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이 생물 없으면 좀 심심할것 같기도..
오늘의 시
《남편이라는 생물》
말귀는 못 알아듣지만
내 한숨은 귀신같이 알아채고
설거지는 못하면서
내 옆에서 감 놔라 배 놔라
말로는 안 먹는다더니
내 컵라면 한입만 뺏어 먹고
팔베개는 불편하다더니
매일 자기 팔에 내 머릴 넣어주고
같이 살다 보면
한심한 듯 웃기고
웃긴 듯 사랑스럽고
가끔은
내가 키우는 큰 아들 같기도 하다
그래도
이 생물 없으면
좀 심심할 것 같기도
남편은 말을 아끼는 사람이다.
무뚝뚝한 말투, 심플한 반응, 감정 없는 표정.
함께 살아도 가끔은 ‘이 사람, 내 말 진짜 듣고는 있는 걸까?’ 싶은 순간이 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내가 오늘 있었던 이야기를 잔뜩 들려주고 나면
“그래?” 하고 짧게 대답하는 게 전부일 때가 있다.
아무리 익숙해져도 그럴 땐 서운함이 슬그머니 올라온다.
그런데 또 참 이상하다.
내가 피곤해 보이면 어느새 조용히 설거지를 끝내놓고,
감기 기운이 있는 날엔 말없이 약을 챙겨 준다.
입으로는 “됐어, 나 안 먹어” 해놓고,
내가 먹는 라면엔 젓가락이 꼭 한 번 들어온다.
표현은 없지만, 행동은 참 다정하다.
누가 보면 티 안 나게 애쓰는, 츤데레의 전형.
같이 TV를 보다 웃긴 장면이 지나가면
“웃기네?” 하고 슬며시 같이 웃어주는 그 사람.
내가 먼저 웃어야 따라 웃고,
내가 말 걸어야 대답이 오는 사람.
그래도 그 웃음이 나를 안심시키는 순간이 있다.
이 시를 쓸 때, 나는 그걸 깨달았다.
어쩌면 이 사람은 표현이 서툰 게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으로 매일 내 옆을 지켜주고 있었던 거라고.
불쑥불쑥 찾아오는 답답함도,
조금은 삐뚤어진 듯한 애정 표현도,
이제는 우리 사이의 언어가 된 것 같다.
없으면 허전하고,
있으면 가끔 답답하지만,
결국은 함께여서 다행이라고 느끼게 되는 사람.
그게, 나에게 ‘남편’이라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