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이 오면 습관처럼 리모컨을 찾는다. 채널을 돌리며 뉴스를 확인하는 것은 오래 전 부터 일상이 되었다.
"오늘의 주요 뉴스입니다!"
익숙한 목소리가 하루의 문을 연다. 신문도 빼놓을 수 없다. 종이의 거친 질감을 손끝으로 느끼며 첫 장을 넘긴다. 비슷한 헤드라인이 반복되지만, 그래도 한 면 한 면 훑어보면서 '세상과 연결되고 있다'는 안도감을 얻는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매일 접하는 뉴스들이 과연 내게, 내 인생에 중요한 것일까?
어제도 들었고, 그제도 읽었던 이야기들. 다른 앵커가 같은 뉴스를 전하고, 다른 기자가 같은 사건을 다룬다. 그런데도 여전히 TV 앞에서, 신문을 손에 쥔 채 머물러 있다. 혹시라도 놓치는 이야기가 있을까 봐, 같은 소식이라도 다른 목소리로 들으면 새로운 의미가 있을까 봐?
한국인, 특히 남성들은 미국이나 일본에 비해 뉴스를 더 많이 본다. 한 조사에 따르면, 한국 남성들은 하루 평균 1시간 이상 뉴스를 시청하는 반면, 일본과 미국에서는 평균 30분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단지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보의 흐름 속에서 자신이 길을 잃지 않았다는 안도감을 얻기 위함일지도 모른다.
뉴스를 보는 것은 오로지 정보 소비만이 아니라, 자신이 세상과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일종의 심리적 위안이다.
"긴급 속보입니다!"
귀를 쫑긋해 보지만, 새로운 것은 그리 많지 않다. 어제의 연장선, 혹은 그제의 재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리고 또 돌린다. 신문도 마찬가지다. 첫 장을 넘기면 또다시 비슷한 기사가 나온다. 다른 면을 펼쳐도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그래도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강박에 손을 놓지 못한다.
뉴스를 본다고 해서 삶이 직접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TV를 켜고 신문을 펼치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의식’이 되었다. 마치 매일 아침 같은 커피를 내리는 것처럼, 같은 길로 출근하는 것처럼. 반복되는 뉴스가 때로는 지루하지만, 그 익숙함 속에서 안정감을 얻는다.
세상이 아직 잘 굴러가고 있고, 나는 여전히 그 속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있다는 확인.
그리고 뉴스는 하나의 정보 제공 수단을 넘어, 세상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 연결이 끊어지면, 마치 세상과 단절된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해 온다.
그리고 어쩌면, 뉴스를 통해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혼란스럽고 불안한 세상 속에서, 한 발짝 물러나 안전한 거리에서 그 소식을 지켜본다.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허탈해하며, 또 때로는 씁쓸한 웃음을 짓는다.
뉴스들이 삶과 직접 맞닿아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뉴스 앞에, 신문 앞에 머물러 있다. 마치 그들이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마지막 끈인 것처럼.
아침에 TV를 켜고, 저녁에 신문을 펴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반복되는 뉴스와 기사가 비록 새롭지 않더라도,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세상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그 속에서 안도감을 얻는다.
한국 남성들이 뉴스를 많이 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단순히 정보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하루를 정리하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TV와 신문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 속에서 삶의 작은 위안을 찾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 것도 없고, 사실 큰 변화도 없지만, 그래도 그 속에서 하루하루의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뉴스 속 세상은 때로는 혼란스럽고, 때로는 지루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