 아홉살 즈음이던 아이는 지금쯤 훤칠한 청년이 되어, 아빠와 웃고 있기를.

2호실 숙자.jpg 출처 : 핀터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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