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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버렸나봐.

07. 그날 이후 엄마는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셨다.

by 마흔아홉

계획에도 없던 퇴원 하랴, 응급실 따라다니랴, 엄마 케어하며 집에 오시느라 아빠는 많이 지치신 모양이다. 나라도 함께 했으면 좋았으련만 급작스런 퇴원 조치에 이마저도 아빠 혼자서 감당하셨어야 했으니 팔십 노구에 얼마나 피곤하셨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07. 엄마, 버렸나 봐.


피곤해서 잠은 쏟아지는데 딸과 마누라가 끝낼 생각을 않고 떠들고만 있었으니 짜증도 나셨을 터다. 얼른 집에 가라고 밀어내는 아빠의 말에 엄마를 다독이고서 터덜터덜 친정집을 나섰다.


돈 때문에 아들이 당신을 퇴원시킨 것 같다며 눈물을 한 바가지나 쏟아냈던 엄마는 다음날 만난 동생에게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노인네들 대소변 냄새 안 나서 편하다고까지 하셨단다. 엄마는 그렇게 동생에게는 매번 면죄부를 주신다. 그래도 된다는 시그널을.


솔직히 말하지 왜 감추냐고 묻는 내게 엄마는 아들 마음을 불편하게 하기는 싫다는 말로 나의 입을 막았다. 그럼 나는? 내 마음은 불편해도 되냐고 묻고 싶었지만 따져봐야 뭐 하나 싶다.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다만 보름 뒤에 엄마의 정기검진 재예약 날짜가 다가오니 다시 입원을 하든 통원치료를 받든 그때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고 다짐을 받았다.


퇴원 다음날부터 산책도 가고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도 먹으러 다니겠다며 말을 돌렸다. 병원밥이 너무 맛없어서 힘들었었는데 본의가 아닌 강제로 퇴원당한 거긴 하지만 이참에 아빠랑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들이나 마음껏 먹으러 다녀야겠다며 웃었다. 나에게는 애써 웃는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면야 대소변 냄새로 스트레스받는 것보다 공원에서 선선한 가을바람맞으며 자유로이 산책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얄팍한 생각도 들었다. 엄마 좋아하는 단풍놀이 삼아 다니다 보면 마음도 편안해지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 보면 정기검진일이니 엄마한테도 좋겠다며 위안을 삼았다.


섣부른 기대였다. 엄마를 너무 과대평가했다. 그러기에는 아들에 대한 상처가 너무 컸나 보다. 엄마는.


2~3일이나 지났을까? 출근을 하는데 비가 여름 장마처럼 쏟아졌다. 안 그래도 관절 때문에 고생이 많은 엄마는 비 오는 날이면 유독 더 아파했다. 출근하자마자 엄마한테 전화를 드렸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와서 그런가 손이 더 떨려오고 다리도 저린다며 우울해하셨다.


점심시간에 근처 마트에 들러 마사지기를 사서 퇴근길에 들렀다. 마사지를 해보더니 시원하다고 좋아하셨다. 비가 그치면 산책을 다녀오시라고 잔소리 시늉도 했다. 계속 움직여야 근육에도 힘이 생길 테고 그러면 떨림 증상도 좋아지지 않겠느냐고도 했다. 산책 가신 김에 드시고 싶었던 음식 드시라고 현금을 드리는데 느닷없이 화를 버럭 내신다.


"손이 덜덜 떨려서 젓가락은커녕 수저도 들기 힘든 데 가긴 어딜 가? 동물원 원숭이 되라고?"

"엄마 자존심 상해서 그래."


당황하는 나에게 아빠가 말씀하셨다. 산책 삼아 공원에 몇일 동안 나가셨는데 동네분들과 마주치신 모양이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공원을 돌고 있는데 동네분들이 엄마의 걷는 모습에 박수를 치셨다고 한다. 보행 보조기에서 나는 드르륵 소리에 사람들의 시선이 몰렸고, 절뚝이며 걷고 있는 자신을 향해 박수를 쳤던 사람들의 시선에 엄마는 충격을 받았고 그 길로 집으로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날 이후 엄마는 대문 밖으로 나가기를 거부하셨다.



떨리는 손으로 인해 식사에 불편함을 겪고 있는데 덜덜 떨며 밥을 먹는 모습을 볼 사람들을 생각하면 끔찍하기만 한데, 식당에서 밥을 먹는다? 상상도 하기 싫으시단다.


맞다. 그런 사람이었다. 엄마는.


예쁘게 차려입는 것을 좋아하고 나이보다 젊다는 말에 기뻐하는 엄마였다. 멋쟁이 할머니로, 평생 여자이고 싶었던 엄마에게 염색도 하지 못한 성성한 백발에 절뚝거리는 모습은 그 누구에게도 절대 보이기 싫은 모습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왔다. 며칠 뒤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OO이가 엄마, 버렸나 봐"


이건 또 무슨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지, 밑도 끝도 없이 그렇게 말씀하시고는 한 참을 울기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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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시오패스' s 타인의 감정을 존중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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