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으로 살면서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영어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 물론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하거나, 거주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제외겠지만 한국에서 평범한 교육 과정을 밟아온 나 같은 사람들은 대부분 영어에 얽힌 컴플렉스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최근에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영어 회화가 자유자재로 되는 사람들이 많아지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은 사람들에게 영어는 편한 대상이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영어에 얽힌 몇 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영어가 참 싫었다. 학원과 학교에서 영어 문법을 10번도 넘게 배웠을텐데 나의 문제인건지, 선생님의 문제인건지 나는 아주 기본적인 문법도 알지 못했다. 과거형, 과거분사를 구분하는 것을 넘어서 단수, 복수의 개념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 수동태, 능동태도 매번 어려웠다. 그래도 학교 시험에서는 항상 90점 이상을 맞았다. 학교 교과서 본문을 달달 외웠기 때문이였다. 교과서 본문을 100번도 넘게 소리내서 읽다보면 시험에 나오는 문제들은 입에서 반사적으로 튀어나와서 시험 문제를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수능이 문제였다. 나는 문장 해석이 잘 안 되었지만 수능 필수 영단어만 달달 외워서 시험을 봤었다. 당연히 아주 좋은 등급을 받지는 못했다.
나는 문화재청 소속의 특수대학교를 다녔는데 우리 학교는 다른 학교에 흔히 있는 교양 영어 과목이 전혀 없었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생활 동안 영어와 더 멀어져갔다. 대학교 4학년에 올라가기 전 겨울 방학 나는 혼자서 유럽여행을 떠났다. 영어를 못해서 걱정을 살짝 했지만, 여행 책자에 대부분의 정보가 나와 있어서 영어를 못한다고 여행을 못하는 건 아니였다. 바디랭귀지를 사용하면 아주 기본적인 것은 소통 할 수 있었고 장소는 "where+장소"로 물어보면 찾아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스호스텔에 가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고 동양인에게 호감을 보이고 친해지려고 한두마디 건네는 원주민들에게 나는 친절한 미소 외에 보낼 게 없었다. 여행 내내 나는 한국에 돌아가면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하리라 다짐에 다짐을 했다.
대학교 4학년 시절 나는 영어공부에도 필요하고 취업에도 도움이 될 영어 공부 방법으로 먼저 토익을 선택했다. 처음 토익을 보았을때 점수는 최악이였다. 동영상 강의를 듣고 주말에는 서울에 가서 강의도 들으면서 토익 공부를 시작했다. 2학기때는 인턴으로 서울에서 일하게 되면서 일하는 곳과 가까운 종로로 토익 새벽반을 다니면서 인턴 생활을 했다. 공부를 하는 만큼 점수는 올라갔고 토익을 공부한지 6개월 만에 나는 처음 받았던 점수의 2배가 훨씬 넘는 점수를 받으면서 토익 고득점을 얻게 되었다.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교수님으로부터 유네스코무형문화센터에서 일해볼 마음이 있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이번에 유네스코무형센터에서 계약직 직원을 뽑는데 내가 높은 영어 점수를 가지고 있어서 추천서를 써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당연히 그 제안을 받아들였고 면접을 보러갔다. 하지만 나는 토익 영어만 공부해봤지 실제 회화는 거의 하지 못했다. 나는 면접을 망쳤고 결국 다른 사람이 내가 원했던 자리에 뽑히는 걸 지켜봐야했다. 면접을 망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속상해서 하염없이 눈물이 나왔다. 하지만 나의 영어 스피킹 실력은 엉망이였고 토익 점수는 내 영어 실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나는 영어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이 강해졌다. 대학원을 준비하면서 나는 텝스 공부를 했다. 그때 영어발음은 많이 좋아졌지만 회화와 작문은 여전히 잘하지 못했다. 그래도 입학을 위한 시험 점수는 얻게 되어서 내가 준비하던 대학원에 입학 할 수 있었다.
내가 전공한 대학원 수업은 영어로 된 수업이 많았다. 우리 학교는 실제로 반 정도가 외국 학생들이였다. 대부분 학생들이 한국어를 잘하는 경우가 많아서 한국어로 대화를 할 기회가 있을때는 그들과 이야기를 주고 받았지만 영어로 대화를 할 일이 생기면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기도 했다. 대학원 수업 시간 전공 이론과 관련된 영어 원서를 읽고 해석해서 제출하는 수업이 있었는데 나는 교수님께 영어실력이 형편없다는 상처가 되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날 집에 와서 많이 울었었다. 나의 자존감은 한없이 낮아졌고 대체 영어가 뭐길래 내 인생에 매번 걸림돌이 되는지 원망하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아이들 영어 공부에도 도움이 되고 나에게도 도움이 되기 위해서 주변 지인과 함께 쉬운 영어 원서 읽기도 해보았다. 우연히 알게 된 외국인 친구에게 1주일에 한 번씩 회화 수업을 듣기도 했지만 내 영어 실력이 크게 향상되지는 못했다. 나는 외국인을 보면 여전히 얼음이 되었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머릿속은 하애졌다.
24년 12월 29일 아이들과 나는 4주 과정으로 필리핀 어학연수를 왔다.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 동안 나도 4시간 수업을 신청했다. 이 시간 동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영어로 말해야 한다. 지금 이곳에 온지 3주가 지나가는 요즘 영어 실력이 눈에 띄게 늘지는 않았지만 나는 간단한 표현 정도는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선생님과 일상을 공유하기도 하고 농담을 하기도 한다. 또 필리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이번을 계기로 내가 한동안 손을 놓아버린 영어 공부를 다시 하고 싶다는 강한 열망이 생겼다. 나의 영어 실력은 앞으로 얼마나 더 향상될 수 있을까? 나는 나의 발전이 궁금하다. 그리고 나를 응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