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글을 쓰는 친구가 사진 한 장을 보내왔다. 뒷마당에서 자라는 오렌지 나무라며, 가지마다 주렁주렁 달린 샛노란 열매가 햇살에 반짝이고 있었다. “열매가 너무 많이 열려 가지가 찢어질까 봐 다섯 개의 버팀목을 세웠다"라는 말과 함께였다. 사진 속나무는 무겁게 늘어진 열매를 자랑하듯 그 자리를 고요히 지키고 있었다. 친구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옆에 있으면 한 보따리 가져다줄 텐데.”
나는 ‘버팀목‘이란 단어가 유난히 마음에 와닿았다.
나는 다가오는 12월 28일을 생각했다. 내가 14년을 머문 이 직장에서 새롭게 옮겨갈 날이다. 이곳은 내 미국 직장 생활의 세 번째 장소였고, 이번 이사는 네 번째다. 14년 전, 이 자리로 처음 발을 들였던 날의 기억이 선명하다. 낯설고 긴장되었지만, 조금씩 익숙해지며 내 공간으로 만들어갔던 그 과정이 내 마음을 단단하게 해 주었다.
14년이라는 시간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다. 이 자리에서 나는 수많은 일들을 경험했다. 크고 작은 성공과 실패, 동료들과 함께 웃고 또 고민했던 시간들. 모든 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익숙하고 편안한 이곳을 떠난다는 생각은 아쉬움으로 다가오지만, 한편으로는 설렘도 있다. 새로운 환경은 또 다른 성장을 위한 기회이니까.
친구가 보내온 오렌지 나무는 나를 지탱했던 시간과 사람들을 떠올리게 했다. 나무가 가지를 휘게 할 만큼 무거운 열매를 지탱하려면 튼튼한 버팀목이 필요하듯, 나 역시 보이지 않는 버팀목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가족의 응원, 동료들의 격려, 스스로의 의지와 때때로 찾아온 작지만 큰 위로들. 그 모든 것들이 나를 붙잡아 주었고, 나는 그 안에서 열매를 맺어왔다.
12월 28일이 오면, 나는 이 자리를 떠나 새로운 곳으로 간다. 그곳에서도 아마 다시 나만의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어가야 할 것이다. 하지만 빈손으로 떠나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 내가 쌓아온 경험과 배움, 나를 지탱해 준 모든 기억들이 나와 함께할 것이다. 나는 그 기억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열매를 맺을 준비를 한다.
오렌지 나무의 사진을 보며 나는 깨닫는다. 가지를 받쳐주는 버팀목 덕분에 나무가 무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듯, 나 역시 내 삶의 버팀목들 덕분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그러니 다가오는 날은 두려움보다는 감사와 희망을 품고 맞이해야겠다. 내가 가는 그 자리에서도 또 다른 열매를 맺을 나를 기대하며 이사 갈 준비를 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