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버틴 시간의 반짝이는 증거이니까..
《한 가닥의 반란》
까만 머리 사이로
슬며시 고개 내민
하얀 불청객 하나
뽑을까 말까
가위 앞에서
열 번은 망설인다
스트레스 때문인가
잠을 못 자서 그런가
아니면 진짜... 나이?
겨우 하나일 뿐인데
괜히 마음이 복잡해진다
근데 말이야
가만 보면 얘도
꽤 당당하다
숨어 있지도 않고
눈에 띄는 자리에서
태연하게 흩날린다
그래, 이쯤 되면
하나쯤은
존중해줄 수 있겠다
내가 버틴 시간의
작고 반짝이는 증거니까
처음 흰머리를 발견한 날,
나는 거울 앞에서 꽤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다.
광대뼈 위로 삐죽 솟은 하얀 실 한 가닥.
그 작고 얇은 존재가 어찌나 선명하게 눈에 띄던지,
머릿결 사이로 숨지도 않고, 참으로 당당하게 솟아 있었다.
처음엔 ‘뽑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 순간, 내 손끝이 멈췄다.
왜 이렇게 가슴이 철렁하지?
단지 머리카락 한 올인데.
그 한 올이 나에게 “이제는 예전 같지 않지?” 하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그동안 내가 얼마나 정신없이 달려왔는지.
퇴근길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밤중에 애기 열 나면 벌떡 일어나고,
기억해야 할 것도, 책임져야 할 것도 늘어만 갔던 나날들.
그 모든 하루의 피로가,
언젠가부터 내 몸 구석구석에 자리잡기 시작했고
이 흰머리 한 올도
아마 그중 하나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까
이 가닥이 미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동안 내 삶을 말없이 버텨준 작은 훈장처럼 느껴졌다.
물론 앞으로 더 늘어날 거다.
싫어질 때도 있겠고, 감출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이 첫 번째 흰머리만큼은
기억하고 싶었다.
내가 어른이 되어간다는 걸
처음으로 스스로 인정한 그 순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