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때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하거나 책을 읽는 경우 떨렸던 기억은 없다. 오히려 발표수업 위주로 진행하시는 선생님을 만나서 운 좋게 발표할 기회도 많았다. 우리 반은 학교 대표로 장학사님이 오실때 발표 수업을 보여주는 반이기도 했다. 2학기때는 친구들의 인기도 얻어서 학급 반장도 되면서 학급 회의도 떨지 않고 진행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중학교, 고등학교때를 거치면서 발표를 할 일은 없었다. 당시 입시 위주의 교육과정에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내 의견을 이야기할 필요가 없었다. 기껏해야 수업 시간에 교과서를 읽는게 전부였던 걸로 기억한다. 친구들 앞에서 글을 읽는다는 살짝의 긴장감은 있었지만 목소리가 떨린다든지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을 할때 지나치게 긴장한다는 느낌은 받을 수 없었다.
내가 스피치 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안 것은 대학교에 들어가서였다. 나는 재수를 해서 대학교를 한 번 옮겼는데 한 과에 20명씩만 있고 한 학년에 6개의 과만 있는 소수로 구성된 학교에 다녔다.(한 학년은 120명 전교생은 500명이 안 되는 조그마한 학교였다.) 대학교에 들어가자 발표 수업이 많았다. 한 학기에 2-3번은 논문을 읽고 정리해서 다른 사람들 앞에서 PPT를 만들어서 발표를 해야했는데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달리 지나치게 경직되어 있었고 긴장을 했다. 울먹울먹한 목소리로 발표문을 간신히 읽어내려갔고 등에서는 식은땀이 주르르 흘렀다. '처음이라 그렇겠지 연습하면 좋아질꺼야'라고 생각했지만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한 번 발표수업에 대한 겁이 생긴 이후로 '떨면 안돼 긴장하면 안돼' 라는 압박감이 날 더 감쌌고 나는 더욱 긴장해서 거의 울 것 같은 목소리로 발표문을 읽었다. 발표 글 하나 제대로 못 읽는 내가 한심하다고 느낄때도 많았고 긴장하지 않고 멋지게 발표하고 싶다고 생각도 많이 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대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원하지는 않았지만 같은 과 사람들에 의해 과대표가 되었다. 과대표가 되어서 50-60명 앞에서 회의를 진행하려니 눈 앞이 캄캄했다. 그래도 같은 과에서 일해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회의 연습도 하고 친구들이 회의 중간에 도와주기도 했지만 나의 공포증은 여전했고 전혀 좋아지지 않았다. 4학년 선배들의 졸업 논문 발표때는 교수님들까지 모시고 진행을 봐야했는데 추운 날씨였는데도 불구하고 내 옷 안은 땀으로 다 젖었고 무슨 정신으로 진행을 봤는지도 모를 정도로 긴장을 많이 했었다.
대학교 졸업을 앞두고 나의 스피치 공포증을 고치고 싶었다. 그래서 스피치 관련된 학원들을 찾아보다 스피치 동호회를 알게 되었다. 거기서 전문 강사님이 'PPT잘하는 법'이라는 주제로 수업을 하셔서 수업을 듣게 되었다. 8명이 수업을 함께 들었는데 왜 우리가 발표할때 떠는지에 대한 원론적인 이유와 떨지 않고 말하는 법,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에 대한 수업을 들었었다. 마지막 수업 시간에는 각자 3분 분량으로 프리젠테이션을 만들어서 발표하는 시간이 있었다. 각자 발표 후 피드백을 주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같이 수업을 들었던 분 중 한 분이 나의 발표에 대해서 엉망이였다고 비난을 하셨다. 지금이야 멘탈이 더 강해져서 별로 상처받지 않았겠지만 당시 나는 아주 큰 상처를 받았었다. 난 더 위축되었고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게 무서워졌다. 하지만 그 수업에서 배웠던 대로 발표 기회를 많이 가지고 연습을 충분히 한다면 스피치 공포증에서 벗어날 수 잇을 것 같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스피치 모임에 꾸준히 참석하고 모임 진행을 해보겠다고 지원하는 등 노력을 해보기도 했다.
대학원에 가서 다시 반복된 발표 수업에서 과거의 내 연습이 무색하게 나는 여전히 긴장하고 있었고 나의 주장과 생각을 편안하게 말하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친한 사람들과 있을때는 긴장하지 않지만 처음 보는 사람과 대화를 하거나 사람이 조금이라도 많은 곳에서 내 의견을 말할 일이 생기면 여전히 과도하게 긴장한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말을 잘하고 싶다. 언젠가는 멋진 강연자가 되고 싶기도 하다. 이제는 내 안에 있는 고정 관념이라는 녀석을 깨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