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오는 길에 후루그라하고 우유 좀 사 와 주세요!
집에 돌아오는 길 B에게서 연락이 왔다.
서툴게 시작한 두 사람의 동거는 생각보다 삐걱거리지 않았다. 동거를 시작하기 전 서로 의견을 조율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던한 두 사람의 성격 덕일까.
인생은 한 번 사는 것이고 처음부터 잘 되는 것은 하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하고 싶을 때 해야 하고 해야 할 때 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늘 그렇게 생각했다.
5년 전 나는 일본으로 유학을 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국의 별 볼일 없는 대학에서 술만 마시며 시간을 보내다가 군대를 가보니 앞이 막막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해야 하는 것에서 도망치고 있었다.
한국을 떠나 일본에서 살아보고 싶다.
언젠가 문득 떠오른 그 생각으로 나는 하고 싶은 일을 찾아냈고 해야 하는 일을 해내었다.
EJU시험부터 토플, 그리고 본고사와 면접까지, 그 긴 여정을 나는 숨 쉴 새 없이 하나씩 돌파해 내었다.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나, 그게 가장 나다운 모습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긴 여정 끝에 일본에 도착하고 나서 모든 게 잘 풀리고 행복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준비할 때 보다 더 스트레스받은 적도 있었고 나태함과 외로움에 괴로워한 적도 많았다.
그래도 나는 내 의지로 여기에 있었다. 그렇기에 반성은 할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뿐이다. 앞으로도.
걱정에 휩싸여 제자리에 머물 바에는 이를 악물고 미지에 발을 내디뎌 경험해 보자. 그 한걸음 한걸음이 모여 내 세계를 넓혀주고 내가 우러러보던 세상으로 날 데려다줄 것이니.
나는 어둡고 외로운 밤에 괴로워하고 무너지기도 하였지만 스스로를 잃지 않도록 되뇌었다.
약 1년 한 사람을 알아가기엔 충분할 것 같은 시간.
나는 1년에 걸쳐 B라는 사람에 대해 파악해 갔다.
감정에 솔직하고 정직하다. 거짓말을 못하고 애교가 많다. 장난기가 많고 서프라이즈를 좋아한다. 자신을 표현하기를 좋아하고 남들에게 스스로를 내보인다.
그녀의 라인과 카카오톡에는 이미 커플임을 자랑하는 디데이가 쓰여있고 배경에는 손을 잡고 있는 사진이 올라와있다.
오빠는 우리 사진 배경화면으로 안 올려?
퇴근 후 같이 저녁을 다 먹고 서로 앉아서 핸드폰을 보다가 B가 지나가는 듯이 나에게 물어보았다.
“한국 부모님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 사진 올렸으면 좋겠어? 조금 서운해?”
나는 장난식으로 대답했다.
“아니, 그런 건 아닌데 그냥 궁금해서, 나는 그냥 다 올려놓으니까!”
“대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는 올리잖아. 아마 내 주변 사람들은 내가 만나는 사람 있는 거 다 알걸?”
“부모님한테는 알리고 싶지 않은 거야? “
“꼭 그런 건 아닌데, 알잖아, 만나는 사람 있다고 하면 어디 사는 누구인지 뭐 하는 사람인지, 사진 보여달라고 하는 등 캐물으시거든 나는 그런 식으로 간섭받는 게 싫어서 그래.”
“그러엄, 나중에 한국 같이 놀러 갈 때도 소개 안 시켜줄 거야?”
“… 당연히 그때는 소개시켜 줘야지. 내가 일부로 다른 사람들이나 가족한테 숨기거나 하는 건 아니야! 알지? “
“…응.”
B는 보던 핸드폰을 덮어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씻을게”
B는 조금 퉁명스럽게 말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몇 분 후 B가 씻고 나오자 나도 아무 말 없이 욕실에 들어갔다.
나도 다 씻고 나오니 B가 얼굴에 팩을 붙이고 가만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머리 말려줘.”
나는 그녀의 작은 투정에 살짝 웃으며 대답했다.
“여기 앉아 봐. “
나는 한 참 동안 B의 머리를 열심히 말려준 뒤 그녀가 머리에 에센스를 바르는 것까지 도와주고 마무리했다.
“… 고마워.”
밤이 늦어지자 우리는 여느 때와 같이 꽉 껴안고 잠이 들었다.
며칠 후
“오빠! 프로필사진 바꿨네? “
“응 지난번에 같이 놀러 갔을 때 둘이 같이 찍은 사진. 너무 잘 나왔지?”
“응 이거 그때 내가 제일 잘 나온 사진이라고 했잖아!”
“맞아 나도 맘에 들어.”
“근데… 오빠 부모님이 이런 사진 프로필로 해두면 뭐라고 물어본다고 하지 않았어? 귀찮은 거 싫다며…“
“응? 요즘 만나는 사람 있다고 말했어. 걱정 마.”
A군과 B양이 이혼하기까지 앞으로, 2년 8개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