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포비아

건강 검진이 무서워

by 허용수

나이가 드니까 물질적인 욕심보다는 건강이 최우선 관심사가 된다.

아직 심각한 병은 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썩 건강한 상태도 아니다.

운동은 하는 둥 마는 둥이고 그저 적당히 게으르고 복부비만인 상태로 고만고만 살아가고 있다.

평소 절제된 생활과 정기검진을 통해 큰 병 되기 전에 미리 예방을 해야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3년 전 건강 검진을 받고는 아직까지 무서워서 못하고 있다.


그 당시 내과 선생님이 초음파 검사를 할 때 유독 복부 한 곳을 오랫동안 관찰하면서 간간히 심각한 신음소리를 내며 사람을 불안하게 했다.

검진 결과 췌장 쪽에 1센티 정도의 종물 같은 게 보이고 갑상선에도 좌우로 하나씩 혹이 보인다고 했다.

영상의학과에 가서 CT로 정밀검사를 받고 갑상선 전문병원에 가서 조직검사를 받아 보라는 거였다.


아!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갑상선암은 착한 암이라 하지만 문제는 암중에 암이라는 '췌장암'이 아니던가.

그다음 주가 설 연휴여서 2주 후에나 영상의학과에 예약이 되는 바람에 그동안 지옥을 경험했다.

나의 사촌 누님이 췌장암으로 돌아가셔서 가족력이 없다 할 수 없고 당시 이웃집 할머니와 친구의 어머니 등 온통 주위분들이 죄다 췌장암으로 돌아가셨다.

유튜브로 관련 검색을 하다 보니 알고리즘으로 휴대폰만 열면 온통 췌장암 투성이었다.

그 보름동안 체중이 5킬로나 빠졌다.

나름 심각했으며 상상이 앞질러 인생 정리, 주변 정리 등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일단 갑상선은 조직검사 결과 이상 없음 판정을 받았고, 드디어 영상의학과에 가는 날이 되었다.

탈의를 하기도 했지만 조영제 주사를 맞고 금속성 기계에 들어가 촬영하는 동안 많이 떨렸다.

마침내 아내와 함께 숨죽이며 의사 선생님 앞에서 결과를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췌장 얘기는 하지 않고 모니터상 화면으로 복부 내 여러 다른 장기들만 이리저리 보여주시며 불안만 가중시켰다.


'아 그래서 췌장은 요.'

속으로 외쳤다.


"췌장의 위치상 초음파로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데 환자 분의 복부 지방이 중첩되어 혹으로 보였나 봅니다.

CT상 혹은 안 보이네요.

하지만 복부에 이렇게 지방이 많으면 췌장에 혹이 생길 수도 있고 어쩌고 저쩌고..."


복부 지방의 심각성을 강조하셨지만 부끄러움보다는 살았다는 안도의 기쁨에 "예 예" 건성으로 대답하고는 더는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기쁜 마음으로 아내와 맛있는 식사를 하면서 새 생명을 얻은 마음가짐으로 건강 관리를 잘하기로 다짐했다.

물론 원래로 돌아오는데 얼마 걸리진 않았다.

이러니 건강 검진을 가면 십 년씩 늙어버다.




건강한 상태란 점을 찍듯 어느 일정한 상태가 아니라 일정 범주를 말한다.

건강한 사람에서도 세균이 있고 암세포도 매일 생성된다고 한다.

단지 우리 몸의 면역체계가 병으로 발현되지 않게 싸우고 있기 때문에 건강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다.

법망을 촘촘히 하면 범죄자 아닌 사람이 없듯이 인체 조직을 더 촘촘히 잘라 검사할수록 환자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초기 단계의 종양부터 철저히 찾아내기 위해 PET CT 같은 첨단 장비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검사 비용도 만만치 않고 방사선 조사량도 엄청나 너무 자주 하면 오히려 해로울 수도 있다고 한다.

조기검진의 중요성을 모르지는 않지만 고가의 첨단 장비를 들여대는 불필요한 검진이 오히려 오진과 과도한 진단으로 멀쩡한 사람을 병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

의료가 점차 영리화되어 경영을 신경써야 하다보니 건강검진 사업과 장례식장 운영으로 장사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병원은 환자뿐만 아니라 멀쩡한 사람이나 죽은 사람으로부터도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환자들은 의사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의사가 병이 의심되니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데 거부할 배짱 있는 사람이 있겠나.

결과가 나오기까지 그 지옥 같은 마음고생은 또 어떻고.

마음이 병을 만든다고 지나친 건강염려증도 문제다.

며칠 동안 속이 조금 더부룩해도 혹시 위암인가 싶고, 기침을 하고 가슴이 조금 따끔거리기라도 하면 폐암을 의심하며 얼굴색이 다소 검어지면 간암을 걱정한다.

바로 내가 그런 암 포비아 환자였다.


잇몸에 고구마처럼 울퉁불퉁하게 혹 같은 게 나타나면 구강암인가 싶어 걱정스러운 눈으로 치과에 찾아오시는 분들이 종종 있다.

잇몸뼈가 과증식 된 골융기이다.

하루아침에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조금씩 커져온 걸 본인이 인지도 못하고 살다가 어느 날 문득 거울을 보다 발견하고는 사색이 되어 오는 것이다.

과도한 교합력에 대응한 우리 몸의 당연한 반응이라 전혀 병적인 상황도 아니고 암은 더더구나 아니다.

통증도 없어 사는데 아무 지장이 없 따라서 치료도 필요없다.

다만 틀니를 착용해야 할 환자들은 골융기가 방해가 되므로 간단한 수술로 제거하기도 한다.


이러한 환자들의 약한 마음에 의사들이 미간에 힘을 주고 조금만 한숨 섞인 표정을 지으면 건강 검진 사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다.

호텔로비를 방불케 하는 대형병원의 수백만 원짜리 검진센터보다는 동네 의원의 주치의를 믿고 간단한 정기검진과 대범한 마음으로 자주 웃으며 스트레스 받지 않고 사는 게 건강하게 사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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