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알보알 정어리떼와 바다 거북을 만나다.
30분 정확히는 20분. 아쉬운 고래상어와 만남을 뒤로 하고 우리는 근처에 위치한 식당에 갔다. 그곳에서 우리는 컵라면과 김밥을 점심으로 먹었다. 필리핀 바다에서 먹는 컵라면이라니. 한국에서도 밖에서 먹는 컵라면은 집에서 먹는 컵라면보다 맛이 있는데, 이 곳에서 먹는 컵라면은 우리에게 더 특별했다. 하지만 김밥은 진짜 맛이 없었다. 언제 만든지도 알 수 없는 맛 없는 김밥이였지만 배가 고파서 다 먹을 수밖에 없었다. 한국에서 먹던 김밥의 맛이 간절히 그리워졌다.
필리핀을 다니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화장실이였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변기 커버가 없는 화장실이 많다. 당연히 기마자세로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다. 아이들은 필리핀에 와서 난생 처음 물이 내려가지 않는 화장실을 경험했다. 이 곳의 화장실은 물이 내려가지 않아서 옆에 있는 바가지로 물을 퍼서 직접 내려주어야 했다.
간단히 배를 채우고 우리는 2시간을 달려서 정어리떼와 바다거북을 볼 수 있는 모알보알로 향했다. 아이들은 또 차를 타야하냐며 투덜거리긴 했지만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함께 조금 더 힘을 내보기로 했다. 아저씨는 또 악셀과 브레이크를 연신 밟아대고 클락션을 연주했다. 잠이 들었다가도 아저씨의 브레이크에 깨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 시간을 달려서 우리는 모알보알에 도착했다. 모알보알에서는 정어리떼와 바다거북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우리는 모알보알 바닷가 근처에 위치한 업체에서 구명조끼와 스노쿨 장비를 대여할 수 있었다. 한 가족당 필리핀 현지인 아저씨들이 한 명씩 배정되었다. 우리는 튜브만 잡고 있으면 아저씨가 알아서 우리를 이끌어 주었다. 조금만 튜브를 벗어나서 수영을 해도 아저씨는 "홀드"라고 외치며 잡으라고 했다. 아마도 안전사고를 염려했기 때문이리라.
모알보알의 바다는 돌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갑자기 너무 깊어져서 깜짝 놀랐다. 조금 전까지는 내 허리까지만 물이 왔는데 바로 한 발짝만 뻗으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었다. 동해의 바다도 갑자기 깊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이 정도는 아닌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먼저 정어리 무리들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정어리들은 무리져서 춤을 추고 있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입으로 숨을 쉴 수 있는 스노쿨을 주셔서 우리는 편안하게 스노쿨을 할 수 있었다. 오리발까지 있었으면 완벽한 호핑이 될 수 있었을텐데 아쉬운 마음이 컸다. 하지만 스노쿨 덕분에 고래상어를 볼 때보다 나는 바다를 더 많이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운이 좋게 정어리떼와 바다거북을 만날 수 있었다. 이 곳에도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이곳에 와보니 왜 사람들이 다이빙을 배우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왜 세부의 바다를 추천하는지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양한 생물이 어우려져 살고 있는 세부의 바닷가는 충분히 매력적이였다. 난 조금 더 자유롭게 세부의 바다를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저씨의 안내에 따라 우리의 호핑투어 시간은 금방 끝나고 말았다.
바닷가에는 커다란 강아지 한 마리가 바다를 즐기고 있었다. 순간 강아지가 너무 부러웠다. 바닷속에서 유유자적하는 모습이라니.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다시 모알보알을 방문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는 꼭 다이빙을 배워서 오리라.
우리는 호핑 장비를 빌린 곳에서 간단히 씻을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조그마한 창고 같은 곳에 들어가서 간단히 씻고 옷을 갈아 입을 수 있었다. 우리 차례를 기다렸는데 우리 차례가 되자 물이 안 나왔다. 필리핀은 수도 사용이 원할하지 않아서 물이 안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받아놓은 통의 물이 다 떨어진 거였다. 우리는 몸에 물 몇 방울만 뿌리고 옷을 갈아입는 수밖에 없었다.
모알보알에서 숙소 근처까지 돌아오는 길은 교통체증으로 4시간 가까이 걸렸다. 우리는 돌아오는 길에 저녁으로 한국인이 운영하는 삼겹살 집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오랜만에 먹는 삼겹살, 김치의 맛이 한국과 완전히 똑같지는 않았지만 한국을 생각나게 했다. 오랜만에 쌈장에 삼겹살을 찍어서 먹을 수 있었다. 돌아오는 길 우리는 지프니를 탈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식당 사장님이 숙소까지 지프니로 대려다주시기로 한거였다. 필리핀은 지프니가 대표 교통수단이다. 그동안 나는 지프니를 타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드디어 기회를 얻은 것이다. 주로 현지인들만 타서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탈 엄두를 내지 못했었다. 뻥 뚫린 마지막 칸에 아이와 나는 몸을 실었고 우리는 손잡이를 꽉 잡았다. 지프니가 덜컹거리며 출발했다. 지프니를 탄 느낌은 마치 어릴 때 할아버지네 집에 가면 한 번 씩 탔던 경운기를 타는 느낌이라고 할까. 도로를 지나다니는 현지인들은 한국인들만 가득한 지프니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고 웃었다.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우리 지프니는 숙소까지 달렸다.
나는 밤 9시가 되어서야 숙소에 도착했다. 오늘 하루는 마치 꿈 속을 헤맨 것 같았다. 이렇게 필리핀에서의 하루가 또 저물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