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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향된 아들 사랑은 어떻게 사회적 괴물을 만들어냈나

08. 이 세상 소풍 끝내던 날

by 마흔아홉 Mar 2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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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양병원을 퇴원한 후 집에만 계시면서 엄마는 몸도 마음도 많이 약해졌다. 얼굴 마비는 대부분 회복되어 말은 또렷하게 할 수 있었지만 손과 다리의 떨림은 조금씩 심해져 갔다. 밖으로 나가지 않는 대신 엄마는 내내 통화 중이었다.



"OO이가 엄마 버렸나 봐"


평생 참 많이도 들었던 말이다. 아들한테 섭섭했던 날이면 어김없이 우리 집으로 찾아와서 하던 말씀이 저 말씀이다. '아들이 어떻게 엄마한테 이럴 수가 있니?" '아들이 엄마를 버렸나 봐', '아들이 엄마를 버린 거야'.


엄마도 변하지 않았지만, 동생도 변하지 않았다. 항상 평행선일 뿐이었다. 그래서일까? 나에게는 충격을 받을 만한 말이 전혀 아니었다. 그저 지난 세월 20년 이상 묵은 엄마의 서러움의 반복일 뿐이었다. 그래서 나도 변하지 않았다.

뭐, 몇 번 변하려고 발버둥을 쳐보긴 했었지만 오히려 커다란 화살로 나에게 돌아왔었다. 엄마의 하소연에 맞장구친다고 동생 험담을 한다? 그 후에 경을 치는 사람은 언제나 동생이 아닌 나였다. 누나가 되어서 동생 험담이나 하냐며, 혼나기 일쑤였다. 그렇다고 내가 먼저 험담을 한 적이 있었나? 없었다.


어렸을 때는 억울했었지만 그간의 경험을 통해 엄마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동생의 험담이 아니라 하소연을 들어주기만 하면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후로 엄마의 감정쓰레기통 역할에만 충실해왔던 나였다.



직히 그다지 새롭지 않은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왜 그러냐며 반쯤 의무적으로 물었다. 요양병원에서 퇴원 후 일주일째인데 손 발떨림은 심해지고 치아까지 흔들리길래 치과에도 가보고 응급실도 다시 가봤지만 이상 없다고 귀가 조치만 당했다고 하신다.

답답한 마음에 아들에게 전화해서 하소연을 하셨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고 하는데 몸이 계속 떨린다고 하셨는데 동생은 '지금 바빠서 정신없으니 퇴근하고 본가로 가겠다'는 말만 하고는 전화를 끊어버렸다고 한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데 8시가 넘도록 온다던 동생이 소식이 없자 불안해지신 모양이다.


"엄마 버리긴 뭘 버려? OO 이 바쁘다고 했다면서. 조금 더 기다려봐요. 온다고 했으니까 올 거야. "


"그럴까?"


"그럼 OO이가 엄마 얼마나 생각하는데, 바빠서 그렇지 꼭 올 거야. 그리고 정기검진 다음 주 수요일이니까 가서 검진받아보자. 주치의한테 궁금한 거 다 물어보세요. 불안해하지 말고. 그리고 내일 출근 전에 들를 거야. 반찬 몇 가지랑 엄마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하고 있어. 아침에 가져다 드리고 출근할 테니까"


"그래, 병원 가서 검사받아보면 알겠지?. 알았어. 밥 안 먹고 기다릴 테니까 운전조심해서 오고."


그렇게 진심은 감추고 엄마가 듣고 싶어 하는 말로 엄마를 위로하고 반찬 몇 가지와 김치찌개를 해놓고 잠이 들었다.




08. 이 세상 소풍 끝내던 날


늘 있던 일이었지만 편찮으신 엄마에게는 그동안의 위로 가지고는 통하지 않았나 보다. 그러기에는 아들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컸었던 건가?. 아들을 사랑하는 만큼 많이 서운했었던 걸까? 몇 시간이나 잤을까? 핸드폰 벨소리가 시끄럽게 울렸다. 새벽 4시 50분, 아빠였다.

"여보세요?"


"엄마 죽었나 봐. 여기 지금 앞마당에 쓰러져 있고 칼이 있어. 119 불렀는데 아직 안 왔어"


"뭐? 왜? 왜? 무슨? 지금 갈게요. 금방 갈게요."


설마 했다. 연로하신 아빠가 착각하는 거라고 119 오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하며 친정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무슨 초등학교가 이리도 많은지 처음으로 짜증이 났다. 학교 앞 30km 구간이라고 경고음이 계속 울렸다. 그렇게 도착한 친정집 마당, 한켠에 엄마가 등을 보인채 엎드려 있었다.


무슨 정신으로 지나왔는지, 기억에 없다. 장례를 치른 지 이주쯤 지났을까 과태료 고지서 몇 장이 그날의 기억을 다시 끄집어냈을 뿐이다.


엄마의 인생은 소풍이었을까, 고행이었을까? 소풍이었기를. 미련을 두지 않았기를.


소시오패스' s 매우 계산적으로 얻을 게 없을 때는 관계를 가차 없이 끊어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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