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고등학교 시절 엄한 아빠 밑에서 자란 나는 반항을 모르고 살았다. 가끔씩 편한 엄마에게 짜증을 부리긴 했지만 전반적으로 가정에서는 착한 딸로 학교에서는 모범생의 역할에 충실했다. 가끔씩 도서관에 간다는 가벼운 거짓말을 집에 하고 친구들과 시내로 놀러가거나 영화관에 가는 잠깐의 일탈을 즐기는 것 외에는 학교와 가정에서 잘하려고 노력했다.
대학교에 가면서부터 나의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아빠는 학교에서 가는 OT나 공식적인 행사 외에는 외박은 절대 허락하지 않으셨다. 또 밤 10시라는 통금시간을 지켜야했다. 부모님께 사정을 말씀드리고 허락을 받을 경우 통금시간을 밤 12시로 늘려주셨지만 그 이후에 들어오는 건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때부터 아빠와 갈등이 생기기 시작했다.
중고등학교때는 친구들과 놀아도 대부분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에 밤 10시를 넘기지 않았었다. 하지만 대학교에 가니 상황이 달라졌다. 주위 친구들은 중고등학교때 공부를 하느라 누리지 못했던 자유를 누리기 바빴고 그 속에서 나 혼자만 자유가 없다고 생각하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같은 과에 친해진 친구 3명 중 두 명은 학교 앞에서 자취를 했고 한 친구는 외박이 자유로운 집이여서 어쩌다 한 번씩 외박을 했다. 또 내가 친해졌던 친구들은 모두 술을 좋아했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면 오후 5-6시부터 친구들과 술자리가 시작되었다. 술자리는 1차,2차,3차를 지나며 무르익었고 나는 한참 재미있을 시간인 오후8-9시에 자리에서 일어나야 했다.(학교에서 우리집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렸었다.) 이런 생활이 반복되니 나도 부모님께 슬슬 화가 났다.
'난 언제까지 통금 시간이 있어야 한단 말인가. 이제 대학생이면 나도 어엿한 성인 아닌가. 왜 우리 부모님은 나를 간섭하고 구속하는 걸까.'
아침에 일찍 나와서 늦게 들어가는 생활로 부모님과 대화는 더욱 줄어 들었고 부모님에 대한 나의 불만은 쌓여가고 있었다. 부모님 역시 통금 시간을 자꾸 어기는 나에게 화가 나셨었다.
1학년 1학기 축제 첫째날이였다. 새로 들어간 동아리에서 주점을 하면서 친구들과 주점에서 일하면서 함께 놀다가 밤 12시를 넘겨서 집에 도착했다. 내 입장에서는 친구들과 더 놀고 싶은 마음을 뒤로 하고 10시 30분에 학교를 나와서 힘들게 집에 온 것이였다. 오는 길 내내 부모님께 서운하고 아쉬운 마음이 더 커져갔다. 하지만 부모님은 약속 시간인 밤 12시를 넘겨서 왔다며 힘들게 집에 온 나를 혼내셨다. 그동안 참아왔던 화가 나도 폭발했다. 방에 들어갔지만 화가 나서 잠을 잘 수가 없었다. 나는 새벽같이 옷 몇 벌과 이백여만원이 들어있던 통장, 가지고 있던 돈들을 모두 챙겨서 집을 나와 버렸다. 내 생애 첫 가출을 한 것이였다. 집을 나서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마땅히 갈 곳이 없었던 나는 우선 나는 학교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학교를 가는 길 내내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
'우선 친구집에 며칠 머물면서 아르바이트 자리부터 알아봐야지. 그런 다음 월세로 집을 구하고 일을 하면서 1학기는 어떻게든 학교를 다녀봐야지. 통장에 있는 돈으로 보증금은 낼 수 있을꺼야. 등록금을 낼 돈은 아직 없으니 정 안되면 2학기때는 휴학을 해야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한 계획을 머릿속에 계속해서 그렸다. 학교 앞에 와서 나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다. 친구들과 만나고 나서 나는 핸드폰 전원을 꺼버렸다. 부모님께 전화가 오는게 싫고 두려웠기 때문이였다. 부모님의 전화를 모른 척 할 용기가 없었다. 그 날 친구네 집에서 잠을 자고 나는 계속해서 핸드폰을 꺼두었다. 그 시절 핸드폰은 문자와 전화만 되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나는 3일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 약간의 두려움, 부모님에 대한 죄책감, 불안함이 있었지만 그럭저럭 지낼만 했다. 한 번씩 핸드폰 전원을 켜서 나에게 온 문자들을 확인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전원은 계속 꺼두었다. 엄마는 나에게 계속해서 문자를 보내셨다.' 어디 있니? 걱정하고 있어. 제발 집에 들어와.'라는 문자였다. 엄마의 그런 문자를 본 순간에는 마음이 무너져내렸지만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그만큼 부모님께 화가 많이 나있었다. 그런 날 보고 마음이 쓰였던 동아리 여자 선배가 나에게 술을 한 잔 사준다고 했다. 나는 선배에게 우리 부모님이 얼마나 엄하신지 내가 대학생이 되어서도 이런 간섭을 받아야 하는지 한참동안 하소연을 늘어놓았다.
"나 역시 부모님이 어릴적부터 엄하셨어. 대학교에 와서도 마찬가지였고. 지금 부모님이 너를 지나치게 간섭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너도 나중에 부모가 되면 부모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꺼야. 부모님이 다 널 사랑해서 하시는 거잖아. 지금 부모님의 이런 방식이 싫더라도 연락도 없이 그냥 집에 안 들어가는건 아닌거 같아. 너의 생각이 옳다면 우선 집에 들어가서 부모님께 너의 생각을 말씀드리고 자취를 하겠다고 설득을 시키고 집을 나와. 지금 부모님이 얼마나 걱정하시겠어. 연락을 안 하는 건 진짜 불효하는 거야."
나는 선배의 설득에 넘어가 그 다음날 3박 4일의 가출을 마치고 집에 들어갔다. 집에 가는 길 부모님께 혼이 날까 가슴이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혼나는게 무서워서 들어가지 말까도 고민했다. 집에 들어서는 순간 아빠는 술을 드시면서 울고 계셨다. 엄마는 그 옆에서 안절부절 못하고 계셨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빠가 우시는 모습을 봤다. 아빠의 취한 모습도 처음으로 보았다. 아빠는 이 모든 상황을 본인 탓으로 돌리고 계셨다. 아빠의 우는 모습을 보자 나도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부녀는 눈물의 상봉을 했다. '부모님이 날 이렇게 많이 걱정하셨구나.' 나는 부모님께 걱정을 끼쳐드렸다는 죄책감으로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그 사건 이후로 아빠와 나는 통금 시간을 서로 다시 조율했다. 우리 집의 통금을 아예 없애지는 못했지만 아빠는 이 전보다 자식들에게 여유로워지려고 노력하셨다. 지금은 가족들끼리 만나면 그때 있었던 가출 사건을 해프닝처럼 웃으며 이야기 하곤 한다. 부모가 된 지금은 그때 부모님의 마음이 조금 이해가 된다. 뉴스에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들이 워낙 많다보니 최대한 사건 사고가 생기지 않게 단속하셨던 것이리라. '우리 딸들이 조금 더 커서 대학생이 되면 나는 과연 12시 이후에 들어오는 것, 외박에 대해서 쿨한 부모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가끔씩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